궁궐에 대하여- 경복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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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궁궐에 대하여- 경복궁을 중심으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궁궐의 어원

2. 궁궐의 배치

3. 궁궐 공간 구조
(1) 내전(內殿)
(2) 외전(外殿)
(3) 동궁(東宮)
(4) 생활주거공간
(5) 후원(後苑)
(6) 궐내각사(闕內各司)
(7) 궐외각사(闕外各司)

4. 건물보기- 건물의 신분

5. 조선시대의 궁궐
(1) 조선전기
(2) 조선후기

6. 경복궁
(1) 경복궁의 창건
(2) 경복궁의 중건
1) 고종대의 중건
2) 경복궁의 수난
(3) 경복궁의 복원
(4) 경복궁의 주요 건축물 보기
1) 광화문(光化門)
2) 외전 ― 조정(朝廷)과 근정전(勤政殿 ; 국보 제223호)
3) 내전 ―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교태전(交泰殿),
경회루(慶會樓 ; 국보 제224호)
4) 궐내각사와 동궁- 수정전(修政殿), 궐내각사(闕內各司), 동궁(東宮)
5) 생활공간과 후원- 자경전(慈慶殿), 향원정(香遠亭), 건청궁(乾淸宮)

본문내용

남아 있으나 고종 때에는 주변에 2백여칸 가까운 행각들이 있었다.
수정전과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 사이에는 지금 잔디밭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경복궁의 옛 도면을 보면 이 구역에도 역시 건물들이 서로 담장이나 행각을 잇닿아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왕을 측근에서 모시고 정치와 행정을 비롯하여 국정 전반을 논의하고 집행하는 관원들의 활동공간인 궐내각사가 모여있었던 것이다. 경복궁이 중건된 뒤에는 왕의 시중을 드는 내시들의 공간인 대전장방(大殿長房), 궁궐의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담는 그릇을 조달하는 주원(廚院), 내시들을 통솔하는 내반원(內班院),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承政院), 대신들의 회의 공간인 빈청(賓廳), 왕의 경호요원 선전관의 관서인 선전관청(宣傳官廳), 규장각의 전문위원이라 할 수 있는 검서관들의 청사인 검서청(檢書廳), 왕과 학문과 정치를 토론하는 옥당(玉堂, 弘文館), 왕실 전용 병원인 약방(藥房, 內醫院), 학문과 서적을 관리하는 내각(內閣, 奎章閣) 등이 있었다. 1915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면서 결정적으로 빈터가 되었다.
근정전 동편 일대에는 자선당(資善堂)과 비현각(丕顯閣)이라는 두 건물이 있다. 자선당은 세자의 공식 활동공간이며 세자와 세자빈이 살던 집이고, 비현각은 그 부속건물이며 세자가 공부를 하던 곳이다. 비현각 주위에는 세자를 교육하고 보필하는 업무를 맡았던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春坊)과 세자를 경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桂坊)이라고 하는 관서 등이 있었다. 그 일대는 광화문에서 교태전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중심축, 왕이 계시는 내전의 동쪽에 해당되는데 그리하여 그곳을 동궁(東宮)이라 한다. 세자를 가리켜 동궁이라고도 부르는 연유이다. 동궁은 경복궁 궁궐 밖에 있던 것을 세조 연간에 경복궁 안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왕들은 왕자(王者) 수업을 받고 왕이 되었다. 동궁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없어질 때 함께 없어졌으나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할 때 함께 복원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동궁 일곽의 건물들 역시 모두 헐어져서 일본인들에게 팔려 나갔다.
5) 생활공간과 후원- 자경전(慈慶殿), 향원정(香遠亭), 건청궁(乾淸宮)
동궁(東宮)에서 북쪽으로올라가다 보면 붉은 담장에 둘러싸인 아담한 전각을 만난다. 조선조 말 고종 임금의 양모인 조대비(趙大妃)가 거처했던 곳으로 자경전이다. 이 집은 교태전 동쪽 자미당 터였던 곳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조대비를 위해 지어 준 것이다. 준공 후 불이 나서 탔다가 1888년에 다시 완성한 것으로 경복궁 침전 건물로는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行閣)과 담장에는 여러 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꾸밈이 매우 아름답고, 특히 북행각에 이어져 있는 십장생도(十長生圖)가 그려진 굴뚝은 따로 보물 제810호로 지정되어 있다.
향원정(우측사진)은 경복궁 안에 있는 2층 정자로, 1867년부터 1873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자경전을 지나 경복궁의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원래 연못의 북쪽에 연못과 정자를 연결하는 취향교(醉香橋)가 있었으나 625 때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다리는 1953년에 가설된 것이다. 향원정은 각 칸마다 예쁜 나무살창들을 달아 멋을 냈으며, 육각형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가운데 꼭대기에 추녀마루들이 모이는 곳에 절병통을 얹어 치장하였다.
취향교 북쪽에는 건청궁이 있었는데, 1873년에 창건되어 국왕과 왕비의 거처로 이용되거나 외교적인 접대장소로도 활용되었다. 1895년에 일본인들이 저지른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건청궁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한국근세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고, 건청궁 일대의 건물들은 일제가 경복궁에서 대규모 박람회를 열 때 헐렸다. 지금은 건청궁 터의 동쪽에 3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라고 새긴 표석을 세워놓았으며, 그 옆에 당시의 참상을 그린 기록화를 그려 전시하고 있다.
【 참고문헌 】
《경복궁》, 이강근, 대원사, 1999
《한국의 궁궐》, 이강근, 대원사, 1999
《우리 궁궐 이야기》, 홍순민, 청년사, 1999
《이야기가 있는 경복궁 나들이》, 강경선 외, 역사넷, 200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웅진출판사, 1991
《두산세계백과》, 두산동아, 1999
《테마가 있는 한국문화》, 이정수 외, 선인, 1999
《한국건축사》, 대한건축학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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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1
  • 저작시기2006.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5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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