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한시에 나타난 여성정감의 미적 특질-이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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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8세기 한시에 나타난 여성정감의 미적 특질-이안중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출사에 좌절한 사(士)의 광기(狂氣)
-이안중의 문학적 특징

2. 여성정감의 유형과 특질
2.1 전아(典雅)한 정감과 내재미(內在美)
2.2 비원(悲怨)의 정감과 부요(婦謠)의 만남
2.3 농염(濃艶)한 정감과 도시적 세련미

3. 여성정감의 표출방식과 그 의미

4. 결론

본문내용

자리잡아 갔다.
① 여성정감은 사대부 문화, 사대부 정감의 변모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녀사이의 정'은 주선후기에 집중적으로 표출되기는 하지만 유가의 전통 어느 시대이건 이를 전혀 도외시하거나 거론치 않았던 적은 없다. 이는 곧 사대부 정감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다. 18세기 여성화자의 여성정감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계층은 향촌의 사족이다. 그런데 그들이 향촌의 일상에서의 여성정감을 표출할 때에 세련된 도시적 감각이 보인다. 그것은 그들이 향촌에 머물면서도 출사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과의 접촉을 잦았던 데서 연유된다.
② 여성정감은 일정한 방향으로의 정감이 아니라 다양한 미적 특질과 의미를 지닌다.
: 향촌의 사족들이 여성정감의 시 세계를 미적 특질로 표출하게 된 배경은 개인적인 점에서 출발되는 듯하다. 과거제도의 폐단과 벌열사회의 경화로 대부로서의 꿈을 실현하기가 어려워지자 일상과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이라는 개인적인 문제로 관심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사가 여성정감이라는 새로운 정감의 표출방식으로 구현됐다.
작가 개인의 기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유한과 최성대를 부부사이 같았다고 하고 최성대를 아내에 비유하는 일화는 최성대의 개인적 기질이 섬세하고 여성적 성향이 강하였음을 유추케 하는데 실제 그는 개성적인 여성정감의 시를 창작했다.
또, 봉건제도와 민중의 모순, 가부장제 등 사회적 모순의 첨예한 두 부분을 노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본질적인 모순과 조선풍, 조선시에서의 지향과 열정으로 한시와 민요와의 교섭 등이 여성정감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대개 청장년기에 여성정감의 한시를 창작하다가 작년기를 거치면서 성리학에의 침잠으로 이행하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들이 다시 성리학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여성정감을 경험하고 난 뒤의 성리학의 변모 모습은 이후 고찰할 문제로 남겨둔다
잠깐! 조선후기 대표적 여성정감 시인
최성대(崔成大): 조선시대 사람으로 본관 전의(全義), 자는 자 사집(士集), 호는 두기(杜機)이다. 1732년(영조 8)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지평 장령을 지낸 뒤에 춘방대사간을 역임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김창흡 이후의 제일인자라 칭해졌다. 신유한과 친교를 맺고 화답한 것이 많았다. 그의 시 11수를 모아 엮은 《두기시집 杜機詩集》이 남아 있다.
신유한(申維翰): 조선 후기의 문신 문장가.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경상북도 고령출신. 태시(泰始)의 아들이다. 1705년(숙종 31)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1719년 제술관(製述官)으로서 통신사 홍치중(洪致中)을 따라 일본에 다녀왔으며, 봉상시첨정에 이르렀다.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특히 시에 걸작품이 많고 사(詞)에도 능하였다. 최두기(崔杜機)와 친하였다. 저서로는 《해유록》 《청천집》 《분충서난록 奮忠 難錄》 등이 있다.
이옥: 1760년(영조 37년)에 태어나 1816년(순조 17년)에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효령대군 후손이나 고조부가 서자였고, 성균관 유생 시절엔 정조로부터 소설식 문체 때문에 배척을 받아 입신출세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문인으로 자처하며 평생을 지냈는데, 섬세한 묘사와 여성적 정감이 짙게 풍기는 소품(小品)에 특히 뛰어났다. 최근 실시학사에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을 모아 '역주 이옥 전집'을 냈다. 이옥은 참으로 문제적 인물이다. '문장은 반드시 선진양한을 본받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는 말은 당시 불변의 진리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그런 당찬 글쓰기 때문에 그의 인생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성균관에 입학해 꿈을 키워가던 젊은 이옥은 정조의 명으로 글 한 편을 짓게 됐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정조가 보기에 이옥은 순정(純正)한 글쓰기가 아니라 경박한 소설식 문체를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노론과 남인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계산도 있지만 성리학적 질서와 사유 체계를 위협하는 뿌리를 제거하려던 노회한 정조의 고육지책이 담겨 있다.
김려: 1766년(영조 43년)에 태어나 1821년(순조 22년)에 역시 56세로 숨졌다. 노론이라는 가문적 배경과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당대 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성균관 유생 시절 강이천(姜彛天)의 '비어옥사(蜚語獄事)' 에 연루되어 10년에 걸친 유배생활을 했다. 만년에 연산현감, 함양군수를 지냈으나 크게 출세하지 못했다. ' 사유악부' '우해이어보'에서 유배지의 풍속과 세태를 실감나게 그렸다. '한고관외사' '광사' 등 방대한 분량의 야사집을 편찬했으나 대부분 유실됐다. 문집 '담정유고'가 전한다.
4. 결론
'여성정감'은 '여성형상'에서 감지되는 여성의 정감은 물론 작품의 내적 요소에 감지되는 '여성의 서정'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여성정감인가라는 답은 쉽지 않다. 여성정감의 유형을 3가지로 나눠보면 첫 번째로 여성시인이 쓴 여성화자의 여성정감이다. 제 2유형은 여성작가가 남성화자로, 혹은 남성작가가 여성화자로 글을 쓴 경우다. 마지막 제 3유형은 남성시인이 남성화자의 모습으로 여성을 대상화 할 때, 그래서 남성화자가 자신의 시적 대상인 여성의 심리나 행위를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묘사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이 중 여성정감을 연구할 때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제 2유형이다. 이안중도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여성정감은 사대부의 정감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조선은 양반중심의 사회가 분열되면서 중인과 서민들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런 신분질서의 변화에 따라 사대부들의 고민과 의식도 변화되었고 이것은 여성정감에도 영향을 끼쳤다. 보편적 경계에서 자유롭고 좀더 적극적인 화자의 감정표현이 빈번해지면서 향유층도 향촌사족이 주를 이뤘다. 화자의 성별과 지위에 따라 여성정감 시도 서민 여성들의 입장과 관심을 좀더 대변하게 됐고 변화된 가족제도의 영향도 받았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개인적 기질, 개성 등으로 18세기 한시에서 나타난 여성정감은 독특한 미적 특질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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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7.03
  • 저작시기20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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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5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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