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이해] 조선후기 회화의 서양화법 유입 과정 및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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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술의이해] 조선후기 회화의 서양화법 유입 과정 및 영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0. 서론

1. 조선후기의 시대적 배경
1.1. 천주교와 서학의 도입
1.2. 실학사상

2. 조선후기 회화의 특징

3. 조선후기 회화에서 나타나는 서양화법의 양상
3.1 인물화에 나타난 서양화법
3.1.1.초상화
1) 강세황(姜世晃)
2) 윤두서(尹斗緖)
3) 작가미상의 <이재(李縡)상>, <이채(李采)상>
4) 김홍도(金弘道)와 이명기(李命基)
3.1.2.인물화
1) 김덕성(金德成)
2) 신광현(申光絢)
3.2 동물화에서 나타난 서양화법
1) 작가미상의 <맹견도>
2) 김두량(金斗樑)
3) 이희영(李喜英)
3.3 산수화에 나타난 서양화법
1)강세황(姜世晃)
2) 강희언(姜熙彦)
3) 김홍도(金弘道)
3.4. 이 밖의 회화에 나타난 서양화법

4. 한국 초기 서양화 화풍의 미술사적 평가와 의의

<참고문헌 및 사이트>

본문내용

하늘을 여백으로 처리하였는데 이에 비하면 매우 혁신적인 표현이다. 또한 홍대용이 북경에서 본 서양화의 '하늘의 공계까지도 모두 정색을 사용했다'는 사실성과도 관련되는 부분이다. 이 점에서 정선이 이루어놓은 한국적 진경산수의 전통에 강희언이 더욱 발전시켜 근대화에로의 지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도판) 강희언, 「결성범주도」, 18세기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40.2×25.3㎝, 개인 소장.
또 그는 「결성범주도」와「출엽도」에서는 공기원근법(공기의 작용으로 물체가 멀어짐에 따라 빛깔이 푸름을 더하고 채도가 감소하며, 물체윤곽이 희미해지는 현상에 바탕을 두고 원근감을 나타내는 회화표현법)을 사용해 오행감(奧行感. 거리감각, 심도, 즉 선의 방향성에 의해 연출되는 입체감과 거리감)을 확장시키기도 했다.
3) 김홍도(金弘道)
이와 같은 화풍은 정조조 최고의 화원이었던 김홍도(金弘道, 1745∼1816경) 작품으로 전칭되고 있는 「현종암도」, 「분설담도」를 비롯한 『금강사군첩』에 보다 정교한 상태로 이어졌다.
도판) 전(傳) 김홍도, 「현종암도」, 18세기 말, 비단에 수묵담채, 43.7×30.4㎝, 개인소장.
「현종암도」는 근경에 짙은 색의 큰 바위를 두고 멀리 수평선과 작은 점들이 보이는 서양식 풍경화를 연상시키는 해변 그림이다. 좌측의 해안은 원근을 달리하는 바위와 언덕이 겹쳐 멀리까지 전개되고 있다.
도판) 전(傳) 김홍도, 「분설담도」, 18세기 말, 비단에 수묵담채, 43.7×30.4㎝, 개인소장.
「분설담도」는 우측 상단에 멀리 보이는 절경을 배경으로 좌측 하단에 짙은 색으로 외각을 강조하여 입체감이 큰 바위와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겨울 풍경으로 두 점 모두 정조의 어명에 의해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지를 사경하여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그림은 단일시점에 의해 조망된 경관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했는데, 원근감을 경물의 크기와 먹의 농담으로 나타내어 시각적인 사실감이 나타난다. 선원근법과 공기원근법 등 서양화법을 부분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사실주의 화론가 강세황이 금강산의 회양관사에서 이들 사경 초본을 직접 보고 "절경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고 교묘한 형태로 극진히 하여 우리나라의 과거에는 볼 수 없던 신필(神筆)이라"고 극찬했던 평과 부합된다. 이와 같이 서양화법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여 새로운 원체양식으로 증보된 김홍도의 금강산풍은 왕실과 사대부 등 고급 수요의 일정한 지속으로 여러 이·모본을 산출시키면서 정형화되어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3.4. 이 밖의 회화에 나타난 서양화법
서양화법은 서학 계통의 서적과 장식도구 등에서도 크게 활용되었다. 책가도(冊架圖. 책을 중심한 문방사우도나 문방구도에서 온 것. 책뿐만 아니라 책과 관계없는 술잔·바둑판·담뱃대·부채·항아리는 물론이고 여자치마·꽃신·족두리까지 그려 어떻게 조화가 이루어지는가를 표현한 그림)와 같은 기물그림 분야는 그러한 것 중 하나이다.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은 말년에 김홍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요즈음 화원들 그림은 새롭게 서양국(西洋國)의 '사면척량화법(四面尺量畵法. 원근법과 투시도법을 말하는 것으로 사방의 입면을 적절한 비례에 의해 평면에 옮긴다는 뜻에서 사면척량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본받아 채색 책가화를 그리는데 귀인들 집의 벽은 이러한 그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가 매우 잘 그렸다고 했다.
도판) 작자미상,「책가문방도」(부분), 18세기 말, 종이에 채색, 342.4×68.5㎝, 호암미술관.
이러한 그림은 호암미술관 소장의 「책가문방도」에서 볼 수 있듯이, 박고가에 진열된 문구와 기명 등의 청공진완물(淸供珍玩物)을 입체감 넘치게 묘사한 청대의 궁정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 후기의 서화고동 애호풍조가 호사취미로 확산되면서 상류층 고급수요의 장식물로 성행했던 것 같다. 즉, 서양화법은 대상물의 실물감과 실재감을 좀더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시각적 영상을 재현하는 기법으로 도입되어 부분적으로 응용되었을 뿐 아니라, 호사적 장식취미를 충족시키는 진기한 구경거리로도 전개되었다.
전도의 방편으로 사용된 교리의 해설을 위한 삽화에서도 서양화법을 찾아볼 수 있다. 생활 감정과 역사적 조건이 다른 지역에서 종교 전파에는 민중에게 보다 설득력 있는 그림이 주로 활용되었으며, 천주교의 전파에서도 삽화가 주요한 기능을 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서학의 도입이 처음에 일반 민중들에 의한 신앙 형태보다는 지식사회에 일종의 진취적 사상과 지식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각 있는 화가들에 의한 서양화 기법의 원용도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화원들이 그리는 궁궐도와 폭넓게 퍼진 민화에서도 서양화법은 부분적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4. 한국 초기 서양화 화풍의 미술사적 평가와 의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적인 회화관의 탈피와 새로운 화풍이 탄생된 조선후기에 있어서 일부의 인물화, 동물화, 진경산수화 등에서 발견되는 화풍은 종래의 평면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서양회화가 갖고 있는 입체적인 음영묘사를 취하고 있거나 원근법을 사용하여 회화의 새로운 정형을 마련하였다. 이것은 사실주의 정신에 근거를 둔 주체적인 화론을 바탕으로 서양의 과학적인 회화기법을 활용하여 근대적인 회화를 모색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조선후기 문예부흥기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통하여 새로운 전통을 세우고, 또 새로운 기법을 받아들였으며, 자주적이고 독창적인 사실주의 회화를 더욱 발전시켰던 것이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 설화당. 1979
2. 김영주, 한국미술사, 나남, 1997
3. 최열,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설화당. 1998
4. 김성연, 근대 한국화단의 초기 서양화 수용과정에 대한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1999
1.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3&dir_id=310&docid=526237
2.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docid=85522
3. http://home.opentown.net/%7Earthouse/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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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21
  • 저작시기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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