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교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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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불교미술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후한, 삼국, 서진시대-중국 불교미술의 시작
2. 5호16국, 유송시대-소금동불과 석굴미술
3. 북위시대
4. 수시대
5. 당시대
6. 오대, 송, 서하시대
7. 원시대

Ⅲ. 결론

본문내용

한 당 문화가 만개하기 직전의 덜 세련된 풋풋함을 지니고 있다.
1> 돈황 막고굴
초당의 이른 시기의 막고굴에서는 부처, 보살이 등장하는 수하설법도가 구획된 벽면 안에 가득히 그려졌으나 이런 경우에 누각 등이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정관 16년(642)명을 가진 제 220굴 남벽의 아미타 경변상도 같은 예를 전환점으로 커다란 벽면 하나를 전부 사용하여 대형화면 형식으로 누각 등을 갖춘 정토도가 그려졌는데 이것은 초당기 벽화의 큰 변화이자 특징이다.
2> 사천의 석굴
초당의 석굴에서 유명한 것은 사천성에서 꽤 북쪽에 위치한 광원시의 광원 천불애와 같은 광원시의 황택사 석굴이다. 이중에서 황택사 석굴 제10호 대불굴은 기년명은 없지만 규모가 큰 중요한 석굴이다. 5미터에 이르는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불제자와 보살입상이 협시하고 그 주위를 천룡팔부상이 둘러싸고 있다.
2)성당(712-762)
성당 조각의 특징은 턱과 가슴의 근육, 옷주름 등에 한층 더 사실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1> 천룡산 석굴
이 석굴에는 당대에도 우수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기년명은 남아있지 않지만, 제 4, 5동이 700년경의 작품이고, 이어서 제 14동이 열렸고, 가장 늦은 제 17, 18동도 750년까지는 조영되었다.
2> 돈황 막고굴
재 45굴은 성당 전반의 대표적인 굴이다. 이 굴은 벽화도 잘 남아 있지만 서벽 감실 조상들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3> 산서의 조상
산서성 박물관에는 초당과 성당기의 기준작들이 있다. 도 103은 개원 25년(737)의 명문을 갖고 있는 불입상으로 좌우의 어께가 넓게 벌어지고, 전체적으로 당당한 체구로 양발을 벌리고 서 있다.
3) 중당(762-826)
중당의 조각은 성당 말의 난숙기를 거쳐서 입체감이 적은 비만 상이라든가 약간 균형이 맞지 않는 장신의 상들이 제작되는 하강의 시기를 맞게된다.
1> 장안의 조각
좌우의 팔을 구부리고 상체를 뒤로 젖히고 높은 대좌 위에 앉아있는 이 상은 얼굴에 살집이 dT고 턱도 두 턱이 될 정돌 살아있다.
2> 용문석굴
전체적으로 성당이후 쇠퇴하지만, 성당 말 무렵부터 중당 시기에 걸쳐 이 지역에서는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상으로 대표되는 밀교계의 조각이 만들어졌다.
4) 만당(826-907)
이 시기에는 무종에 의한 폐불이 이루어졌기 때문인지 이 시기의 불상으로 중원지역에 현재 전하는 작품 가운데는 눈에 뛸 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근년에 섬시성 부풍현 법문사의 무너진 탑 아래에서 함통 15년경(874) 혹은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조각과 정교한 공예품이 출토되어 주목되고 있다.
1> 사천의 조상
8세기 중엽의 현종의 입촉에 이어서 880년에는 희종도 입촉하였다. 따라서 중만당 이후 조상활동의 중심은 혼란스러운 중원 지방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사천성 쪽으로 옮겨간 감이 없지 않다.
6. 오대, 송, 서하시대
불교에서는 만당 무렵부터 유행한 선종의 영향으로 사실적인 나한상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오대, 송대의 것으로는 건칠상과 목조상 가운데 우수한 작품들이 남아있다. 강남의 오월국의 수도였던 항주 부근, 사천성, 돈황지역에서는 마애불 및 석굴미술을 볼 수 있다. 시대가 내려감에 따라 불보살상은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나타낸다.
7. 원시대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에 이르는 약 1세기 사이,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거의 동(東)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몽골족의 왕국이다.
원은 티베트를 지배할 목적으로 타베트계 불교(라마)를 우대했다. 그 때문에 돈황 막고굴과 그 외의 미술에도 티베트 불교에 관한 것이 많이 만들어 졌다. 조형에는 비만, 경직화, 장식성의 특징이 보이고 때로는 세속적인 작품도 있지만 정신성을 잃지 않은 우수한 작품도 있다.
Ⅲ. 결론
불교에서 보는 미술이란 원인 지향적인 미술관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불화나 불상은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써, 또는 지계, 즉 계율을 지키기 위한 시각적 표상으로 조성되었을 수도 있고, 나아가 불화와 불상의 장엄은 관상의 수단일 수 있다. 관상이란 인식이나 명상 등을 위한 종교적 수행의 방편으로서 부처님의 상호, 모습이나 주처, 즉 사는 곳의 모습 등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수행법의 하나이다. 이 관점들을 종합하면, 불교미술이란,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 EH는 계율을 지키거나 불타 혹은 불경의 장엄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단에서 통용되고 전승된 미술의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이 정의에 따르자면 불교 미술이란 불교의 교리와 이념을 현실적으로 수용한 대중들에 의해 주문 제작된 불교용품 중에서 미술사의 선택을 받은 이른바 미술작품들이 형성한 범주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불교의 입장과 불교미술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볼 때 종교미술은 주관적 심적인 신앙 형태를 객관화사회화하여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시각적 조형물이며 신앙 표본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미술은 불교의 삼보, 즉 석존이라는 부처, 석존의 깨달음을 일컫는 법, 그리고 승단의 수행을 비롯하여 신도들의 신앙, 예배의 대상을 객관화하여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시각적 조형물을 말한다.
이 범주에는 당탑불상불화장식지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본론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중국의 불교미술은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통치체제라든가 통치자의 통치성향,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미술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 나갔다.
또한 중국의 불교는 인도에서 받아들여서 한국일본으로 전파되었으며 불교미술 또한 그러하였다.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간 불교가 동아시아 문화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참 고 문 헌
김영재, 불교미술을 보는 눈, 사계절, 2001
구노미키, 중국의 불교미술, 시공사, 1998
http://myhome.shinbiro.com/~jmjh/oah.html
http://www.zhw82.com/html/china-meishu.html
http://www.1004eyes.com/sub/history/039.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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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25
  • 저작시기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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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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