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 1953년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맥아더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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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2. 해방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1)전시외교에 드러난 미국의 전후구상
(2)38선 획정과 미국의 분단책임

3. 미군정기 미국의 대한정책
(1)미군의 남한점령
(2)미군정의 대한정책에 나타난 문제점
- 탁치논란과 단정수립-통일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좌절
- 친일파 미청산
- 군정기 사회경제정책-반제반봉건적 개혁의 좌절

4. 한국전쟁에 있어서의 미국 그리고 맥아더
(1)미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맥아더
(2)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한작전인가
(3)핵전쟁의 가능성과 제 3차 대전의 위험

5.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철거와 사수 논쟁
(1)사수론
- 인천상륙작전에서의 맥아더의 업적
- 진보단체들의 맥아더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보수단체의 반론
(2)철거론
-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가 처음 세운 작전이 아니었다
- 맥아더는 핵사용을 적극 고려했다
- 맥아더에게 있어 한국전쟁은 단지 자신의 야심을 위한 것이었다
- 맥아더의 전술적 오판

6.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내용

더는 전술적 오판과 한국전쟁을 자칫 세계대전으로 번지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오류들을 범했다.
이처럼 맥아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왜곡되고 과장된 부분이 많았다. 특히 핵사용이나 전술적 오판의 경우 자칫 3차 대전을 초래할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따라서 결코 맥아더라는 인물은 한국인들이 동상까지 세워가면서 존경해야할 인물이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고 그의 행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조사하고 연구하여 왜곡되지 않은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만 한다.
6. 맺음말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과 맥아더’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전반부에서는 45년~53년 미국의 대한정책에 나타난 문제점을 살펴보았고 후반부에서는 남남(南南)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를 짚어 보았다.
이 주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매우 시사적인 방향으로 나갔다면 맥아더 문제를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놓고 현재 한미 관계에서 노정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했을 것이다. 아니면 건전하고 우호적인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해 요구되는 것들을 이슈별로 조목조목 따져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45년~53년 당시 미국의 대한반도정책과 그 과정에서 미국(혹은 미군)이 저지른 잘못을 되짚어 보았다. 즉, 이 글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상이한 역사적 평가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조악(粗惡)하나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은 맥아더 개인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엇갈린 태도와 평가에 기초한다. 둘째, 결국 흐름상 이와 같은 반미-친미의 대결구도는 45년 해방을 전후한 시점에서부터 53년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미국과 맥아더의 행적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 셋째, 상반된 역사인식의 기원이 되는 이 시점을 돌이켜보면 기존의 對미對맥아더 은인론과 그들에 대한 일방적 찬양고무(?)는 역사의 한쪽 면만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 맥아더는 100% 순수한 ‘한국 도우미’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넷째, 그렇지만 여전히 동상 철거 문제는 일도양단(一刀兩斷)식의 딱 부러진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없는 문제다. 대립되는 양측의 주장 모두 일리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렇게 논란이 불거짐으로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을 좀 더 꼼꼼히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든 상대방에 대한 이념공세와 물리력을 동원한 대립과 투쟁은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차분히 머리를 맞대고 지금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동상은 그대로 그 자리에 두되 맥아더의 공과를 함께 제시할 수도 있다. 굳이 동상을 철거한다면 상륙작전기념관이나 용산전쟁기념관으로 이전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재삼 강조하지만 동상의 처리 방향이야 어떻게 결론이 나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안의 미국’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길게는 120여년 짧게는 50여년 韓美간의 역사와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을 고정된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사고와 사상의 경직 혹은 극단주의는 역사를 바로 보는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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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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