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회화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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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본론
1.감상화
2.실용회화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음보살(관음보살)
♧변상도
♧초상화
♧부석사 조사당 벽화(浮石寺祖師堂壁畵) -국보 제 46호
♧고분벽화
3.문인화

Ⅲ.결론

본문내용

암청색으로 그렸다. 서곽은 서벽 남반부에서만 여 2인, 남 1인의 두상(頭像)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벽화를 전체적으로 볼 때, 주악상을 주로 하고, 필치가 자유롭게 생기가 있으며, 불교가 기조이면서 또 도교 요소도 들어가 있다. 이 벽화고분은 개성 부근 법당방(法堂坊)에서 발견된 벽화분과 함께 몇 안되는 고려 벽화 고분의 예이며, 그 시대 고분의 구조형식과 회화미술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문화재청 홈페이지(http://ocp.go.kr/)
④밀양 박익 묘의 벽화
지난 9월 태풍 사오마이가 한반도 전역에 기승을 부리던 무렵, 태풍으로 밀양 박씨의 선산 무덤 한 기(基)가 무너져 내리면서 이를 보수하던 문중사람들이 석실내부에서 잘 치장한 남녀의 모습과 생활집기들이 그려진 채색벽화를 발견한 것이다. 학계에선 곧바로 '고려의 복식을 이제야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삼국에서 고려, 조선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회화사 변천을 구체적으로 구명할 획기적인 자료다'라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이 벽화가 고려벽화로는 처음으로 종교적 색채를 띤 회화가 아닌 인물풍속화였기 때문이다.
공민왕릉을 비롯해 이전에 발견된 다른 고려벽화는 주악비천상 별자리 십이지신상 등 종교적 특징을 강하게 반영했을 뿐 민간인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밀양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무덤에서 발견된 벽화는 고려말 복식 차림으로 치장한 남녀를 비롯,말과 각종 도구들이 붉은 색 등으로 채색돼 있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고려말~조선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박익은 고려말엽의 학자.조선이 건국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고향으로 내려가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낸 고려 8은(隱) 중의 한 명이다.(부산일보-2000년 11월 30일 055면)부산일보 홈페이지(http://www.pusanilbo.com/)
3.문인화
고려는 전조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활동이 비교적 활발히 이뤄졌다. 그리하여 여전히 문인 화가들에 의해 四君子圖 등이 많이 그려져 丁鴻進 같은 이의 여기(餘技)나 수양의 목적으로 그린 墨竹畵는 중국에 까지 명성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李奎報나 李濟賢 등이 詩書一致論을 편 것도 거의 접할 수가 없고, 또 明宗朝의 화가로 李光弼과 高惟訪의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작품 역시 전해 오지 않는다.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 실정이다.박용운, 「高麗時代史」, 一志社출판부, 1985, p661~662
문인화 경향을 지닌 회화에는 그림의 영역도 기록적인 성격을 띠는 인물화나 산수화나 영모화(翎毛畵), 사군자 등 문인 취향의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①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공민왕의 작품이라 전하는〈천산대렵도〉는 세밀한 채색화로서 수렵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본래는 옆으로 길다란 두루마리 그림이었던 것이 조각난 것으로 보이는데, 오래 되어서 떨어진 곳이 많고 그림이 조각나서 본래의 모습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힘차게 말을 달리는 기마 인물의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기운차게 묘사되어 있음을 오늘날에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②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이제현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이 간혹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이〈기마도강도〉도 분명하게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익재(益齋)라는 서명과 이제현인(印)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오래 전부터 이제현의 작품으로 전해온다. 화풍으로 보아도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오는〈천산대렵도〉의 채색 기법과 닮은 데가 있어서 그 무렵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말을 탄 다섯 사람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장면을 묘사하였는데, 산천은 강을 따라 지그재그 식으로 이어져 화면에 변화를 주고 있다. 눈 내린 경치가 맑고 말 탄 인물의 모습이 의젓하며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는 생동감이 있어 격이 높은 화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oca.go.kr/)
Ⅲ.결론
고려시대의 미술은 약 9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문화의 중심지가 경주에서 개성(開城)으로 옮겨짐으로써 쇠퇴하고 있던 10세기의 한국미술에 새로운 북방적 힘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고려회화는 앞에서도 언급 한 바 있지만 작품들이 외국에 있거나 우리 나라에 있는 몇 개의 작품들 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특히 감상화에 있어서 전하는 작품이 흔하지 않는 것은 고위 지식층이라 취미 삼아 그린 것이기 때문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다른 시대에 비해 감상용 회화가 성행했고, 사대부나 승려화가들, 문신의 고위 관리층 등 여러 계층의 화가들이 활동하면서 일반 감상화뿐 아니라 불화에 있어서도 훌륭한 전통을 남겼다. 이러한 고려시대의 고유한 특징과 전통은 조선시대 회화의 기반이 되어 우리 나라 회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김원용, 「한국 고미술의 이해」,서울대학교 출판부,2001, p129~132
박용운, 「高麗時代史」,一志社출판부,1958,p661~663
하일식, 「연표와 시간으로 보는 한국사」,일빛도서출판,1998, p62~107
전국역사교사모임, 「미술로 보는 우리역사」, 푸른나무 출판사,1992, p116~121
한국역사연구회,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1997, p73~75
김영주, 「한국불교 미술사」, 솔출판사, 1996
부산일보 홈페이지(http://www.pusanilbo.com/)
『화보위주 참고문헌』
삼성미술문화재단,「문화의 향기 30년 1965~1994」, 고려서적,1995
林奭濟,「韓國의 美-고建築美 」, 瑞文堂,1998
林奭濟, 「韓國의 美-古寺巡禮」, 瑞文堂,1998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고려생활관1」, 사계절, 2002
청량사 청허(혜담)스님 「고려불화제창현」홈페이지 (http://runina.mytripod.co.kr/)
대천 화랑 홈페이지(http://www.daechonnet.co.kr/)
국립박물관 홈페이지(http://museum.go.kr/)
호암미술관 홈페이지(http://www.hoammuseum.org.kr/)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ocp.go.kr/)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o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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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07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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