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사상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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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개혁사상 입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중세 후기의 기독교

제3장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제4장 스콜라주의와 종교개혁

제5장 은총의 교리

제6장 성서로의 복귀

제7장 교회론과 성례론

제8장 종교 개혁의 정치사상

본문내용

의 비유를 사용,교회는 의로운 자와 악한 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심판날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급진주의자는 도다투스적 교회관을 발전시킨 반면 루터는 어거스틴의 교회관을 받아들였다. 루터는 어떤 근거위에 가톨릭 교회와 결별했는가? 어거스틴의 교회론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의 부패가 그것이 거짓 교회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참된 교회의 표지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르게 시행된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이 정의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가톨릭 교회를 떠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주의적 회중이 여러 파당으로 분열한다고 하는 것은 개혁의 목적에 치명적이라는 칼빈의 정치적 판단을 반영하고 있다. 루터는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라는 관점에서 정의했다. 칼빈은 말씀 선포의 중요성을 여전히 보존하면서도 말씀이 교회 정부의 특정한 형태를 규정해 준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칼빈이 죽을 무렵 개혁파 교회는 가톨릭의 경쟁자가 될 만큼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었다.
제 8장 종교개혁의 정치사상
관 주도적 개혁자들이 정치적 꼭두각시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국가나 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개혁자들의 이해는 그들의 신학적 전제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 루터의 두 왕국론
중세에는 두 신분론, 세속적 신분과 영적 신분이 발달했다. 영적 신분은 세속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할 수 있지만 세속적 신분은 영적 신분의 일들에 간섭해서는 안되었다. 교회의 개혁은 교회 그 자체의 문제이며 평신도들은 교회의 개혁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권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교회 내부의 행정조직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직분의 차이일 뿐 계급의 차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머리와 한 몸이 있을 뿐이다. 니케아 회의를 소집할 책임이 있던 황제 콘스탄틴이 세속적 신분이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세속적 그리고 영적 신분 사이의 중세적 구별을 철폐하고 난 다음 두 왕국의 교리를 발전했다. 루터는 영적 정부와 세상적 사회 정부를 구별하고 있다. 영적 정부는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의하여 집행된다. 세상적 정부는 검과 시민적 법률을 사용함으로써 집행된다. 교리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권위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들의 합당한 권위 영역은 세상일들 군주들이나 관료들이 신자건 아니건간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 내에는 세가지의 계층 구조, 즉 질서가 존재한다. 가정, 제후들과 관료들, 성직자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신적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교회의 영적 권위는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설득적인 것이며 개인의 신체와 재산이 아니라 그의 영혼에 관심한다. 국가의 세속적 권위는 설득적이 아니라 강제적인 것이며 개인의영혼이 아니라 그의 신체와 재산에 관심한다. 그것은 타락하고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가 갖는 두 측면일 뿐이다. 농민전쟁은 루터의 사회 윤리가 갖고 있는 긴장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농민들은 산상수훈의 개인 윤리에 따라 살아야만 했다. 군주들은 폭력적인 강제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 되었다. 개혁이 공고히 되기 위해서는 독일의 군주들과 관료들의 절대적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세속 지배자들에게 종교적 위엄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쯔빙글 리가 모든 군주들은 결국에는 폭군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주장했던 반면 루터는 이처럼 확실히 군주제주의자였다. 부처가 세속 정부의 특정한 형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건하고 성령의 인도에 자신을 개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사한 입장이 1536년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도 나타나고 있다.
2. 국가와 관료 체제에 대한 쯔빙글리의 입장
쮜리는 시의회의 동의와 적극적인 관여 없이는 개혁될 수 없다. 쯔빙글리에게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각기 다른 방식에 불과했다. 루터의 정치 이론과 쯔빙글리의 이론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 첫째 정부의 필요성은 죄의 결과이다. 둘째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셋째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넷째 급진주의자들에 반대하여 그리■ㅡ가도인들이 공적 직분을 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섯째 개인 윤리와 공적 윤리를 구별한다. 여섯째 기독교적 의와 국가적 의를 구별하고 있다. 쯔빙글리에 있어서 시의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거나 도전할 위치에 있지 않다. 쯔빙글리는 시의회가 하나님의 말씀아래 있다고 이해했지만 시의회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는 위치까지 자신을 끌어올렸다. 쯔빙글리는 세가지의 정치제도를 구별하고 있다.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이다. 쯔빙글리에 있어서 폭정은 관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다. 쯔빙글 리가 귀족적 정부형태를 선호했기 때문에 잘못된 지배자들을 폐위시킬 수 있는 다수의 평화적 수단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루터의 상황은 약간 달랐다.
3. 관료제와 목회 사역에 관한 부처와 칼빈의 입장
부처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서역은 시의회가 교회를 개혁할 임무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속 지배자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도 부처는 주장하고 있다. 이제 16세기에는 세속 지배자들을 그 도구로 사용하신다. 목회자의 임무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인데 관료들의 임무는 말씀에 따라 지배하는 것이다. 부처에게 있어서, 관료들이 경건하며 성령의 인도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원칙이다. 교회와 국가의 곤계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있어서 정치적 권위가 영적 권위를 폐기하도록 허락되어서는 않되는 반면, 영적 권위가 정치적 권위를 폐기한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은 배척된다. 칼빈에게 있어서 관료들과 목회자들은 모두 동일한 임무를 위탁받은 사람들이다. 차이는 사용할 수 있는 도구와 각각의 권위의 영역에 있어서의 차이에 불과할 뿐이다. 경쟁적이라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칼빈 역시 군주제에 대해 심한 불신감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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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16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9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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