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고 싶은 나라 - 터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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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내가 가고 싶은 나라 - 터키에 대하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내가 가고 싶은 나라 - 터키에 대하여

● 터키국기
● 터키의 국화(야생 튤립)
● 터키의 수도
● 터키의 위치
● 언어“(터키어)
● 터키의 역사
● 터키의 정치
● 터키의 외교
● 터키의 군사
● 터키의 경제
● 터키의 교통과 통신
● 터키의 사회
● 터키의 문화
● 터키의 과학기술
● 터키와 대한민국관계

본문내용

나 농구 등의 프로 스포츠가 인기가 높으며, 레슬링은 전통적인 터키의 스포츠로서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는 스키장이 각지에 있으며, 최근 새롭게 실내 빙상장이 설립되어 실내 스케이팅을 즐기고 있으나 빙질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여름에는 지중해, 에게해, 흑해 등에서 해수욕을 할 수도 있고 고급 호텔의 풀장이나 시립의 실내외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 골프는 아직 충분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으나, 이스탄불, 안탈리아(Antalya) 및 이즈미르(Izmir) 등 주요 도시에 18홀의 정규 골프장이 다수 설치되어 있는데, 앙카라에는 골프장이 없다. 또한, 각종 스포츠 용품의 구입에 있어서도 테니스 용품 등은 별 문제 없이 구입할 수 있으나, 그 외의 특수한 스포츠 용품은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국인의 경우에는 지참해 가는 것이 좋다.
앙카라와 이스탄불 등 대도시에는 영화관이 많이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고, 국립 오페라·발레 극장 외에는 연극을 위한 2, 3개의 국립극장 및 콘서트 홀이 있어, 10월부터 4월에 이르는 문화시즌에는 오페라, 발레, 연극 등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국립미술관 등에서는 회화 전시회가 개최된다.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하얀 성≫(1985)≪제브뎃씨와 아들들≫(1982), ≪흑서≫ (1990), ≪새로운 인생≫ (1994), ≪내 이름은 빨강≫ (1998), ≪눈≫ (2002), ≪이스탄불-추억과 도시≫(2003) 등 특유의 개성이 묻어나는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약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 터키의 과학기술
터키 정부는 1855년 국내전신 업무를 시작하였고, 1909년 이스탄불에 터키 최초의 수동식 전화 교환기가 설치되었으며, 우정성이 설립되었다. 1999년 현재 공중 통신 서비스를 위한 본회선수는 1950만 회선이다. 교통부는 통신산업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유선통신을 관리하는 곳과, 주파수를 관리하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터크 텔레콤은 1997년까지 모든 통신서비스를 독점제공하였으며, 디지털 교환망의 현대화를 추진하여 508대 교환기의 성능을 향상시켰고, 1997년 현재 약 1730만 교환용량을 확보하고, 23.75%의 회선 보급률을 기록했다. 1996년 마마리스, 이즈미르, 이스탄불을 잇는 해저광섬유 망을 2개의 국제 해저광섬유 망에 링크시켰다. 셀룰러 전화 가입자수는 2004년 3470만 명이다. 주요 셀룰러 서비스 사업자로는 터크 텔레콤, 터크셀, 텔심이 있다. 인터넷 서비스는 1996년 터넷의 개통으로 시작되었다. 민간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자는 터크 텔레콤의 임대 회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2004년 인터넷 사용자는 1,022만 명이며 인구 1만명당 인터넷 이용자수는 1,413명이다. 같은 해 인터넷 호스트수는 474,129개, 1만명당 호스트수는 65.6개이다.
1993년 국영방송의 독점을 끝내는 방송법으로 인하여 민간 채널이 합법화되었다. 1997년 현재 전국방송을 실시하는 방송사는 국영방송사인 TRT를 비롯하여 5개사가 있으며, 지역방송업자는 국영인 BRTK사와 ATV사가 있다. CATV서비스는 1986년 앙카라에서 처음 시작 된 이후 1997년 6월 현재 10대 도시에서 50만 가구를 대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 터키와 대한민국관계
터키는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 우리 나라를 혈맹 우방국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후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면서 우리 나라와의 경제협력 증진을 희망하고 있다 . 터키는 1949년 8월14일 우리나라를 승인, 1950년 7월 한국전 참전 결정, 1957년 3월 한국과 수교하였으며, 같은 해 6월 한국 공관, 1966년 7월 유엔군 산하 터어키 중대 철수, 1972년 서울 공관을 설치하였다. 1977년 12월 통상진흥 및 경제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이스탄불 총영사관을 설치하였다. 1982년 12월 대통령 에브렌, 1991년 총리 아크불루트가 방한하였다. 1972년 사증면제협정, 1974년 문화협정, 1977년 통상진흥 및 경제기술협력협정, 1979년 항공협정, 1986년 이중과세방지협정, 1994년 투자보장협정, 1997년 섬유협정, 1999년 원자력협력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터키는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북부 이라크에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이 파병한 일에 대하여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특히, 케난 에브렌(Kenan Evren) 대통령의 공식 방한(1982년) 및 외잘 총리의 공식 방한(1986년) 후 우리 나라의 발전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경제발전이 터키의 경제발전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터어키는 UN, IAEA 등 국제무대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하고 북한과는 2001년 6월 수교하였다. 양국은 국민 정서, 언어, 관습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하여 유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두 나라 국민들간의 유대감이 더욱 확산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1920년대에 러시아 군대와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탈출한 200여 명의 터키인이 우리나라에 집단 이주, 서울과 대구·부산 등지에서 의류·담요·직물 등을 판매하며 거주하였으나 8·15광복과 함께 모두 해외로 이주하였다. 한-터 양국간 교역은 1990년 이후 연평균 15%가 넘는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면서 1997년에는 11억대의 교역량을 기록하였다. 2000년 대한수입액 12억 600만 달러, 대한수출 5100만 달러이었는데 터키 경제불황과 국내 IMF사태의 영향으로 양국간 수입수요가 냉각됨으로써 8억불대로 급감한 후 2002년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 2003년에는 13억불대를 넘어섰다.
2004년 23억달러, 2005년 29억달러를 상회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수송기계, 전자제품, 직물, 산업기계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농산물, 철강제품, 비금속광산물, 수산물, 섬유제품 등이다. 우리나라의 대터키 투자는 2006년 6월 191,739달러이며 이 중에서 제조업이 87%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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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01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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