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기원과 국가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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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인의 기원과 국가의 형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 장 韓國人의 起源과 국가의 형성
* 고대사 연구의 눈엣가시 식민주의사관
* 삼국유사 강독, 고조선 및 위만조선 등
1-a. 한국인의 기원
1-b. 한국인의 기원
1) 성읍국가의 성립과정
2) 성읍국가의 명칭문제

2-a. 국가의 형성
1) 고조선의 등장
2)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
3) 고조선의 변천
4) 고조선의 사회구성
2-b. 국가의 형성
1) 단군신화의 문제점
2) 朝鮮 명칭의 기원
3) 고조선 건국 연대의 고찰
4) 기자조선의 실체
5) 단군신화의 유형 및 기능

3. 고조선사에 대한 인식의 변천

본문내용

당나라 배구전에 이르기를
高麗本孤竹國[今海州],
고려는 본래 고죽국인데
周以封箕子爲朝鮮,
주에서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라 하였다.
漢分置三郡,
한나라가 삼군을 나누어 두니,
謂玄樂浪帶方[北帶方].
현토, 낙랑, 대방이라 말한다.
通典亦同此說.
통전 또한 이 말과 같다.
[漢書, 則眞臨樂玄四郡,
한서에는 진번, 임둔, 낙랑, 현토 사군이나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여기는 삼군이고 이름 또한 같지않으니 어찌된 것인가
* 원문사료 *
#三國遺事1卷-1紀異-魏滿朝鮮-00
魏{衛}滿朝鮮.
#三國遺事1卷-1紀異-魏滿朝鮮-01
前漢朝鮮云:
전한서 조선전에 이르기를
自始燕時,
처음에 연이 시작된 때로부터
常略得眞番朝鮮
항시 진번, 조선을 침략하여 얻었다.
[師古曰: 戰國時, <燕>國始略得此地也.]
爲置吏築障.
관리를 두고 보루를 쌓게 하였다.
秦滅燕,
진이 연을 멸하고,
屬遼東外,
요동의 변방을 속하였다.
漢興, 爲遠難守,
한이 일어나 멀어 지키기가 힘들게 되자
復修遼東故塞,
다시 요동의 옛 보루를 수리하여
至浿水爲界
패수를 경계로 하여서
[師古曰, 浿在樂浪郡.]
屬燕.
연에 속하였다.
燕王盧反入匈奴.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들어가
燕人魏亡命,
연인 위만이 망명하였다.
聚黨千餘人,
천여인의 무리를 이끌고
東走出塞,
동쪽으로 도망쳐 요새를 나갔다.
渡浿水,
패수를 건너
居秦故空地上下障.
진의 옛 빈땅 위 아래 보루에 살면서
稍役屬眞番朝鮮蠻夷,
진번 조선의 오랑캐들을 복속시키고
及故燕齊亡命者,
옛 연, 진의 망명자들을 복속시키고
王之, 都王儉.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다.
[李曰: 地名. 臣讚曰: 王儉城, 在樂浪郡浿水之東.]
以兵滅,
무력으로써 멸하여
侵降其旁小邑,
그 주위의 소읍들을 침범하여 항복시키고
眞番, 臨屯, 皆來服屬,
진범, 임둔, 모두 와서 복속케 하니,
方數千里.
사방이 수천리였다.
傳子至孫右渠.
아들에게 전하여 손자 우거에 이르러
[師古曰: 孫名右渠.]
眞番, 辰國, 欲上書見天子,
진번,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하였으나
雍閼不通(옹알불통)
길을 막아 통하지 못하였다.
[師古曰: 辰謂辰韓也.].
元封二年,
원봉 2년,
漢使涉何諭右渠,
한이 섭하를 시켜 우거를 타일렀으나,
終不肯奉詔.
끝내 명을 받들기를 거부하였다.
何去至界,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에 닿아,
臨浿水,
패수에 이르자,
使馭刺殺送何者,
마부를 시켜 자기를 바래다주는 자를 찔러죽였다.
朝鮮裨王長
조선의 비왕 장을(=바래다주는 자)
[師古曰: 送何者名也.]
卽渡水,
곧 패수를 건너
馭入塞, 遂歸報.
말을 몰아 요새로 들어가 마침내 돌아가 알렸다.
天子拜何爲遼東之{東}部都尉,
(천자배하위료동지{동}부도위)
천자는 섭하를 요동의 동부도위로 벼슬을 주었다.
朝鮮怨何, 襲功殺何.
조선은 섭하를 원망하여 습격하여 섭하를 죽였다.
天子遣樓舡{船}將軍楊僕,
천자는 누선장군 양복을 보내어
從齊浮渤海,(종제부발해)
제 땅으로부터 발해를 건너게 하여
兵五萬, 左將軍荀,
병이 5만과 좌장군 순채가
出遼討右渠,
요동으로 나와 우거를 치니,
右渠發兵距.(우거발병거험)
우거는 병사를 내어 험준한 곳에서 막았다.
樓舡{船}將軍將齊七千人,
누선장군 제의 7천인을 거느리고
先致王儉.
먼저 왕검성에 일렀다.
右渠城守,
우거는 성을 지키며
規知樓舡軍小,
누선장군의 군이 작음을 보아 알고
卽出擊樓舡,
즉시 나아가 누선장군을 공격하였다.
樓舡敗走,
누선장군은 패하여 도망하니
僕朱衆,
양복(누선장군)은 무리를 잃어
遁山中獲免.(둔산중획면)
산중으로 도망가 붙잡히는 것을 면하였다.
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
좌장군은 조선의 패수 서군을 공격하였으나
未能破.
능히 깨뜨리지 못하였다.
天子爲兩將軍未有利,
천자는 두 장군이 유리하지 않음에
乃使衛山,
이에 위산을 시켜
因兵威往諭右渠,(인병위왕유우거)
인하여 무력으로 시위하여 가서 우거를 타이르니
右渠請降,
우거는 청하여 항복하여,
遣太子獻馬,
태자를 보내어 말을 바쳤다.
人衆萬餘,
사람 만여 무리가
持兵, 方渡浿水,
무기를 들고 막 패수를 건너려 하자
使者及左將軍,
위산과 좌장군은
疑其爲變謂,
그 변고를 의심하여 이르기를
“太子已服, 宜毋持兵.”
태자가 이미 항복하였기에 마땅히 무기를 들지 않아야한다.
太子亦疑使者詐之,
태자 또한 사자가 속일 것을 의심하여
遂不渡浿水,
마침내 패수를 건너지 않고
復引歸.
다시 이끌고 돌아갔다.
報, 天子誅山.
이를 알리니, 천자는 (위)산을 베었다.
左將軍破浿水上軍,
좌자욱ㄴ 패수 상군을 깨뜨리고
前至城下,
이에 성밑까지 이르러
圍其西北,
그 서북을 둘러싸고
樓舡亦往會居城南,
누선장군 또한 가서 성남쪽에 모이니
右渠堅守,
우거가 굳게 지켰다.
數月未能下.
수 개월 능히 함락하지 못했다.
天子以久不能決,
천자는 오랫동안 능히 결정나지 않아
使故濟南太守公孫遂往正之,
고로 제남태수 공손수를 시켜 가서 바로잡게하니
有便宜將以從事.
장수에게 일을 편의에 따르도록 하였다.
遂至,
마침내 이르러
縛樓舡將軍,(박루강장군)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其軍,
아울러 그 군사를
與左將軍,
좌장군의 군사에 합하였다.
急擊朝鮮,
조선을 급히 쳤다.
朝鮮相路人,
조선상 로인
相韓陶, 尼谿相參, 將軍王
상 한도, 이계상 참, 장군 왕협등이
[師古曰: 尼谿, 地名, 四人也.],
相與謀欲降,
서로 모의하여 항복하고자 하였다.
王不肯之,
왕이 그것을 거부하였다.
陶, 路人, 皆亡降漢,
한도, 왕협, 노인 모두 한에 항복하러 도망하는데
路人道死,
도중에 노인이 죽었다.
元封三年夏,
원봉 3년 여름에
尼谿相參,
이계상 참은
使人殺王右渠來降.
사람을 시켜 우거왕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王儉城未下,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아
故右渠之大臣成己又反,
고로 우거왕은 대신 성기가 또 배반하여
左將軍使右渠子長, 路人子最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장과 노인의 아들 최를 시켜
告諭其民,
그 백성에게 타일러 말하여
謀殺成己.
모의하여 성기를 죽였다.
故遂定朝鮮,
고로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爲眞番/臨屯/樂浪/玄四郡.
진번,임둔,낙랑,현도 사군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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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4.15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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