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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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란?
2. 기록유산의 선정목적
3. 기록유산의 주요 선정 기준
4.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5.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Ⅱ. 실록에 대해
1. 실록이란?
2. 조선왕조실록이란?

Ⅲ. 조선왕조실록의 편찬 방법
1. 실록의 편찬 배경
2. 사초
3. 편찬시기
4. 주요 수록 내용
5. 실록의 제작자
6. 편찬 방법

Ⅳ. 사관, 그들은 누구인가?
1. 사관이란?
2. 사관의 등장
(1) 중국
(2) 우리나라
3. 사관의 자격과 임용
4. 사관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는가?
(1) 조선왕조실록의 구성
(2) 사론이란?
(3) 사론의 역사의식

Ⅴ. 조선왕조실록의 보관과 수난사
1. 실록 보관의 의의
(1) 당대적 의의
(2) 현대적 의의
2. 실록 보관의 역사 - 사고(史庫)
(1) 조선 전기 - 4사고 체제
(2) 외적의 침입 속에서 - 5사고 체제
(3) 새벽이 지나고
3. 사고의 운영과 실록의 보안
(1) 수비조직
(2) 관리시설
(3) 실록의 관리 및 보안
4. 실록의 수난사
(1) 임진왜란
(2) 이괄의 난
(3) 병자호란
(4)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Ⅳ. 조선 이전의 실록
1. 삼국시대 실록
2. 고려실록
3. 중국의 실록
(1) 명나라
(2) 청나라 실록
(3) 일본의 실록
(4) 월남의 실록

본문내용

기록하고 있다.
청실록의 편찬방식은 일반적인 실록 편찬 방식과 동일하다. 그런데 청실록에는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한문, 만주어, 몽고어로도 서술되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림을 그려 넣은 실록으로는 태조실록이 있는데 그 때문에 태조실록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태조, 태종, 세조의 3조 실록은 만주실록이라고도 하며 여기에만 그림을 그려 넣었다. 한문, 만주어, 몽고어의 세 가지 언어로 실록을 만드는 것은 끝까지 지켜졌다.
청실록은 북경의 궁중과 만주 봉천의 숭모각 등에 5부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청실록도 처음에는 밖으로 흘러나온 일이 없었는데, 1900년의 의화단 사건으로 불타고 흩어져 그 일부가 일본, 영국 등지로 흘러갔다.
청실록도 고쳐 쓰인 적이 있었다. 3조 실록은 강화, 옹정 연간에 세 번 개정되었다. 그러나 상희 황제부터 광서 황제까지의 실록은 손댄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청실록은 내용이 자세하여 사료적 가치가 높다. 청나라의 다른 자료들도 내용이 충실하고 모두 간행되어 연구 자료로써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청실록 중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봉천에 있는 승모각본뿐이다.
(3) 일본의 실록
일본은 한문을 뒤늦게 수용했지만 역사서 편찬은 빨랐다. 한문체로 된 일본서기가 이미 8세기 전반에 편찬된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9세기 말에는 실록이라는 이름으로 편찬된 역사서도 나왔다. 문덕황제실록과 뒤이어 나온 삼대실록이 그것이다. 일본의 실록은 분량이 많고 내용도 자세하다. 그러나 원본으로 전해지는 실록은 없고 사본만이 전할 뿐이다. 이러한 사본들은 대체로 18세기에 들어와서야 간행되었다.
문덕황제실록 10권은 897년에 중국의 실록 편찬 방법에 따라 편찬되었다. 그 이전에는 역사서들이 보통 여러 대의 역사를 한꺼번에 편찬했다. 그러므로 책 이름도 일본서기, 속일본서기, 일본후기, 속일본후기라고 붙였다. 그에 비해 문덕실록은 한 왕대의 역사서로 실록이라 붙일 수 있었다. 삼대실록은 901년에 편찬되어 청화, 양서, 광효 3대 천황의 실록을 묶은 것이다.
한편 제 1대 천황인신무 천왕으로부터 제 58대 광효 천황에 이르는 9세기까지의 역사를 6국사로 편찬했는데 끝의 두 역사에서만 실록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나머지는 기라는 명칭을 붙였으나 내용과 형식은 다른 것이 없다.
일본 실록은 삼대실록을 끝으로 더 이상 편찬되지 않았다. 실록은 고대 율령체제의 산물이었으므로 10세기 초에 율령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제가 실시됨에 따라 더 이상 실록은 편찬될 수 없었다. 일본은 고대 국가까지는 한국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하여 중국문물이 잘 전수되었으나 왜가 지금의 금강인 백강 어구에서 당나라에게 백제와 함께 대패한 후로는 중국화의 길을 포기했다. 그래서 일본은 문치주의 정치로 전환하지 못하고 무사계급의 봉건제적 무치주의에 머물고 말았다. 실록은 문치주의의 산물이었으므로 일본에서는 더 이상 실록이 편찬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그 후 실록 대신 이야기 식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서들이 나타났다.
(4) 월남의 실록
일본이 고대에만 실록이 있었다면 월남은 18세기 이후에야 실록이 편찬되었다는 특징을 가진다. 월남의 실록은 완조(1802-1945)때 와서 비로소 편찬되기 시작했다. 월남의 역사서로는 13세기 후반 전조 시대의 사관인 여문휴가 지은 대월사기, 15세기 중엽 여조 시대의 반부선이 지은 대월사기, 1479년에 사관 오사련이 이를 보완한 대월사기전서가 있다. 이러한 역사서들은 대체로 국가가 융성할 대 만들어졌다.
월남의 실록으로써 완조시대의 대남실록이 유명하다. 대남이라는 병칭은 1838년에 완조의 제2대 황제 명명제가 붙인 것으로서 대월보다 자주적인 이름이라고 여겼다. 또한 실록을 식록이라 했는데 이는 명명제의 황후 호씨 이름에 실자가 들어있어 이 글자를 피하기 위한 것일 뿐 내용이나 편찬방법은 실록과 같다. 대남기록은 분량이 548권이나 되고 서술대상 기간도 완조 초기부터 19세기 말까지 330년이나 된다. 구성은 편년체 기록인 식록 부분과 인물의 전기인 열전 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식록 부분이 열전의 5배나 된다. 대남식록에는 죽은 사람의 이력을 적는 졸기가 없기 때문에 이를 열전으로 대신한 것이다. 대남 식록은 1935년까지 편찬되었다고 한다. 실록 중에서 가장 최근까지 편찬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부실하고 분량도 적다 장편의 경우는 장수가 20여장에 지나지 않고 각 장마다 글자 수가 적은데다가 줄을 바꾸어 쓰거나 떼어 쓴 부분이 많다. 기사가 풍부하지 못 한 것도 이러한 편찬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편과 정편의 4가까지의 내용은 충실하나 그 이후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자주적인 사실을 기록할 수 없었다.
<참고문헌>
- 이범직, 김종연,『한국인의 역사의식』, 2005
- KBS TV조선왕조실록 제작팀,『책으로 보는 TV조선왕조실록1』
- KBS TV조선왕조실록 제작팀,『책으로 보는 TV조선왕조실록3 (조선은 양반의 나라가 아니오)』
- 이성무,『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 2005
- 김세철, 김영재, 『조선시대의 언론 문화』, 2006
- 강구진 외,『두산동아세계대백과사전26』, 두산동아, 2002
- 김병인,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가치」
- 김경수, 이영화,『테마로 읽는 우리역사 (새로운 한국사 인식을 위한 우리 역사 이야기)』, 2004
- 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인종에서 고종까지 독살설에 휘말린 조선의 임금들)』, 1999
- 박영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1996
- 한국문원 편집실, 『왕릉』, 1999
- 이덕일,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999
-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2000
-인터넷 사이트
Available : http://bgs.hs.kr/dapsa/junbook/26-wangjosilloc.htm
- 원광대학교, 「조선왕조실록의 편찬에 대한 고찰」
Available :
http://cafe.naver.com/gaury.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509
  • 가격2,500
  • 페이지수24페이지
  • 등록일2007.07.12
  • 저작시기2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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