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예술의 사상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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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내부에서는 천장과 창을 높이하고 첨두(尖頭) 아치로 하였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상승감이 강조되면서 창이 많아졌다. 고딕 건축은 일반적으로 대형화한 것이 많으며 장식도 복잡하여 완성에까지 수 백년이 소요된 건물이 많다.
특히 리브볼트의 발달은 로마테스크 건축의 육중한 벽체를 얇게 만들어 개구부의 자유스러운 사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빛을 실내에 유입하는데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고딕건축에서 빛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은 스테인드글라스와 트레이서리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건물의 내외에 많은 조각을 장식, 얇은 벽체에 구조화된 장미창과 이에 사용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유입되는 빛과 고측창에서 스며드는 빛으로 고딕건축의 초월적 내부공간은 신성한 빛으로 가득채워져 천국의 신비성과 장엄성이 가득 차 있는 정신적 차원의 기독교 공간을 창출했다.
※대표적 건축물
1.초기고딕 건축
▶노트르담 성당, 파리, 1163~1250년경
-노트르담 성당의 서측 정면: 정면을 피어를 사용하여 세 부분으로 나눈다.
-모든 요소들을 일관성있는 전체로 멋지게 통합시키며. 조각과 스테인드 글라스와 더불어, 조화와 균형으로 충만한 '종합 예술 작품'으로 완성되고 있다. 또한 이 성당은 로마의 구 성 베드로 성당이 제3차 클뤼니 성당을 의식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보이며 보수적 성향과 진보적 성향이 매혹적으로 합 쳐져서 구체화되고 있다.
2.중기 고딕 건축
▶샤르트르 성당, 프랑스, 1134~1220년경
- 처음으로 로마네스크적인 구획체계의 모든 잔재가 최종적으로 극복이 되었다.
- 샤르트르 성당은 플라잉 버트레스의 이용에 대해 고려하여 계획한 최초의 건물이다
- 각 부분의 비례는 주관적인 직관이 아닌 정확한 기하학적관계에 입각해서 결정되었다.
▶랭스 성당, 프랑스, 1211년 착공, 쟝 도르베
- 프랑스 왕들의 즉위식이 거행되는 장소이다.
- 외관: 모든 유럽고딕 성당 중에서 가장 잘 통합된 것이다.
- 랭스 성당 내부를 다른 프랑스 고딕 성당의 내부와 구별해주는 것은 조소성의 정도에 있어 서 그 의미가 더욱 깊다는 것이다.
▶아미앵 성당, 프랑스, 1220~1236년경, 로베드 드 뤼짜르쉐
-성기 고딕건축은 파리북쪽의 피카르디에 있는 바로 이 아미앵 성당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건물을 선과 빛만으로 환원시키고자 하였던 고딕 건축가들의 노력은 아미앵 성당에서 그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 클리어스토리의 창은 기둥사이의 전 면적을 다 차지하며, 여기로부터 빛이 내부로 넘쳐들 어온다. → 건물내부를 환상적으로 비물질화 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3. 후기 고딕 건축
▶이탈리아의 밀라노 성당, 이탈리아, 1386년경 착공
- 밀라노 성당은 예를 들어 플로렌스 성당이나 오르도비에토 성당보다 더 북유럽적이다.
- 이 건물의 비례, 특히 네이브의 비례는 전적으로 이탈리아적인 것으로 높이에 비해 폭이 비교적 넓게 되어 있다.
◈ 맺는 말
중세의 미술은 무엇보다 종교적이다. 서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유럽은 야만화 되었는데, 10세기경부터 그리스도교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의 것을 로마풍 이라는 의미에서 로마네스크양식, 1150년경부터 16세기 전반까지를 고딕양식이라 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적이었고, 신의 찬미에 그 모든 것을 바쳤던 시기이다. 신의 빛을 보기 위해 그에 적합한 고딕 성당을 지었고, 조각과 회화도 그를 따랐다. 신을 본다는 것은 한편 신을 인간화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신을 표현하기 위한 모델이 되었고, 이 모델로 인해 미술은 다시 인간적인 것이 되었다.
성 드니의 수도원장 쉬제르가 실현해 낸 높은 궁륭의 성당 본체와 두터운 벽을 덜어내고 들어간 스테인드 그라스, 파사드의 장미창과 정문 위 팀파늄과 입구 기둥들에 부가된 더욱 인간화된 조각상들이 신의 빛에 대한 찬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의 성모를 통한 인간화처럼, 신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더 부드러운 신을 모시기 위한 노력으로 조각상들은 점차로 인간화되고 개성화되기에 이르렀고, 회화도 종교적 주제를 상징적이고 경건하게 처리하기 보다, 지상의 실제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그려내기에 이르렀다.
미술사 일반에서는 이러한 양식의 변화추이를 르네상스적 입장에서 보아 발전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변화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의 변화에 따른 미술의 변화인 것이다. 고딕시대의 장인들이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표현이 오래 지속되었던 이유는 작품이 현실재현적일 필요성을 주문자들이 느끼지 않았을 따름이다. 눈앞에 있는 것을 참조하지 못하게 한 것은 종교적 이념과 관습일 뿐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종교적 이념이, 그리고 사회적 요구가 생겨나자마자, 미술은 일순에 고대 그리스 로마풍이 되었다.
르네상스를 주도한 나라는 이탈리아이다. 그들은 하늘 높이 솟고, 온갖 것들로 장식된 고딕성당을 경멸했으며, 고대 로마의 바실리카를 연상시키는 건축물을 선호했다. 정적인 질서를 추구했고, 규칙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단순하고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단일성을 추구했고, 조화적, 균형적 요소, 올바른 비례, 정수비율을 요구하였다. 한편 조각이나 회화에서는 동일하게 사실주의적 양상을 보이지만, 북유럽의 작가들이 눈앞의 모델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 로마 조각상들에서 이상적인 비례를 찾아내고, 그를 적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결국 북유럽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미술양식을 따르게 되었지만, 인본주의의 시작이 - 인간이 자신을 모델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좁은 관점에서 - 신을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시켜 보고자 했던, 그래서 상징적, 암시적인 표현보다는 실제적 표현을 수행했던 고딕미술에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참고자료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페터 쿤츠만/프란츠-페터 부카르트/프란츠 비트만 지음, 예경)
-서양건축: 서양건축의 이해 (이호정 지음, 예문당)
-서양건축사 (조희라 지음, 건기원)
-클릭, 서양미술사( 캐롤 스트릭 랜드 지음, 예경)
-그 밖의 서적,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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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1페이지
  • 등록일2007.07.16
  • 저작시기2007.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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