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그리스에서 중세철학까지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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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그리스에서 중세철학까지 총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도입하여 가짜 디오니시오스(Dionysios)의 번역에 의하여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스코투스 에류게나, 신앙과 이성(理性)의 관계를 명확히 한정시키고 스콜라학의 방법을 확립하여 스콜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켄터베리 대주교인 안셀무스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神)의 존재에 관한 안셀무스의 증명은 유명하다.
【전성기】 13세기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서(自然學書)를 아라비아 철학에서 이입함으로써 종래의 신학으로부터는 독립된 지적 연구(知的硏究)가 일어난다. 이 새로운 연구를 대폭적으로 채용하고 게다가 이것을 전통적인 스콜라학의 체계 속에 혼연히 융화시킨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신학에 대한 철학의 원리적인 독립성이 유지되면서 전체는 신학의 체계로서 종합되었다. 이에 비해 보나벤투라는 전통적인 아우구스티누스적신비주의적 경향을 지켰다.
【말기】 14세기로, 신앙과 이성과의 조화가 점차 상실되었다. 유명론자(唯名論者) W.오컴,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 M.J.에크하르트가 대표적이다. 神學의 侍女(ancilla theologiae) 중세 이탈리아의 신학자 P.다미아니가 신학에 대한 철학의 위상(位相)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명칭. 즉 철학이 신학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당시 성서의 권위에 대하여 이성(理性)의 권위를 강조한 변증학(辯證學:dialectica)이라는 철학적 학문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그는 변증학이 그리스도교의 신비를 해명하기 위하여 이용되는 경우의 기준을 만들고, 변증학은 여주인에게 봉사하는 시녀와 같이 신학에 예속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말은 철학이 신앙의 진리나 신학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를 표현한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3. 7)
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신학자. 로마와 나폴리 중간에 있는 로카세카 출생. 성주(城主)의 아들로 처음에 나폴리대학에 입학했으나 설교 및 학문연구를 사명으로 하는 도미니코회(會)에 들어가 파리와 쾰른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사사하였으며, 그 동안에 사제(司祭)가 되었다. 1252년 파리대학 신학부의 조수로 연구를 심화시키는 한편, 성서 및 《명제집(命題集)》의 주해에 종사하였고, 57년 신학교수가 되었다. 59년 이후 약 10년 간 이탈리아 각지에서 교수 및 저작에 종사, 68~72년 재차 파리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나폴리로 옮겼다. 74년 리옹 공의회(公議會)에 가던 도중 포사노바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는데, 그 종류는 그가 대학교수 및 수도회원으로서 행한 각종 활동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신학대전(神學大全):Summa Theologiae》(1266~73)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Summa de Veritate Catholicae Fidei Contra Gentiles》(59~64)등의 교과서적체계적 저작을 꼽을 수 있으며, 《진리에 대하여》 《신의 능력에 대하여》 등 그가 교수로서 지도한 토론의 기록과 성서의 주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요 저작, 그리고 프로클로스, 가짜 디오니시오스, 보에티우스 등의 저작 주해 및 신학과 철학의 갖가지 문제에 대하여 논한 소논집(小論集) 등이 있다. 그는 스콜라철학의 왕이라 불리고, 천사적 박사(Doctor angelicus) 또 공동(共同)의 박사(Doctor Communis)라는 존칭이 주어졌다. 그는 《대이교도대전》의 권두에서 예지(叡智)의 탐구는 모든 인간의 영위(營爲) 중에서도 가장 완전고귀유익하여 커다란 기쁨을 주는 것이라 찬미하였지만,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표현할 말을 고른다면 끊임없는 예지의 탐구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있어 예지의 탐구란 신학철학의 어떤 말로 불리든 간에, 주체 외부에 체계 혹은 작품을 쌓아올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궁극목적을 향하여 전진하는 전인격적(全人格的)인 자기실현의 발걸음이었다. 거기에 토마스 철학의 실존적 성격이 있다.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그는 생애를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반복도, 그리스도교화도 아니며,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를 거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는 철저한 경험적 방법과 신학적 사변(思辨)을 양립시켰는데, 이와 같이 독자적인 종합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창조(創造)의 가르침에 뿌리박은 존재(存在)의 형이상학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학문영역에서 비길 데 없는 종합화를 이룩함으로써 중세사상의 완성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그가 신(神)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相對的自律)을 확립한 일은 곧 신앙과 신학을 배제하는 인간중심적세속적인 근대사상을 낳는 운동의 기점이 되었다.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근대인(近代人)이며, 그 영향은 그의 이름을 붙인 학파를 훨씬 초월하여 현대 사상 전역에 미치고 있다.
神學大典(Summa Theologiae)
중세 이탈리아의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표적인 저작. 3부로 된 대작으로서 제자들에 의해서 보완되었다. 저작연대는 1272~73년까지이다. 제1부에서는 유일신의 존재와 본질 및 창조, 천사인간, 신의 세계통치 등 즉 신론(神論) 119문제를, 제2부는 12편으로 나누어 189문제의 인간론을 다루었다. 1편에서는 인간의 목적행위죄법 등 도덕의 근본문제, 2편에서는 신앙희망사랑정의용기절제 등의 덕(德)에 관한 부분을 다루었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그리스도론을 비롯한 신학적 문제 180문제를 서술하였다. 미완인 채로 죽자 제자 피페르노의 레지날도 등이 아퀴나스의 다른 작품을 인용하여 신학상의 문제 90개항을 보완하여 펴낸 것이다. 그 구성은 13세기에 완성한 대전의 전형으로 각 부는 많은 문제(quaestio)로 나누고, 문제는 다시 항(articulus)으로 세분하였다. 각 항은 문제형식으로 주제가 주어지고 여기에 대한 반론과 본문, 반론에 대한 응답 순서로 논지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중세대학 특유의 수업방식인 토론(討論)에 입각하여 짜여진 체제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7.08.23
  • 저작시기2005.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26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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