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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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모리스의 생애

2.모리스의 건축과 예술, 사상

3.모리스의 고건축물 보호운동

에필로그

본문내용

러한 환경보존을 위해 모리스는 미에 기여하는 과학의 역할을 강조했고, 특히 도시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시계획은 단지 아름다운 장소를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 일상의 좁은 장소나 주변에서 공감할 수 있는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도록 배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고의로 파괴하지 않는 한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거주할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주택단지나 공장이 들어서면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수목을 중심으로 건물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포장도로와 같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정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쓰레기와 함께 거리 외관을 손상하는 야외광고의 부착에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특히 매연의 방지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전력 보급에 따른 공장의 매연 배출을 강도와 같은 중법죄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태퍼드셔 미술학교 강연에서 노동자 계급이 매연이나 불결한 하수도에 의한 환경오염에 항의해 파업을 벌이는 날, 진정으로 예술이 존속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노동자 계급의 공동주택이 햇빛도 들지 않는 불결한 감옥과 같은 곳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모리스는 건물 주변에 정원을 들일 공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도시에 있는 광대한 정원 공간과 사유 공지를 민중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확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 전원을 일반인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게 만들라고 요구하면서 ‘아이들이 부모가 사는 장소와 가까운 정원에서 놀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가 그린 에코토피아에 대한 꿈으로 시작한다. 화창한 6월의 어느날 주인공이 일어나 템스강가에 간다. 어제와 달리 강물이 너무나 맑아 수영을 한다. 그가 만난 젊은 뱃사공 남자는 표정이 밝고 아름답다. 그는 손으로 만든 간소하고 세련되며 멋진 옷을 입고 있다. 주변에는 과거에 매연을 내뿜던 어떤 공장도 없어졌다. 비누공장도 기계공장도 납공장도 없다. 공장에서 들리던 못과 망치 소리도 없다. 대신 너무나 아름다운 돌 아치의 다리가 있다. 강변에는 아름다운 집들과 키 큰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환경오염이 없는 에코토피아의 묘사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유토피아 구상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리스 유토피아의 특징이다.
모리스는 긴급한 도시환경 개선과 함께 철저한 도시 분산화도 주장했다. 그는 도시와 농촌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며, 농촌의 들판이나 자연적인 특색, 즉 황무지 같은 곳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의 사회주의 건축가들과 같이 정원도시를 구상했고, 그러한 생각은 당시의 신도시계획에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모리스는 전원 보호, 흉물 같은 광고게시판 제한, 고건축물 보호, 쓰레기 제한, 청결한 대시 보호 등을 지속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킨 새로운 환경 만들기의 선구자였다. 그는 윌리엄 모리스 William morris
그 분야의 어떤 전문가보다 시대를 앞선 혜안을 가지고 있었고, 그 뒤의 많은 건축가와 환경운동가들은 물론 영국의 건축가들과 미국의 건축가 라이트, 독일 근대 디자인 운동을 추진한 무테지우스 등에게까지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직인과 예술가 사이의 교만한 벽을 만든 계급 차별을 없애고 새로운 직인 길드를 창조하고자 한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에 대한 모리스의 영향은 여러 차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프롤로그
모리스는 인간적으로 그다지 매력적인 용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멋진 예술가 타입도 아니고 말이다. 항상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인 데다가 복장은 언제나 엉망인 보통의 중년 남자. 성격은 불같이 급해서 한번 화가 나면 발작을 일으킬 정도이고, 곧잘 큰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에게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남자. 하지만 실제 성격은 지극히 내성적이고 여리며 고집이 강해서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끝을 보아야했던 모리스. 대식가이자 엄청난 술꾼이기도 했으며 친구들에게 시나 책 읽어주기를 취미로 삼았던 보통 남자. 그는 학자처럼 고상하거나 고고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술로 현실을 바꾸고자 한 노력과 꿈’이 있었고 이것이 보통 사람인 그를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게 사람으로 만들어준 요인이 되었다.
많은 건축가들이 그의 예술과 사상에 영향을 받고 오늘날까지도 그를 애호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의 그러한 평범한 모습과 꿈을 향한 노력이 시대와 예술과 건축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 모든 분야에 감명을 주리만치 가치 있는 것이었다는 반증이 된다.
모리스는 “유용할지 모르거나 아름답다고 믿지 않는 것을 집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생활예술’의 옹호자였고, 생활전체의 공통된 뿌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비전을 가졌다는 점에서 더없이 위대하다. 요컨대 그는 자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에 아로새겨진 즐거움의 원천을 광범하게 남긴 예술가임과 동시에 공예가였고, 나아가 이성적인 수단을 통해 적극적인 운동가로서 총체적인 정치활동을 펼쳤던 사상가였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모리스가 고딕건축을 찬양했음에도 그것을 그대로 현대에 재현하는 것에는 철저히 반대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예로 들면, 오늘날 전통을 계승한다는 명분하에 과거의 건축양식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한국식 건축’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고딕건축 찬양은 어디까지나 건축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건축의 역사에 대한 그의 평가와도 직결된다.
건축사 페브스너가 모리스를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라고 평가한 이후 아직까지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아름다운 예술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했던 모리스. 엄밀히 보자면 겨우 벽지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을 살고 정치 활동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 일생을 마친 그의 일생은 실패한 자의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였던 디자인은 사상이자 혁명이었고 ‘삶의 본질에 대한 인간적 이해력’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도 ‘윌리엄 모리스’ 그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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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8.01.08
  • 저작시기2006.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46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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