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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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환경위기의 시대

2. 환경문제의 현황

3. 환경철학과 반성적 고찰의 필요성

4. 과학의 발전과 문명의 위기

5. 과학기술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

6. 환경문제의 인식론적 해결방안

7.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환

8.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인간실존의 회복

본문내용

질의 속성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가능성은 "물질"이거나 "생명"일 것이며, 세 번째로 가능한 것은 "생명"도 "물질"도 아닌 "의식"혹은 "정신"이라는 형이상학적 속성을 갖게 될 것이다. 아무리 생명이 그냥 물질과 다르고 그것들 중의 어느 하나가 다른 어느 것인가로 환원될 수 없다 해도 물질적 조건을 완전히 떠난 생물체는 실제로 발견할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런 구체적 사실은 생명과 물질 사이에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과 그러한 관계가 우연적이 아니라 필연적임을 암시한다.
존재범주를 가리키는 한 개념은 한편으로 그것과 다른 개념과 논리적으로 구별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과 역시 논리적으로 엄격히 구별된다. "생명"과 "물질"은 논리적으로 엄연히 구별되고 개념적 의미에서도 구별된다. 현상적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 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개념은 아무래도 "물질"과 "생물"일 것이다. 즉 모든 현상적 존재는 "물질"이라는 범주에 속하거나 아니면 "생물"이라는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개념들과는 달리 이 두 개의 개념들을 포괄할 수 있는 더 포괄적이고 현상적인 존재 개념을 생각 해낼 수는 없다. 이 두 개념만은 개념상 서로 단절적, 즉 비연속적 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물"이라는 개념과 "물질"이라는 개념과의 단절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각기 그런 개념이 지칭하는 구체적 생명이라는 존재, 즉 생명체들과 구체적 물질, 즉 물체들과의 단절성을 자동적으로 함의하지 않음을 명백히 염두해 두어야 한다. 구체적인 어떤 것들을 존재적, 즉 현상적 차원에서 볼 때 그것들간의 관계는 단절적이 아니라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도 단절 될 수 없는 "단 하나", 즉 "물질"이라는 개념이나 "생명"이라는 개념으로도 서술될 수 없는 "전체로서의 하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 존재를 다른 한 존재로 환원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물질을 생물로 환원한다거나 생명을 물질로 환원한다는 것은 다같이 처음부터 공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서로 끊어서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똑 같은 이유와 논리에서 물질, 생명, 그리고 인간은 서로 간에 어떠한 선도 명백히 그을 수 없는 서로 연속적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거나 생물이 관물보다 귀하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도 갖지 않는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적능력을 자부해온 인간이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 살며 세계를 인간 중심적 입장에서 의인적으로만 보아왔다. 오늘 인류가 해결해야 할 결정적 문제인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 중심적이며 의인적 세계관의 소산이다. 이제 우리는 낡고 잘못된 세계관을 "생태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관으로 대체해야 한다. 즉 모든 현상과 사물의 가치는 인간 중심적 입장에 서 있는 의인적 세계관으로부터 생명 중심적 입장에 서 있는 의생적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8.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인간실존의 회복
기술공학에 의해서 새로운 차원에 도달하고 변화된 윤리적인 상황에 대해서 책임의 원칙을 하나의 철학적인 처방으로 내세운다. 책임의 철학은 윤리의 지평을 인간들 간의 상호관계를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영역으로 확충시킨다. 세기말적 전환기에 직면한 인류의 미래가 기술과 과학의 폭발적 힘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가에 의해서 좌우된다면, 거시적인 책임의 철학은 시대의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은 영원히 지연시키려고 시도하면서 앞으로의 인류나 다른 생명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자비한 현대인들에게 책임의 철학은 매우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태어날 인류의 복지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강조하는 책임윤리는 오늘의 행위로부터 비롯하는 미래의 삶의 세계에 대한 인간들의 최소한의 상상력을 요청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의도하지 않았던 행위의 가능한 결과에 대한 반성에 의해서 오늘의 행위규범의 정당성이 주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공학적인 체계들은 이제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자리잡고 우리의 행위와 의식, 감정, 욕구 등 실로 그 모든 삶의 영역들에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기술은 그야말로 우리의 운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술과 과학의 발전방향 등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것은 곧, 우리들의 삶과 나아가서 인류의 무명에 대해서 무책임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기술체계들은 기계론적인 모델이 아니라 유기체론적인 모델에 의해서 보다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유기체론적인 사유나 피드백 등의 논리에만 의존해서는 현대 산업문명의 위기,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성장의 한계와 생태계의 위기는 충실하게 다루어지기 힘들다. 인간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공학과 산업체계의 확산으로 인해서 야기된 변화와 관련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규범은 바로 인간의 우주적인 차원에서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지금과 같은 규모로 산업화하고, 상품화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 소위 환경에 대한 산업기술의 영향은 합리적으로 평가되거나, 측정될 수 있는가? 예를 들어 오늘의 화학공장에서 엄청난 규모로 쏟아져 나오는 인공적인 합성 물질들은 지구의 오랜 진화과정에 걸쳐서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물질들일 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더이상 회복시킬 수 없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책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허구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철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대변할 경우, 우리는 결국 자연과 생태계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자연을 자원과 경제적인 행위의 대상으로만 보는 인간 자신의 도구적인 이성에 대한 반성으로 직결된다. 현재의 부정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맑스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미래의 가능한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한 상상력과 책임의식이 인간과 모든 생명의 실존과 관련해서 요청되는 것이다. 자연과의 근원적인 화해를 통해서만 인간의 실존이 회복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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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30
  • 저작시기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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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49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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