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관광자원(관광자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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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의 관광자원(관광자원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선정동기
북한개요

Ⅱ. 본론

평양 지역
백두산 지구
개성 지구
묘향산 지구
금강산 지구
칠보산 지구
신의주 지구

Ⅲ. 결론

본문내용

대통령에게 칠보산을 자랑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5대 명산을 꼽았지만 오늘 노동당 시대에는 6대 명산을 꼽고 칠보산을 단연 첫자리에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한마디 덕분에 ‘함북 금강’으로서의 면모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한 칠보산은 몇 년간의 정비 끝에 99년부터 외국관광객들에게도 관광이 허용됐다. 이 산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피아노 바위와 부부바위, 할아버지 할머니 바위가 있으며, 특산물로는 송이버섯이 있다.
VII. 신의주 지구
평안북도 도청소재지로서 압록강 하구 좌안에서 상류 쪽으로 25km 지점에 있다. 축면산 구릉 밑에 전개된 범람원 위의 사주에 세워진 도시로, 압록강 홍수 때마다 흙탕물이 범람하여 농사조차 불가능한 강기슭이었다. 그러던 것을 시가지 주위에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제방을 쌓고 다시 그 바깥쪽에 대제방을 축조하여 현재는 도시계획에 따른 현대적 시가지를 이루었다. 시가지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의 도로와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직교하는 가로망이 바둑판 모양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가의 북동쪽에 신의주역이 있고, 역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도로가 번화가를 이룬다. 대체로 시가의 북동쪽은 관청가 및 주택구를 이루고, 압록강가의 습지를 간척한 강안 지역이 공업지구를 이룬다.
1. 천리장성
거란족이 요(遼)를 건국하고 993년(고려 성종 12)부터 1019년(현종 10)까지 총 3차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였다. 이때 서희, 강감찬 등의 투쟁으로 모두 물리쳤다. 그후 고려 정부는 북방민족의 남침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강구하였다. 고려 초기부터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려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다가, 1033(덕종 2)년에야 유소로 하여금 성을 축조토록 하였다. 유소는 요의 침입을 막은 전공이 있는데, 이때 옛 석성을 수리하여 위원진, 정융진을 두어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유소는 이러한 성을 바탕으로 축성 계획을 세우고, 산재해 있던 성을 연결하고 새로 축조하거나 보강하여 11년이 지난 1044(정종 10)년에 완성하였다. 성은 돌을 주로 사용하였고, 기초에는 흙을 단단히 쌓아 성축을 높혔다. 서의 높이와 폭이 각각 25자로 7m가 넘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성이다.
2. 통군정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 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으로 정면 4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11호이다. 의주읍성에서 제일 높은 압록강 기슭 삼각산 봉우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의주읍성의 북쪽 장대로서 서북 방위의 거점이었던 의주성의 군사지휘처로 쓰였다. 통군정에 올라서면 이끼 푸른 의주성의 옛 성벽이 눈앞에 보이고 아래로는 압록강의 푸른 물 가운데에 점점이 떠 있는 여러 섬들이 굽어보인다. 서쪽으로는 멀리 신의주·용암포 일대가 바라보이며, 남쪽으로는 ‘의주금강’으로 불리는 석숭산과 백마산 일대의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예로부터 관서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990년(성종 9)에 편찬된 〈임사홍기 任士洪記〉에 기록된 점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처음 세운 것이 분명하나, 1538년(중종 33)에 이를 다시 건립하고 1823년(순조 23)에 수리하였다. 평면이 정방형에 가깝고 바닥에는 앞부분 절반에만 단을 주어 널마루를 깔았다. 바닥 주춧돌 윗면에서 아랫마루까지의 높이는 71㎝, 아랫마루에서 윗마루까지의 높이는 33㎝로서 앞은 높고 뒤는 낮게 하였다. 7도리의 너비에 통천장으로, 모든 부재들에 조각장식을 붙여 내부를 시원하고 화려하게 하였다. 특히 이 건물에서는 목재를 적게 쓰면서도 건물의 입체적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대들보를 겹으로 하고 동자주 대신 제공으로 틀어 올렸다. 평양의 연광정, 강계의 인풍루, 안주의 백상루와 함께 우리나라 누각건물을 대표하는 유적의 하나로서 6·25 때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 복구되었다.
Ⅲ. 결론
북한의 여러 관광자원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남한의 관광지와 북한의 관광지를 한 코스 연계해서 관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같이 분단되어 있는 국가 간의 관광교류와 협력은 이념을 초월하여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공동체적 삶을 형성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면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앞서서 남북한 관광교류에 대해서 꾸준하게 남북한 당국 간에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비무장지대인 DMZ에 평화 생태 공원을 조성하여 협력체계를 구축하자는 주제로 회의가 있기도 했다. DMZ는 남북한의 정전체제에 의해 오랜 시간동안 인적으로부터 격리되어온 곳으로서 생태계의 보존이 잘 되어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뢰가 밀집되어 설치되어있어 사실상은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중무장지대인 곳이다.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건설을 위하여 2000년부터 그 해당지역인 서쪽과 동쪽의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지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생태계의 파괴도 감수해야만했다. 이렇게 50년 이상 분단국가로 살면서 50년 이상 넘을 수 없다고 여겨왔지만 남북한이 연결되는 사업이 진행됨으로써 남북한 간의 관광교류가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미 금강산 관광은 실현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남한의 관광명소와 북한의 관광명소를 연계하여 육로를 통해 남북을 넘나들며 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여 남북한이 함께 고루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고 이것은 양국 간의 균형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평화통일을 이루는 발판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반세기 이상을 분단되어 지내면서 예전에는 정말 북한을 여행하는 것은 꿈같이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떨어져 지내면서 생긴 양국 간의 이념간의 차이와 생활환경의 차이를 서서히 극복해가면서 균형적으로 맞추어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관광교류 협력이 그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를 볼 수 있는 문화 유적의 반 이상이 북한에 남아있고, 이제는 함께 보고, 함께 보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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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12
  • 저작시기2008.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9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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