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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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2.1 혜경궁의 일생
2.2 한중록에 대한 고찰
2.2.1 ‘한중록’ 소개
2.2.2 한중록으로 본 혜경궁의 정치 능력
2.2.3 한중록에 담긴 정치적 의도
2.3 실록으로 본 혜경궁의 정치 능력
2.4 혜경궁이 정치가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

3.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거처하는 처소의 뜰까지 가서 혜경궁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정조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볼 때 그 당시 혜경궁 홍씨가 결코 궁중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음을 나타낸다. 홍씨 자신도 ‘내전에서 권고하겠다’ 고 말한 것을 미루어볼 때 평소에도 홍씨는 정조가 있는 대전에 가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혔으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기록은 이후에도 몇 번 정도 기록된다. 홍씨는 정조의 재위시에도 임금의 친모로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객이었던 것이다.
2.4 혜경궁이 정치가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혜경궁 홍씨는 단순히 궁중에서 남편을 잃고 한 많은 생애를 살다 세상을 떠난 청상과부가 절대로 아니다. 홍씨는 남편을 죽였다는 악처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한중록’이라는 책을 써서 오히려 사람들이 그녀를 동정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정치력이 있는 여성이다. 홍씨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후세사람들은 그녀를 결코 정객이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한중록’이다. 정조 당시의 사람들은 혜경궁을 남편을 죽인 악처로 많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의 전말에 대한 기록이 거의 말살된 상황에서 ‘한중록’이라는 책을 썼으며 그로인해 사도세자의 죽음의 전후 상황은 그녀가 쓴 것이 유일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은 상반된 기록이 없으므로 그녀의 기록을 믿었고 그녀에게 동정심을 쏟아 부었다. 역사가 그녀를 향해 쏠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그녀가 시도한 것이 너무나도 딱 들어맞은 것이다. 둘째로 홍씨는 그 당시 영조와 정조라는 강력하고 힘있는 군주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보통 여성 정치가로 손꼽히는 문정왕후나 명성왕후 시대의 임금들은 나약하기 그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후들의 정치적 능력이 더욱 발휘될 기회가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그러나 혜경궁 홍씨가 살았던 시대는 소위 조선후기 임금중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영조와 정조가 통치를 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혜경궁 홍씨의 정치능력이 그 빛을 발하기엔 시기가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재위기간동안 그의 며느리였으므로 함부로 정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다만 그녀의 친정집안과 보이지 않게 서찰을 교환하며 사도세자를 축출하는데 힘들 보탰을 뿐이다. 실록을 보면 홍씨가 정조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씨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역사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그녀의 의도가 아니였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홍씨는 문정왕후나 명성왕후와는 달리 남편을 잃고 아들과 시어머니에 의해 친정 집안사람들마저 잃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러므로 후세의 사람들은 혜경궁 홍씨를 역사의 피해자라고 인식할 뿐 결코 그녀가 노회한 정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한중록을 쓰지 않았더라도 사도세자 사후에 친정아버지가 유배 가서 죽고 숙부와 동생들도 숙청당하고 다시 손자가 임금이 되어서까지도 그녀의 동생들이 죽었기 때문에 혜경궁 홍씨를 보면 사람들이 동정심을 분명히 가지게 되어있다. 이러한 동정심은 그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한 술 더 떠 홍씨가 한중록이라는 책까지 썼으니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3.결론
필자는 사극 드라마를 매우 즐겨 보는 편이다. 필자가 이러한 논문을 쓰게 된 동기도 어찌 보면 사극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사극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이환경이라는 작가이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이다. 그는 역사를 기록되어진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한 예를 들어 ‘용의 눈물’이라는 드라마에서 그는 정도전에 대한 기존의 일반인들의 생각을 확 바꾸어 놓았다. 정도전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은 왕자를 죽인 역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달리 해석한다. 정도전은 조선을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해 노력한 혁명가이며 그는 자신의 이상을 펴기 위해 그와 다른 주장을 폈던 이방원을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고 묘사한다. 즉 기존의 역적이미지를 완전히 탈피시키고 좌절한 비운의 혁명가로서 묘사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환경씨가 혜경궁 홍씨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생각도 장난삼아 해보았다. 즉 역사를 볼 때, 특히 한 인물을 살펴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결코 기록에 나타난 그대로 그 인물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기록한 자는 누구이며 당시의 상황은 어떠하였으며 기록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분석해야한다. 한중록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일 필자가 드라마 게시판에 가보지 않고 신문의 기사를 그냥 무심히 지나쳤더라면 평생 혜경궁 홍씨라는 인물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중록에 나타난 이미지를 필자가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한중록을 쓴 혜경궁 홍씨가 당시 청상과부가 아닌 70세의 노인이었으며 그녀의 친정이 풍비박산 났던 시기였으며 그것을 쓴 의도가 그녀와 그녀의 친정의 결백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았다면 보다 비판적으로 한중록을 읽었을 것이다. 즉 필자가 이 레포트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은 결코 역사를 사실 그대로 평면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곤란하며 보다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①혜경궁 홍씨, 한중록, 시간과 공간사, 1992
②박광용,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 역사, 1998
③유봉학, 정조대왕의 꿈, 신구문화사, 2001
④이덕일, 사도세자의 고백, 푸른 역사, 1998
⑤박현모, 정치가 정조, 푸른 역사, 2002
⑥이덕일, 누가 왕을 죽였는가, 푸른 역사, 1998
⑦공저, 조선왕조실록, 세종대왕 기념사업회,1991
*목차
1. 서론
2. 본론
2.1 혜경궁의 일생
2.2 한중록에 대한 고찰
2.2.1 ‘한중록’ 소개
2.2.2 한중록으로 본 혜경궁의 정치 능력
2.2.3 한중록에 담긴 정치적 의도
2.3 실록으로 본 혜경궁의 정치 능력
2.4 혜경궁이 정치가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
3.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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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0.05
  • 저작시기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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