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오르세 미술관전을 다녀와서
구스타브 모로의 <오르페우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줄리 마네>
에두아르 마네 <피리 부는 소년>
폴 시냐크 <우물가의 여인들>
마지막으로 폴 시냐크의 <우물가
구스타브 모로의 <오르페우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줄리 마네>
에두아르 마네 <피리 부는 소년>
폴 시냐크 <우물가의 여인들>
마지막으로 폴 시냐크의 <우물가
본문내용
디오가이드가 많이 나가는 전시회는 없었던 것 같다. 최소한 내가 가본 전시회중에는 말이다. 실제로 전시회장 안의 관람객중 오디오가이드가 없이 관람하는 관람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이는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는 관람 태도가 아닌 작품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수준 높은 관람 문화가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 인쇄기술과 대중매체, 인터넷 등의 발달로 인해 미술품을 접할 기회가 많다. 서점에 가면 손쉽게 명화들을 볼 수 있고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명화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오르세미술관전을 관람하고 느낀 점은 명화란 인쇄나 복제를 통한 감상으로는 그 느낌을 다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진품을 보고난 후의 느낌은 복제품을 본 것과는 정말 차원이 다른 느낌 즉, 감동이었다. 복제품을 보고는 좋다, 멋지다는 느낌까지는 받지만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이는 실물이 아님에 따른 느낌의 한계일 것이다. 미술 전시회는 이런 인간의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통로였다. 오르세미술관전과 같이 다른 나라의 미술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미술전시회의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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