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고려는 귀족제사회인가 관료제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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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사]고려는 귀족제사회인가 관료제사회인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귀족제 사회설
(1) 귀족제의 개념 문제
(2) 귀족제 사회설의 논거
2) 관료제 사회설
(1) 관료제 사회설의 등장 및 그 배경
(2) 관료제 사회설의 논거

3. 결 론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으로는 최씨의 전민(全民)에 대한 지배가 자가(自家)를 중심으로 한 가치체계 하에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그것은 종래의 지배방법과는 달리 실제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치에 놓이게 된 관료가 당시의 복잡한 국내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고려관료제의 문제성을 아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고려의 정치사적 발전단계에 대한 재래의 설인 귀족제설은 여러 점에서 합리적 논증이 불가능함이 알려졌다고 보며 그에 따라 관료제설을 타당하게 본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3. 결 론
전 근대사회에 있어서 귀족제 사회에서 관료제 사회로의 전환은 여간 큰 역사적 성격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고려시대를 관료제 사회로 보는 것은 고려가 그 전시대인 신라에 비해 그 사회성격을 크게 달리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큰 변화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골품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정치지배세력의 광범한 등장, 과거제의 시행 성공, 그리고 ‘취민유도(取民有度)’로 대표되는 새로운 대민시책(對民施策)의 실시 등은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라의 체제가 완전히 철폐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완전 신분을 무시한 능력 위주의 새 사회 실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변동의 양면성을 다 같은 비중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될 수 있다. 음서제를 주요 논거로 하고 있는 귀족제설은 혹시라도 새로운 사회변동의 요소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골품사회에서 문벌귀족사회로의 전환만도 여간 큰 변동이 아니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과거제에 대한 보다 더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신라사회에서 시행되지 못하였던 과거제가 고려 사회에서 시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왜 굳이 과거제가 필요했는가 하는 문제 등은 음서제에 못지 않은 비중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논쟁에서 사회변동의 양면성 중 어느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고려는 그 건국과정에서부터 모든 것이 공존하는 다양한 사회였다. 그리고 문벌과 능력이 다같이 존중되던 사회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려사회의 성격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고려사회가 과연 귀족사회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 그렇다고 해서 관료제 사회는 적당한지 이러한 의문은 사학을 관심 있어하고 특히 ‘한국중세사’수업을 듣는 우리들이 한번쯤 심도 있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 참 고 문 헌 -
- 남경태 / 종횡무진 한국사상 / 그린비 / 2001
- 노명호 / 귀족제와 관료제 / 서울대 출판부 / 1990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 12 / 국사편찬위원회 / 1993
- 유승원 / 고려사회를 귀족사회로 보아야 할 것인가 / 역사비평 36 / 1997
-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 한국 전근대사의 주요 쟁점 / 역사비평사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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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9.03.26
  • 저작시기200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2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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