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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기도 양주지역][무속][무가][민요][별산대놀이][전설][민담][소놀이굿]경기도 양주지역 무속과 무가, 경기도 양주지역 민요, 경기도 양주지역 별산대놀이, 경기도 양주지역 전설,민담, 경기도 양주지역 소놀이굿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경기도 양주지역의 무속과 무가
1. 12거리
2. 국수당굿

Ⅱ. 경기도 양주지역의 민요

Ⅲ. 경기도 양주지역의 별산대놀이

Ⅳ. 경기도 양주지역의 전설과 민담
1. 전설
2. 민담

Ⅴ. 경기도 양주지역의 소놀이굿

참고문헌

본문내용

사업·장사 등이 잘되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경사굿의 일부로서 제석거리에 이어서 행해졌다. 보통 가을 추수 후에 신곡(新穀)맞이 경사굿에서 연행되었다.
이러한 양주소놀이굿의 연행 주체들은 크게 만신과 마부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만신 계열에는 만신을 물론이고 악사까지 포함되는 것이며, 마부 계열은 원마부, 곁마부, 소 연행자, 송아지 연행자 등이 포함된다. 만신 계열의 경우, 대체로 양주 지역을 근거로 해서 무업을 하는 인물들이라면, 마부 계열은 무업과는 상관없는 이른바 건달이라 불리는 동네 토박이들이다.
그 동안 이루어진 선학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해보면, 대략 해방이전부터 현재에 이르는 연행 주체들의 전승 계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전승 계보는 대략 해방 이전, 1970년대 전후, 1980년대 전후 등의 세 단계로 변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승자들의 계보를 중심으로 그 전승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 번째 단계인 해방 이전은 양주소놀이굿의 중요한 인물인 팽수천(彭壽天)이 활약하던 시기이다. 마부를 담당했던 팽수천은 작은어머니 돼지엄마 만신, 부인 구빼미 만신과 함께 이 시기 양주 경사굿에서 벌어지는 소놀이굿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다음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양주소놀이굿 재현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여러 전승자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팽수천은 재담도 잘하고 소리도 잘했으며 놀기도 잘했던 인물이다. 무녀와 한짝이 되어서 재담도 확립하고, 소리도 전승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인물로 양주소놀이굿의 중시조로 평가된다.
두 번째 단계는 양주소놀이굿이 조사되던 1967년을 전후로 한 시기이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전승의 단절 위기에 있던 것을 이 시기에 재현했다. 이때 마부 계열의 전승자로는, 오복삼(吳福三: 1902년 생), 고관성(高寬成: 1911년 생), 우용진(禹龍辰: 1904년 생)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모두가 팽수천에게 놀이를 배웠던 이들이다. 만신 계열의 전승자로는 양주 지역의 이름난 만신인 조영자(趙英子: 1906년 생)가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주목할 만 한 것은 그 동안 구술과 행위를 통해서만 전승되던 양주소놀이굿이 처음으로 기록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두현 채록본이 그것인데, 여기에는 구술 전승되던 양주소놀이굿의 가변적 실상과 가능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용진, 고관성, 이석렬, 조만봉 등의 제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채록본은, 제보자 저마다의 독특한 변이 양상을 함께 기술하고 있어서 연행을 통해서만 존재하고 구술을 통해서만 전승되던 시기의 양주소놀이굿의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구술 전승이 직접 실현되던 시기의 개인차가 있는 재담과 타령의 면모를 이 채록본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어, 양주소놀이굿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세 번째 단계는 1980년 양주소놀이굿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던 때에서 지금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미 두 번째 단계에서부터 비롯된 양주소놀이굿 전승에의 외부적 개입이 이제 무형문화재라는 국가 차원의 개입으로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승 주체의 계보 역시 앞의 두 단계와 차이를 보인다. 앞의 두 단계가 단순한 놀이굿의 전승을 계보적으로 잇는 것이었다면, 양주소놀이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인공적 조건 아래 당위적 전승 계보로 전환된 것이다. 이 시기 마부 계열의 전승자로는 우용진의 뒤를 이은 김인기가 있으며, 김인기의 뒤를 이어 현재 어윤관, 박형배, 허영이 등으로 이어진다. 만신 계열의 전승자로는 두 번째 단계에서 만신 역할을 했던 조영자의 제자인 양달순(梁達順: 1936년 생)이 새로운 전승자로 나타났고 이어서 김봉순(1936년 생)이 양달순을 대신하게 되고, 현재 한애옥이 이수자로 있다.
이 시기 전승 주체의 양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해금을 켜는 악사인 고희정(1926년 생)이 문화재로 지정된 일이다. 그 동안 마부와 만신을 주축으로 해서 전승되던 양주소놀이굿의 전승 체계에 악사라는 새로운 축이 새삼 부각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마부, 만신, 악사 등의 세 가지 전승축이 마련되게 된다. 현재 악사는 김병옥이 그 전승 계보를 잇고 있다. 또한 소와 송아지 연행자들이 분명히 갖추어지게 되어 전승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고, 길놀이와 뒷풀이를 담당하는 농악대도 생겼다. 마부, 만신, 악사, 소, 송아지, 농악대 등의 나누어져 전승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상 주체를 중심으로 살핀 양주소놀이굿의 전승 양상은 크게 본다면 다시 두 단계로 대별할 수가 있겠다. 그 기준이 되는 전환점은 1980년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이다. 1980년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을 기점으로 하여, 그 전승 환경이나 체계가 현저하게 변별된다.
현재 양주소놀이굿의 전승과 연행 활동은 양주소놀이굿 보존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현재의 전승과 연행 활동은 양주소놀이굿 본래의 연행 문맥에 의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존회 구성원 모두가 양주소놀이굿은 경사굿에서 벌어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만, 실제 경사굿에서 연행을 해봤거나 아니면 최소한 보기라도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정은 1980년도 이후 벌어진 공연 활동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양주소놀이굿 보존회의 공연 연보를 보면, 실제 경사굿에서 연행을 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그 연행 장소 역시 매년 행해지는 정기 발표회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양주 지역 밖에서 개최되는 행사의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돈 써버리는 굿이라 해서 양주 지역 부자들이 자기 집안의 경사를 기원 할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한 턱을 내며 서로 어우러지는 기회로 삼았던 소놀이굿이, 이제 양주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민속놀이 또는 민속 예술로 변모한 상황을 이를 통해 파악할 수가 있다.
참고문헌
김무헌 - 한국노동민요론, 집문당, 1986
강도원 - 화순의 민요, 민, 1993
김헌선, 사진 정수미 - 양주소놀이굿, 화산문화
정형호 - 양주별산대놀이, 화산문화, 2000
전경욱 - 한국의 가면극, 열화당
이상일 - 한국인의 굿과 놀이, 문음사, 1981
이두현 외 - 한국민속학개설, 일조각,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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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01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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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27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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