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문학(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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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암 박지원의 문학(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서론

2.연암 박지원의 생애

3.시대적 배경과 연암의 현실인식

4.실학사상과 연암의 문학관

5.연암의 풍자문학

6.작품해설
1)허생전
2)호질

◉나가며

◉부록
♣ 연암의 구전과 소품문
연암의 주요작품 10개(줄거리)

본문내용

\"소금\", \"불사약은?\" \"밥.\", \"가장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 이처럼 그의 대답은 쉽고 막힘이 없었으며 자기를 자랑하기도 하고 열 사람을 놀리기도 해서 모두 웃었으나 그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 해서(海西)에 황충(蝗蟲)이 생겨 관가에서 황충잡기를 독려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민옹은 곡식을 축내기로는 종로 네거리를 메운 칠 척 장신의 황충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그것들을 잡으려 하나 커다란 바가지가 없는 것이 한이라고 하여 일화를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어느 날 민옹이 찾아오자 작자는 파자(破字)로 그를 놀렸다. 그러나 민옹은 놀리는 말을 칭찬하는 말로 바꾸어버렸다. 그 다음해에 민옹은 세상을 떠났다. 민옹은 《역경(易經)》에 밝고 《노자》를 즐겨 읽으며, 보지 않은 글이 없었다 한다.
김신선전(金神仙傳)
김신선의 속명 홍기(弘基)로 16세에 장가들어 단 한번 아내를 가까이 해서 아들을 낳았으며 화식(火食)을 끊고 벽을 향해 정좌한지 두어 해 만에 별안간 몸이 가벼워졌으며 그 뒤 각지의 명산을 두루 찾아다녔다. 하루에 수백 리를 걸었으나 5년 만에 한번 신을 갈아 신었고 험한 곳에 다다르면 더욱 걸음이 빨라졌다. 그는 밥을 먹지 않아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겨울에 속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 남들은 그런 그를 신선이라 불렀다. 키는 7척이 넘었으며, 여윈 얼굴에 수염이 길었고 눈동자는 푸르며 귀는 길고 누른빛이 났다. 술은 한 잔에도 취하지만 한 말을 마시고도 더 취하지는 않았고 남이 이야기하면 앉아서 졸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빙긋이 웃으며, 조용하기는 참선하는 것 같고, 졸(拙)하기는 수절과부와 같았다. 어떤 이는 김홍기의 나이가 백여 살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쉰 남짓 되었다고도 하며 지리산에 약을 캐러 가서 돌아오지 않은지가 수십 년이라고도 하고 어두운 바위 구멍 속에 살고 있다고도 했다.
그 무렵 박지원은 마침 마음에 우울병이 있었는데 김신선의 방기(方技)가 기이한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 보고자 윤생과 신생을 시켜 몰래 탐문해 보았으나 열흘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다. 윤생은 김홍기가 서학동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으나 그는 사촌집에 처자를 남겨둔 채 떠나고 없었다. 그 아들에게서 홍기가 술, 노래, 바둑, 거문고, 꽃, 책, 고검(古劒 )따위를 좋아하는 사람들 집에서 놀고 있으리라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았으나 아무데도 없었으며 창동을 거쳐 임동지의 집에까지 찾아갔으나 아침에 강릉을 떠나갔다는 말만 듣는다. 다시 복(福)을 시켜서 찾아보았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이듬해 박지원이 관동으로 유람 가는 길에 단발령을 넘으면서 남여를 메고 가는 어떤 스님으로부터 \"선암에서 벽곡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또한 그 날 밤 장안사에 승려들로부터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여러 날을 지체하여 선암에 올랐을 때에는 탑 위에 동불(銅佛)과 신발 두 짝이 있을 뿐이었다.
우상전(虞裳傳)
일본 관백이 새로 취임하여 주변을 정리하고 각종 기예(技藝)와 문사(文士)를 모아 단련을 시킨후 우리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정에서는 사신 일행을 엄선하여 보냈다. 일본사람들은 서화(書畵)와 사장(詞章)을 좋아하여 그것을 우리 사신 일행에게 얻기 위해 중보(重寶)를 아끼지 않았다. 우상은 역관의 자격으로 수행하였으나 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 그들은 우상에게 난제와 강운(强韻)으로 궁지에 몰아 넣고자 했으나 그는 미리 지어 놓은 듯이 즉시 응대를 하여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우상의 문장이 이와 같이 뛰어났음에도 신분이 역관이기 때문에 새삼 사람들이 그의 문장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항시 그것을 슬퍼하였다. 연암이 우상과 면식은 없으나 그는 사람을 통해 자신의 시를 보여 주면서 이 사람만은 알아주지 않겠는가 했는데, 연암은 희롱으로 보잘 것 없다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가 다시 탄식하며 내가 앞으로 얼마나 살겠느냐 하며 죽었는데, 그의 나이 27세였다고 한다.
마장전(馬장傳)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옛날에 높은 벼슬을 얻어 부귀공명을 누리던 형제가 있었는데, 그들은 늘 과부였던 어머니 앞에서 公事를 상의하곤 하였다. 하루는 풍문으로 들은 과부의 추행에 대해 민망스런 생각으로 그의 母에게 의논했더니 母曰 \"바람은 소리뿐 형태가 없으니 눈에 보지 못한 일을 어찌 논죄할 수 있는가? 더구나 너희가 과부의 자식으로서 과부를 가벼이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품안에서 윤곽이 다 닳아 없어진 동전 한 잎을 내어 보이며 또 말했다. \"이것이 나의 죽음을 참게 한 護符이다. 10년을 두고 손으로 만져서 이렇게 윤곽이 닳아진 것인데, 대체로 사람의 혈기란 음양에 뿌리 박고 욕정은 또 혈기 속에 있는 것이니 깊은 생각은 그윽하고 외로운데서 생기고 슬픔은 또한 그런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과부라는 것은 그윽하고 외로운 生을 보내는 것임으로 쓰라림과 슬픔의 極인 것이다. 혈기가 왕성할 때 아무리 과부라고 한들 어찌 動情이 없겠는가? 생각해 보라. \'가물가물 야위어 가는 등불은 슬픈 그림자를 던지고, 외로운 그 한밤은 어찌나 더디던고, 게다가 처마 끝에 낙숫물 소리 애끓는 밤, 달 그림자 흰빛이 창문에 흐르고, 지는 잎 우수수 뜰 안에 속삭이는데, 외기러기 구슬피 하늘을 울어예고, 멀리서 닭 우는 소리는 들릴락 말락 할 제 어린 종년 쌔근쌔근 코고는 소리에 정든 님 못 잊어 잠 못 드는 외로운 심사야 그 누가 있어 괴로움을 호소하리\' 이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내어 쥐고 방바닥에 굴리면 엽전이 굴러서 맴돌다가 벽에 가 멈추고 그러면 다시 찾아 또 굴리고 하룻밤 5,6차례 굴리고 나면 밤도 또한 밝아오더라. 이 짓을 10년 동안이나 하고 있으려니 차츰 혈기가 쇠해지는 탓인지 그 뒤는 혹 五夜에 한 번 혹은 十夜에 한 번 이러다가 혈기가 아주 쇠해버린 지금에는 다시 엽전을 굴리지 않게 되었도다. 그런고로 나는 이 동전을 여러 겹 꽁꽁 싸서 몸에 품어두고 20여년을 지내며 그 공을 잊지 않고 스스로 근신하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아들들은 눈물을 쏟았고, 母子가 서로 맞잡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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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7페이지
  • 등록일2005.07.01
  • 저작시기2005.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3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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