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시대 국자감』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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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관학(국자감)의 성립배경
2. 호칭의 변천
3. 국자감의 발달과 구성·직제
4. 국자감의 입학자격과 정원
5. 관학(국자감)의 쇠퇴 원인 - 사학의 발달
6. 관학(국자감)의 정비
7. 국자감 진흥책

Ⅲ. 결론

본문내용

화향상에 이바지하게 하였다.
성종 6년 12목에 경학박사의학박사 각 1명씩을 배치하여 지방학생의 교육을 담당하게 했으며, 992년에는 주군에 널리 주학을 세워 학업을 권장하였고, 1127년에는 향학이 각 주에 널리 설립되었다. 향학생의 정원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서인에게도 입학자격을 주었다.
바. 충렬왕
1). 섬학전
고려시대에 국학생의 학비를 보조하기 위하여 관리들이 품위에 따라 낸 돈이다. 충렬왕 30년 5월 안향은 국학이 날로 쇠퇴해 가는 것을 걱정하여 재상들에게 건의하여 관리들의 품위에 따라 6품 이상은 은 한 근씩을, 6품 이하는 포를 내게 하여 장학기금으로 삼았다. 이 섬학전을 양현고에 귀속시켜 섬학고라 하고, 그 이자로 학교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또 일부 자금으로는 박사 김문정을 중국에 보내 공자와 그 제자들 70자의 상을 그려 오게 하고, 또 많은 서적도 구해오도록 하였다. 왕도 이 뜻에 찬동하여 전곡을 내어 보조해 주었다. 이 섬학전은 교육재단으로 학보와 성격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것으로 토지경제에 입각한 봉건적 고려사회에 있어서 그 근본적인 해결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2). 대성전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전각을 말한다. 공자를 중앙에 모시고 안자증자자사맹자 등 4성을 좌우에 모셔 합사한다. 중국에서는 산둥성 곡부의 것이 가장 크다. 한국에서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증자자사맹자 등 5성과 민손염경염옹재예단목사염구중유언언복상전손사 등 10철, 송조 6현의 위패를 대성전에 모셨고, 양무에는 공자의 70제자를 위시한 한중 양국의 현인 111위를 배향했는데, 한국인의 18현은 설총최치원안유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이이성혼김장생송시열송준길박세채조헌김집김인후 등이다.
3). 경사교수도감
고려시대 7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경사를 가르치던 관청이다. 고려시대의 문생들이 한문학인 시와 문에만 몰두하므로 충렬왕은 경과 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령을 반포하였다. 1280년 경과 사에 뛰어난 선비 7명을 선발해 경사교수로 임명하고 국자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충렬왕 22년에는 경사교수도감을 설치하고, 학자로서 당대에 명성을 날리던 이산과 이진을 발탁해 경사교수도감사에 임명하여 7품 이하의 하급관리를 가르치게 하였다. 여기에서 성적이 뛰어난 사람은 우대하였으므로 이후에는 경사를 연구하는 분위기가 확립되었다. 경사교수도감이 폐지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 관청의 설립과 함께 확고해진 유학의 우위는 조선시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Ⅲ. 결론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면, 공교육은 붕괴되면서 사교육의 활성화로 인하여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끊임없이 바뀌는 교육정책들은 종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보다는 교육하는 자와 교육받는 자에게 혼란만을 심어준다.
과거 고려시대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틀에 박힌 학교 공부보다는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학원식 수업을 선호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선조들에게서 현재 우리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분명히 비슷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사교육을 잡지 못하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시대의 관학이 다시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교육체제를 뒷받침하는 교육에 대한 관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시기의 고려인들은 예전처럼 교육을 사적인 활동으로 규정하던 관념에서 벗어나, 교육을 공적인 과업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실현시키는 제도를 만들고 보완해 나갔던 것이다. 이를 교훈 삼아,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을 받는 사람은 공교육을 믿어야 하며 교육을 하는 사람은 공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냉철하고 경건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관학은 미리 정해진 목적과 짜인 틀에 맞추어 가기 때문에 주체적이기 보다는, 타율적 성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많아 변화하는 이 시대에 개성 있는 창조성을 갖기 어렵다. 따라서 관학에 사학의 장점을 첨가하여 보다 현실적으로 관학을 개선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도 관학의 부흥이 찾아올 수 있으리라 본다.
< 참고문헌 >
▷ 김영우, 서영현, 이항재, 피정만, 한규원 공저. 『교육사철학』. 교육연구.
▷ 목영해 외. 『교육의 역사와 철학』. 교육과학사. 2006.
▷ 박용운 외. 『고려시대사의 길잡이』. 일지사. 2007.
▷ 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99.
▷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1.
▷ 최광만. 「고려시대 국자감 중심 교육체제의 형성 과정」. 교육학 박사 학위논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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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18
  • 저작시기2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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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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