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무오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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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몸 말
1. 훈구파와 사림파의 형성
2. 무오사화의 원인과 의미

Ⅲ. 나오는 말

본문내용

숙의,정숙의, 그리고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합심하여 윤씨를 배척한 것도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다. 한편 연산군의 사치와 낭비로 국고가 바닥이 나자 그는 공신들의 재산의 일부를 몰수하려 하였는데, 이때 임사홍은 연산군을 사주하여 공신배척의 음모를 꾸몄다. 이때 폐비윤씨의 생모 신씨가 폐비의 폐출·사사의 경위를 임사홍에게 일러바쳤고, 임사홍은 이를 다시 연산군에게 밀고하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 연산군은 이 기회에 어머니 윤씨의 원한을 푸는 동시에 공신들을 탄압할 결심을 한 것이다. 연산군은 정·엄 두 숙의를 궁중에서 죽이고 그들의 소생을 귀양보냈다가 사사하였다. 그의 조모 인수대비도 정·엄 두 숙의와 한패라 하여 병상에서 난동을 부렸으며 그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산군은 비명에 죽은 생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폐비 윤씨를 복위시켜 왕비로 추숭하고 성종묘에 배사하려 하였는데, 응교 권달수·이행 등이 반대하자 권달수는 참형하고 이행은 귀양보냈다. 또한 성종이 윤씨를 폐출할 때 찬성한 윤필상·이극균·성준·이세좌·권주·김굉필,이주 등을 사형에 처하고, 이미 죽은 한치형·한명회·정창손·어세겸·심회·이파·정여창·남효온 등의 명신거유 등을 부관참시하였으며, 그들의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처벌하였다.
는 더 큰 파국으로 이어졌다. (김범, 2006 , p.20)
Ⅲ. 나오는 말
지금까지 조선시대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사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무오사화 이후에도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등 굵직굵직한 사화들이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사화는 내가 되새겨 보기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강화시키기 위한 인간의 이기적인 사고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사회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화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무오사화는 국왕과 대신이 간쟁권 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함.
을 무기 삼아 그들에 대항하는 대간과 그들을 지지하는 신진 사림들을 견제하려고 한데서 일어난 사건이다(김당택, 2008, p. 229).
앞에서 말했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몽둥이나 채찍등을 들이 대지 않았을뿐 정신적, 심리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줘서 그로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권력다툼은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존재하여왔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 조선, 고려 신라 역시도 그렇다. 또한 다른 나라들 역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모함과 음모 계략등은 존재하였다. 권력이란 것은 잘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쓰면 독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같다.
참고문헌
김당택, (2008). ‘우리한국사’, 푸른역사
김범, (2006). '조선연산군대의 왕권과 정국운영‘, 대동문화연구
김용흠, (2004).‘조선전기 훈구,사림의 갈등과 그 정치사상적 함의’. 동방학지
노우종, (2003). ‘조선조 정치과정 연구’. 부산외국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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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6.25
  • 저작시기200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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