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인천시][인천]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 진흥 계획, 인천광역시의 조세 현황,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현황,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복지 및 대안, 인천광역시의 신학 선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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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천광역시][인천시][인천]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 진흥 계획, 인천광역시의 조세 현황,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현황,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복지 및 대안, 인천광역시의 신학 선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인천광역시의 문화예술 진흥 계획
1. 가칭 『인천예술대학』설립(유치) 검토
2. 문화예술 활동 지원
1) 문화예술 진흥기금 지원
2) 지역문화 예술단체 지원
3) 무대공연작품 제작 지원
3. 문화재 복원·정비 및 보수
1) 문화재 복원
2) 문화재 발굴
3) 문화재 보수 : 5,355백만 원
4) 문화재 정밀 실측조사 및 DB구축

Ⅲ. 인천광역시의 조세 현황
1. 국세부담액
2. 지방세 부담액
1) 인천광역시의 지방세 체계
2) 인천광역시의 지방세 규모
3) 자치구별 지방세 규모

Ⅳ.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현황

Ⅴ. 인천광역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복지 및 대안
1. 비정규·영세·실직 여성노동자 복지욕구조사
2. 비정규·영세·실직 여성노동자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

Ⅵ. 인천광역시의 신학 선교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있으니 따로 따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여 아펜셀라 목사는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목사와 함께 일본 나가사끼를 떠났으며 4월 2일 아침에는 한국 땅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곳은 부산이었으며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드디어 인천에 도달하였다. 얼마나 한국행을 갈망하였던지 그들은 상륙하자마자 땅위에 엎드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을 상륙하였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여!! 어서 속히 이 백성들을 얽어매고 있는 흑암의 사슬을 끊으시사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 빛과 자유를 베풀어주시옵소서] (R.S.Maclay,Comen cementof the Korea Methodist Episcopal Mission,The Gospelin All Lands for 1885,P,328) 아펜셀라 목사는 선교회에 보내는 보고문 가운데 위의 기도문을 실었다. 아펜셀라 목사는 상륙하던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의 아내가 제일 먼저 배에서 내려 한국 땅을 밟았다] (Harry A.Rh- odes, The Korea Mission Field No.4,April 1935,P 78)라고 아펜셀라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는 함께 한국을 찾아왔으나 한국내의 실정은 아직까지 외국인 여자의 거주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펜셀라 목사는 부득이 부인을 데리고 일본으로 되돌아가야 했고 언더우드목사만 서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 대리공사 포오크 (George C.F-oulk)가 아무리 애써보았지만 [서울에 서양인 여자가 들어가기는 어려운 사정인고로 부인을 잠시 일본으로 가 있다가 후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펜셀라는 인천에 도착한지 9일 만인 4월 13일에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 도착 다음날인 4월 18일 청국의 대표 이홍장 과 일본 대표 이또오가 중국에서 텐진조약을 체결하여 우리나라 정세의 긴장이 완화되기는 하였지만, 그때에는 여둑으로 건강을 상한 부인의 치료로 아펜셀라목사의 한국 입국은 계속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6월 20일에 가서야 아펜셀라 목사는 인천에 또 한번 상륙하였고 서울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Ⅶ. 결론
우리가 살고 있는 향토 인천은 예로부터 황해의 중심 항구도시로서 문화와 전통의 맥을 면면히 이어왔다. 또한 개항과 더불어 서양 문물을 먼저 받아들인 곳으로 수많은 역사적 자취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인천이 경제자유구역으로서 송도 신도시와 함께 Trial Port의 중심도시로 부상하면서 여기저기에 산업공단이 조성되고 유입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도시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공기 좋고 살기 좋았던 우리 고장 인천은 거쳐 가는 도시로 인식되고 있으며, 임시로 거주하는 주민이라는 생각에서 애향심이 타 시도에 비해 부족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귀중한 우리 문화재의 훼손, 복잡한 교통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이 야기되면서 매스컴에서는 인천에 대한 바람직한 뉴스보다는 열악한 환경 등의 문제가 보도되고 인천은 별로 살고 싶지 않은 도시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사회의 변화로 인구의 대도시 이동과 산업화에 따른 현 시점에서 우리 인천에 살고 있는 시민이 고향을 인천으로 하는 인구는 약 30%미만이라는 아주 저조한 비율이다. 이제는 인천의 문화, 환경, 복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인천시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라는 인식에서 배우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산 될 수 있도록 애향심 고취를 위한 교육에 많은 노력을 경주할 때이다. 21세기의 주역이 될 우리 학생들에게 잊혀져 가는 고향의 뿌리와 역사의 자랑스러운 얼을 정립하여 심어주고, 향토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향토교육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라 하겠다.
참고문헌
간추린 인천사, 인천학 연구소
김양섭, 제물포시대 인천의 표상과 그 기억, 인천문화연구, p154~159, 2005
송영필, 산업경제연구소지역활성화 정책의 현황과 발전방안, 2005
이재창, 2000년대를 향한 인천도시개발전략, 한국지방행정연구원, 1988
인천광역시, 도시개발사업총람, 2002
인천광역시 도시상임기획단, 공항도시 및 관련산업의 개발방향, 1995
윤진호, IMF경제위기와 인천지역 노동시장의 변화, 인하대학교, 2002
채훈, 인천대교수, 인천광역시사4 현대사회Ⅱ 산업경제, 인천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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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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