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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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술가-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주제인물로 선정한 이유
▶본론
1.연보
2.생애 및 일화
3.사상
4.업적
①미술에서의 업적
: 자화상,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②수학에서의 업적
③건축에서의 업적
④과학·기술에서의 업적
▶결론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너무 빨리 깬 사나이
▶참고자료

본문내용

헝, 비행을 위한 장치 등 많은 분야의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원래의 출발은 회화, 조각이지만, 그 회화, 조각에 대한 관심을 심화하면 할수록 데생 등에 정밀함이 요구되었고, 저절로 관찰력은 날카로워졌으며, 그래서 무슨 일이나 철저를 기해서 탐구하지 않으면 사물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할 수가 없다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인물을 그릴 때에도 인체에 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해부를 필요로 했다. 그는 노트에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정확하고도 완전한 지식을 얻으려고 나는 10여 명의 인체를 해부했으며, 갖가지 지체(肢體) 모두를 도려내어, 그 모세혈관으로 지나는 눈에 띄지 않는 피 외에는 약간의 출혈도 발생하지 않도록 혈관 주위의 살을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완전하게 떼어 냈다. 그리고 이 과정은 충분한 인식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이 그의 사물에 대한 자세이다. 또 그림의 수법을 수련하는 과정에서는 수학이 필요해졌고, 새가 나는 방법에 관한 연구에서는 무게와 밀도의 관계, 풍압이 날개에 미치는 힘의 영향에 관해 실험했으며, 낙하산 같은 것까지도 고안해냈다.. 그는 또 '그저 상상만으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의 통역자(通譯者)가 되려고 한 예술가들을 믿지 말라'고 했고, '실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로써 이론을 검증(檢證)하는 일'이야말로 일반법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간파했다. 그는 수고에 씌어 있는 사항의 전체에 걸쳐서 실험을 하였거나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위와 같은 점을 주장하였다. 그는 '자연계의 법칙성을 밝혀 나간다는 것은, 자연을 관찰하여 인식을 심화 시키고, 그것을 객관적인 이론으로 발전시켜 나아가는 일'이라고 주장하였고, '그런 이론을 끊임없는 실천과 통일적 노력으로 포착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옆의 그림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라는 다빈치의 소묘로서, 비트루비우스는 기원전 1세기경에 활동한 로마 건축가, 저술가인데 그의 신전 건축의 규준을 설명하는 기록 중에 "인체는 비례의 모범형이다. 왜냐하면 팔과 다리를 뻗음으로서 완벽한 기하형태인 정방형과 원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라는 말이 르네상스 미술시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라 불리는 인체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전에도 나타났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 그림으로 인해 비트루비우스는 명성이 높아졌다.
▶결 론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너무 빨리 깬 사나이
: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무어라 표현하기를 거부해 버릴 만큼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천재성을 여실히 드러냈으니까.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차지만 그의 예술성은 과학, 미술, 판화, 금속, 조각, 비행술, 건축, 장식, 토목, 자연, 의학(및 해부학), 지리학, 지구물리학, 발명, 식물학, 기계학, 기하학, 수상학, 기상학등등,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고등교육을 통해서가 아닌 집요한 관찰과 독서와 탐구의 결과로 그토록 무수한 지식을 습득하였다고 한다. 기초 능력과 경험을 토대로 창의적 능력을 발휘한 사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왕성한 호기심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많은 발견, 발명, 이론을 탄생시켰고, 생활습관으로 증가시켜온 오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포용력으로 세기의 명작이라 칭송받는 명화들을 탄생시켰다.
레오나르도의 실용적인 태도와 날카로운 지성 호기심, 독립정신은 그로 하여금 당시의 이론과 도그마에 많은 부분 회의를 품게 했다. 레오나르도는 이론에 근거하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와 실생활의 경험에 근거해서 자기 주장을 폈다. 인습적인 지혜의 기반인 가설들에 대해 논쟁을 벌이면서 그는 마침내 "이성을 가진 두뇌 속데 그런 견해는 도저히 자리잡을 수 없다." 라는 결론을 냈다.
또 레오나르도는 위선적이지 않은 사상가였으며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연금술과 천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을 경험과 창의력의 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이 모두 제거 될 날을고대했다.
이렇게 학자와 학문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봤던 그였지만, 소중한 면까지 다 버리지는 않았다. 예를들면 그는 1494년 마혼두 살의 나이에 고전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라틴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레오나르도는 선입견과 책에 나오는 편견이 과학적인 의문을 던지는 데 얼마나 제한을 가하는지 스스로 깨달았고, 경험에서 배우는 것은 곧 실수에서 배우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경험에는 실수가 없다. 다만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은 결과를 짐작하는 것이 실수일 뿐이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어 초인적인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노트에 "장애물이 나를 꺽지 못한다.", "어떤 장애든 고된 노력으로 극복된다." 라고 써 놓았다.
이렇듯 그는 굉장한 노력가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부분의 뇌를 사용한 사람은 아인쉬타인이라고 하는데, 이번 레포트를 통해 느낀 바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아인쉬타인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뇌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천재는 100%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면에서 볼 때 다빈치에게는 천재라는 호칭조차 그의 노력에 비해서는 너무나 약소한 호칭이 아닐까 한다. 어느 선에서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의 능력을 계발해나가고,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일생에서 나는 천재, 그 이상의 것을 느꼈다.
▶참고자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L..H.하이텐라이히 지음, 시각과 언어
­「레오나르도, 나는 영혼의 표정을 그린다」, 이경성, 토마스 다비트 지음, 서문당
­「레오나르도 다빈치」, 알레산드로 베초시 지음, 시공사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 구이슈 지음, 여명미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 마이클 J.겔브 지음, 대산출판사
­「다중지능의 이론과 실제」, Howard Gardner지음, 양서원
­「발상의 전환이 세상과 인생을 바꾼다」, 최정우 지음, 새로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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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09.12.15
  • 저작시기2002.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67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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