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기신앙에 대한 레포트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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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성기숭배란?

2. 성기숭배의 유래
(1) 성기숭배의 발생 배경
(2) 성기숭배의 발생 시기

3. 성기숭배의 유형
(1) 자연지형물 성기숭배 형태
(2) 모형성기봉납 신앙형태
(3) 모의 성행위 숭배 형태

4. 한국 성기 숭배의 특징
(1) 성기숭배의 흐름
(2) 성기숭배의 일반적 양상
(3) 성기숭배의 기능

5. 세계의 성기숭배
(1) 인류 성기숭배의 발생 시기

6. 성기숭배문화의 전승지를 찾아서
(1) 위치
(2) 찾아가는 길
(3) 해신당
(4) 해신당공원

본문내용

. 62p~63p 참조
① 이야기 하나
옛날에 마을에 사는 처녀 하나가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로 김을 뜯으러 갔다. 처녀가 김을 뜯는 도중 별안간 돌풍이 일어나 파도가 쳐서 바위를 휩쓸고 있었으나 처녀를 실어다 준 배가 마을로 돌아간 후 다시 바위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처녀는 파도가 휘몰아치는 바위 위에서 살려고 외치며 애를 쓰다 끝내는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처녀가 이렇게 살려고 애를 쓰다 죽은 바위라 하여 이 바위를 애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도 해당 좌측 약 1km 밖 바다에 있고 수면 밖으로 나직이 나타나 보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고기가 도무지 잡히지 않고 바다에 나가면 배가 전복되어 인명피해를 많이 입게 되 <해신당 앞 바닷가 풍경> 었다. 고기가 잡히지 않고 바다에 나가면 배가 전복되어 인명피해를 많이 입게 되었다. 고기가 잡히지 않아 온 마을이 기근을 면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부락의 나이 많은 노인의 꿈에 물에 빠져죽은 처녀가 현몽하여 자기는 처녀로 죽었기 때문에 억울하니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당신(堂神)으로 모셔줄 것과, 제를 올릴 때에는 청춘의 한을 풀 수 있도록 남근을 깎아다 바쳐 달라고 하였다. 그렇게 해주면 고기도 잘 잡히고 해상 사고도 없을 것이라 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 노인은 동네 노인과 상의한 끝에 지금의 위치에 신당을 만들고 남근을 바쳐 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고기가 많이 잡혀 부락민이 다시 잘 살 수 있게 되었으며, 해상 사고도 없게 되었다.
② 이야기 둘
이야기의 줄거리는 처음과 같으나 주인공이 ‘아버지와 딸’에서 ‘혼인을 약속한 총각과 처녀’로 바뀐 점이 다르다. 그리고 시대배경도 일제시대로 내려온다. 청어가 많이 나고 타지 사람들이 들어와 청어잡이를 하던 시대라고 한다.
총각이 처녀를 애바위에 실어다 주고 자신은 밭에 가서 일하다가, 바람이 많이 불기에 해변으로 나와보니 배를 띄울 수 없을 만큼 큰 파도가 일었고, 그런 와중에 처녀는 애바위에 실어다 주고 자신은 밭에 가서 일하다가, 바람이 많이 불기에 해변으로 나와 보니 배를 띄울 수 없을 만큼 큰 파도가 일었고, 그런 와중에 처녀는 애바위에서 살려 달라고 애를 쓰다가 마침내 죽고 말았다.
그 후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고 해난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마을 주민들은 바위를 붙들고 애쓰다 죽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한 어부가 술이 취해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 대한 화풀이로 바다를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변을 보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다른 사람들은 빈 배인데 그 어부만 만선이 되어 돌아왔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민들은 그 어부에게 까닭을 물었고, 어부가 지난 저녁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고 조업을 나갔고 기대한대로 만선이 되어 돌아왔다.
<오줌을 싸는 어부들의 모습> 그래서 마을주민들은 그동안의 재앙이 그 처녀의 원한 때문이라 확실히 믿고, 애바위가 보이는 산 끝자락에 처녀신을 모신 후에 나무로 만든 신을 제물과 함게 바쳐 혼인을 못한 원한을 풀어주자고 합의하여 매년 정월과 10월 두 차례 제를 올리게 되었다.
2) 해신당제의 시기 및 양상김종대 <한국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 민속원, 1999, 214p 참조
① 시기
- 매년 정월 보름, 10월 첫 말날(午日)
② 제의양상
- 제관 3명이 서낭당에 올라 자정을 전후로 한 시간에 제사를 올리고 해신당에 2명이 가서 어업을 하는 사람들의 소지를 올린다.
- 주민들은 남근을 깎아 황토칠 하여 조기를 역듯이 두름으로 올린다. <해신당제 봉헌물>
※ 강원도 어촌의 마을제의에서 성기를 봉납하는 과정이 있는 마을로는 문암리와 안인진리, 그리고 갈남리 등이 있다. 이들 지역은 모두 해안을 끼고 있는 마을로 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당도 대개 해안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특히 이들 당의 신격은 대게 여신인데, 이것은 이들 당이 그 마을의 본당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김종대 <한국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 민속원, 1999. 197p 참조
③ 남근봉납행위의 의의와 전승양상
- 신남마을 해신당제에서의 남근봉납행위는 일반적이며 피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풍어기원적인 속성보다는 원초적으로는 죽은 처녀를 위한 제물받침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안을 끼고 있는 어촌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풍어와 해상사고의 방지를 기원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김종대 <한국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 민속원, 1999, 216p 참조
(4) 해신당공원
신남마을이 성기숭배신앙이 쇠퇴하며 성기모형조각을 이용한 관광업성격의 해신당공원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곳엔 어촌민속박물관과 성숭배신앙에 관한 여러 작품들이 길마다 있으며 1998년 남근깍기대회를 시작하여 그 입상작들을 공원 곳곳에 배치했다.
해수욕장에 근접해있어 근처 바닷가에 놀러온 관광객들에겐 필수적인 코스로 인식되며, 성기에 대한 과감하고 창의적인 예술품들로 오히려 그 근원이 된 해신당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으며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해신당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조각물들>
발표를 마치며...
- 참고문헌 -
김종대 <한국 민간신앙의 실체와 전승> 민속원, 1999
김종대 <한국의 성신앙 - 중부편> 인디고, 2004
이종철 <한국의 성숭배 문화> 민속원, 2003
이난영 <토우> 태원사, 1998
김태수 <성기숭배 민속과 예술의 현장> 민속원, 2005
김두하 <장승과 벅수> 대원사, 1997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세계의 민간신앙>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6
이종철, 김종대, 황보명 <性, 숭배와 금기의 문화 : 민속학에서 바라본 한국의 성> 대원사, 1997
이규태 <한국인의 성과 미신> 기린원, 1985
이종철 <한국의 원시성신앙> 금호문화재단, 1985
이태호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 여성신문사, 1998
임세권 <한국의 암각화> 대원사, 1999
장장식 <한국의 성기신앙> 비교민속학회 하계연구발표대회논문, 1994
조희웅 <성숭배와 성상징> 새문사, 1993
허균 <성신신앙의 목적> 푸른숲,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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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2.02
  • 저작시기2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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