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에 내재한 신화적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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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적으로 읽힐 수 있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는 폭력이라는 힘에의 의지를 통해서 격렬하고 매혹적으로 묘사되고 표현된다. 막연한 향수와 같이 신화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친구'라는 관념은 하나의 질서로 나타나고 극중인물인 동수는 그것을 위반하고 파기하는 자로 인식된다. 아버지의 질서와 규범을 그대로 답습한 준석은 사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동수에 대한 처벌자가 된다. '친구'라는 조직 속에서의 새로운 법은 그 해결로써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친구' 역시 공존하는 인간관계를 위해 위계가 요청되고 질서확립을 위해 강제력이 동원되는 조직인 셈이다. 법정에서의 죄를 시인하는 준석의 행위는 '쪽팔리서'라는 대사로 표명되는데 이는 친구인 동수에 대한 희생적인 양심의 태도에서 나왔다기보다 '건달조직의 윤리'에 대한 수치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동수와 나(준석)를 묶는 어휘는 '친구'가 아니라 '건달'이다. 준석에게 건달은 친구보다 상위의 개념인 것이다.
#100. 교도소 면회실
상택 : 니 재판정에서 머때메 그랬노...
준석 : 쪽팔리서...
상택 : 뭐라고...
준석 : 동수나 내나. 둘 다 건달아이가... 건달이 쪽팔리면 안된다 아이가...
동수가 살해되기 이전 동수와 준석의 만남 장면(#89 국제나이트 안)에서 나오는 '우리는 시키는 대로 사는 놈 아이가'라는 대사는 '건달'이라는 '친구'에 대한 상위개념의 변명이며 깡패세계 뿐 아니라 친구라는 사회조직의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논리로 보인다. 그리고 <친구>에 나오는 인물들이 구조에 대해 저항을 하기보다 이에 철저히 순응하는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친구'라는 관념은 매우 빈약한 감상주의적 의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친구>는 수직적인 위계, 가부장적인 질서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굳건한 지주이자 건축물로 자리잡고 있으며 '친구'라는 의미는 그것을 둘러싸고 수사적인 보조를 취하는 가설물인 것이다. 이 가설물에 대해 추억으로, 감상주의로 끝없이 매달리려는 상택과 준석의 심리적인 활동과 노력은 우리 사회의 '친구'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심정주의일 뿐인 신화적인 태도와 인식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러한 소극적인 저항은 비극성과 운명주의라는 가설물의 해체작업 앞에서의 '최선의'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섯 번째 신화성 : 양극성의 쾌감과 양가성의 감정
한국영화에서 한 때 컨셉의 붐을 이루었던 일상성은 현실의 세부와 결을 탐구한다는 취지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매너리즘에 빠져듦으로써 진부한 일상의 영화로 서사의 어설픈 대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상성은 결국 창의성의 명목상의 대안, 자리메움이었을 뿐 진지하게 탐구되지 못한 그 무엇이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제작업자들과 대중문화 생산자들의 고민은 '어떻게 토포스에서 벗어날 것인가'로 함축될 수 있는데 <친구>는 그 탈출구로 '추억'이라는 것을 선택한 것이라 보여진다. 하지만 '추억'의 완만한 탐색 역시 일상성이란 컨셉의 전철을 밟기 쉬운 토포스의 함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추억'은 어떤 면에서는 그 자체가 일상성의 한 갈래이자 일상성만큼 이미 앎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것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장치로 느와르, 갱스터 무비를 장착한다. '추억'의 에너지가 소진할 즈음에 관객은 다시 폭력이라는 활성화된 에너지를 다시 공급받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극히 관습적으로 튀게 보이는 것은 추억+느와르(이 영화의 원래 컨셉은 neo nostalgia noir였다)의 브리콜라쥬가 인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전체의 균형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강렬한 폭력씬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후반부는 갱스터 무비의 교차편집과 관습적인 미장센으로 선정적인 에너지가 충만해 있으며 전반부의 폭력씬에 비해 매우 양식화되어 있다는 점이 그 특징
) 전반부의 폭력 씬들은 (#23의 롤러스케이트 장의 싸움, #35 영화관 화장실에서의 집단 구타, #38영화관 복도에서의 패싸움) 특별히 양식적인 미장센을 고려하지 않거나 준비된 콘티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핸드헬드로 촬영된 반면, 후반부의 폭력씬들은 (#74 동수 집에서의 자객들과의 난투, #76에서 #83까지의 동수와 준석을 교차시킨 보복 시퀀스, #92 국제나이트 앞에서의 동수의 죽음) 극적 긴장을 고려한 양식화된 미장센, 카메라워크와 앵글, 편집방법 등을 동원하고 있다.
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매우 양식화된 영상의 관습에 힘입어 그 자체를 '폭력 세계'를 다루는 것 뿐 아니라 '폭력 영화'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뚜렷하게 외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전반부는 세대를 떠나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어떤 일상과 현실에 맥락이 적정수준으로 닿아 있는 반면 후반부는 특수한 세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적인 관습과 그 맥락에 닿아 있다. 전반부가 화자인 상택의 비교적 제한된 서사화법으로 전개되는 반면 후반부는 상택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여주는 비제한적 서사화법이 구사된다는 차이는 그것을 설명해주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즉, 상택이 보지 못한 상상적 부분이기에 보다 '영화적'으로 내용과 표현이 구성되었다는) 추억, 일상성 탐색의 쾌감과 영화적 쾌감이라는 <친구>의 텍스트 직조방식이 더 적절한 답이 될 것으로 추측한다. <친구>는 관객일반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세계와 경험하기 힘든 폭력조직이라는 특수한 세계를 얽어 짜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현실-영화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성 탐색의 쾌감과 영화적 쾌감을 넘나드는 <친구>는 관객에게 긍정, 구축의 즐거움과 부정, 파괴의 즐거움을 함께 제공해준다. 이는 양극화된 쾌감이자 극중에서 준석의 동수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으로 나타난다. 이는 각각의 두 가지 쾌감이 지닐 수 있는 진부함과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파편화된 기억을 뜯어 맞추는 영화 속 화자의 회상작업은 그 속에서 영화장르와 컨셉을 뜯어 맞추는 브리콜라쥬 작업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손성우 성균관 대학교 언론정보 대학원 재학, 현재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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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6.03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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