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가 불교의 중국토착화에 미친 영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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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가 불교의 중국토착화에 미친 영향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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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한다. 以前 南北朝 시대에서도 도교를 국교로 정하고 자신은 그 신봉자로서 ‘~眞君’로 칭하는 황제는 종종 있었으나 唐 高祖는 老子가 李 씨였다는 설을 받아들여, 아예 노자가 唐 왕실의 시조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하여, 합법적이지 않은 집권을 위해 불교 쪽의 도움을 받았던 측천무후의 武周朝 때를 제외하고, 唐室은 일관되게 道先佛後 정책을 펼치며 도교를 적극 지원했던 것이다.
당의 쇠퇴 이후에는 유교가 다시 국교로서 막강한 권위를 가지게 되고, 도교와 불교는 사대부들의 기본 소양, 민중의 신앙으로 다소 뒤로 물러나게 되는 史實을 따라가다 보면, 도교와 불교가 함께 발전하고 老莊사상이 아닌, 도교의 성립은 後漢 末의 太平道와 五斗米道에서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함께 興盛했다가 함께 수그러들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도가/도교는 순전한 외래종교인 불교가 중국에 그나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그 의미가 이해되어 널리 퍼지며 결국 중국문화에 완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풍부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老子化胡說도 僞作임은 확실하나, 어쩌면 도교 측에서 불교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교 측이 불교가 중국사회에 잘 수용될 수 있도록 먼저 주장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정도이다. 가마다 시게오, pp.54-55.
그리고 도교나 불교가 동시에 - 비슷한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 국가의 지원을 받아가며 번성했다는 것, 이 시기 주요 高僧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깊은 도가적 소양을 엿볼 수 있다는 것, 이 두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두 종교가 인간의 동일한 정신적/종교적 욕구와 감응한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유교가 질서-구별-의무를 핵심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면, 도교와 불교는 분별없음-自然-자유의 관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핵심.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이래 廢佛令으로 겪었던 4번의 대대적인 수난 - 三武一宗의 法難 - 중에서 3武의 법난이 남북조에서 당나라에 걸치는 시기에 발생했으며, 불교와 도교 두 종교 간의 종교적 항쟁의 성격이 두드러졌던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참고자료]
가마다 시게오 지음(정순일 번역), 『中國佛敎史』, 경서원, 1985.
키무라 키요타카 지음(장휘옥 번역), 『중국불교사상사』, 민족사, 1989.
네이버 백과사전(http://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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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7.17
  • 저작시기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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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24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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