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구방어전투(의정부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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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의정부지구방어전투(의정부전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의정부 전투
□ 전쟁발발 배경
□ 작전계획 및 경과
□ 전쟁 결과
□ 전훈도출

본문내용

두천 지역엔 16개의 교량이 있었는데 이것을 적시에 폭파하였다면 적어도 제2사단이 도착하여 전개할 수 있는 시간을 획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세교와 신북대교 및 축석령 등 통행 요충지를 골라 대전차호나 대전차 방벽을 구축할 수도 있었고, 단일 통로를 골라 도로 대화구를 구축하였더라면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장비, 탄약 등 전투 저장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승리를 기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무리였다. 장비면에서도 중고차량이 반납되어 보유가 40%밖에 안 되었던 까닭에 비상이 발령되었으나 진지 점령이 부진하였으며, 각종 중화기도
25%나 수리차 반납되었고, 탄약마저 많은 제한을 받아 진지에 투입된 병사들은 1 기수 이외의 탄약은 보급을 받지 못하였다.
2. 공격징후를 무시한 행동으로서 경계를 태만히 하였다.
적 부대의 빈번한 이동과 전차의 출현 등 적의 공격징후가 노골화된 상태하에서 6월 25일 사단의 실정은 간부급들이 부재중이였으며, 6월 11일로부터 하달된 비상 경계령은 북한군이 남침하기 이틀 직전인 6월 23일부로 해제됨에 따라 농번기 휴 가 및 외출·외박이 허가되어 사단의 실제병력은 4,500여명에 지나지 않아 결과적으 로는 증강된 연대 규모로서 적 3개 사단과 대결하게 된 셈이다.
3. 무모한 역습을 실시하여 전투력의 손실만 초래하였다.
채병덕 총참모장은 의정부 지역에 투입된 적의 능력을 1개 사단 정도로 과소평가 내지는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2사단 예하 각 연대를 축차적으 로 투입시켜 집중된 전투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조기에 분산됨으로써 전투력의 낭비만 가져오게 하였다.
4. 지휘통솔력이 결여되었다.
당시 출동한 부대들의 건제가 유지된 부대는 하나도 없었으며, 휴가 및 외출 외박 에서 달려온 병력을 혼합하여 인원수만 채웠기 때문에, 소대장·분대장도 부지초 면 인 채 전투에 투입되었다. 고로 이들은 단결력의 결여로 집중된 조직의 힘을 발휘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부대를 이토록 지휘한 지휘자들의 지휘력 결여 의 결과였던 것이다.
또한, 당시 군을 지휘한 총참모장 이하 고급 지휘관들이 전략·전술 식견이 부족하 여 임기웅변식의 부대 지휘를 하였으며, 서울 고수에 집착한 나머지 전세의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부대 지휘를 한 데도 원인이 있었다.
□ 전훈도출
의정부지구전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전투의 실패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전투력 열세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어느 정도의 전투력 열세는 전투준비태세 완비와 전투력의 효과적인 운용 등으로 극복할 수 있으나, 피아의 현저한 전투력 격차는 그 어떤 요소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증원되는 전력을 축차투입으로 조기에 소모시켰던 전술적 미숙을 탓하기에 앞서“왜, 이런 현상이 발생되었는가?”를 당시 상황 및 여건 속에서 분석을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국군이 초기작전에서 범했던 과오가 장차 전에서도 되풀이 될 개연성을 사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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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1.06.05
  • 저작시기2010.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8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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