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금동대향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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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궁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며, 향로가 발굴된 부여 능산리 유적지는 본래 사비의 신궁이 있었던 곳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신궁은 성왕 말기에 있었던 제사체계의 변화로 한 때 방치되기도 했지만 위덕왕 때 신불양립의 정책에 따라 567년 신궁사로 개편되었으며, 백제대향로는 이곳 신궁에서 계속 사용되다가 백제가 멸망할 때 부속건물 중 하나인 공방 터의 수조에 황급히 매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훗날을 기약했던 백제왕의 상징인 향로는 그렇게 잿더미에 묻혔고 1300년 동안 깊은 잠을 자야 했다. 백제에 관한 기록이나 유물은 삼국 중에서도 가장 적은 편이다. 흔히 백제를 잃어버린 왕국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백제 대향로는 사료와 유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다양하고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주기에 더없이 기특한 녀석이다.
요컨대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향로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였으되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 그리고 그 제조기술은 오히려 중국을 뛰어 넘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에 백제인 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교와 신선사상이라는 동양인의 사고체계를 형성한 장엄한 두 바퀴가 불꽃처럼 어우러져 성취된 백제인 들의 세련된 공예문화요, 화생예술인 것이다.
‘백제인의 심장 소리는 말발굽 소리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탑재된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문장이 생각난다. 어쩐지 백제의 특성이 묻어나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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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6.06
  • 저작시기2010.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8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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