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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역농업정보시스템][농업구조개선사업][국제농업협력사업][조건불리지역농업][농업노동요]지역농업정보시스템, 농업구조개선사업, 국제농업협력사업, 조건불리지역농업, 농업노동요, 조선농업보국청년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지역농업정보시스템
1. 정보화 체계
2. 구축방향과 기대효과

Ⅱ. 농업구조개선사업
1. 농업구조개선사업의 투융자현황
2. 전업농 육성사업 추진현황
3. 시설 원예산업의 추진 현황

Ⅲ. 국제농업협력사업

Ⅳ. 조건불리지역농업

Ⅴ. 농업노동요

Ⅵ. 조선농업보국청년대

참고문헌

본문내용

문기사에 반영된 농업청년대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은 ‘보국’과 ‘내선일체’를 전제로 하고 거기에 ‘연성’이나 ‘체험’, ‘근로의 미풍’ 이라는 측면과 ‘원농’ ‘원군’으로 이어지고 있다. 즉 농업청년대 파견의 의의로써 보국과 내선일체를 거론하고, 이로 인해 청년대측이 얻은 성과는 연성과 근로의 체험으로, 일본 측의 성과는 노동력 충당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히구치는 파견 목적에 대해 당시 조선 내에서 전개된 증산을 위한 기술적인 연구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조선인 청년들을 일본에 보내게 된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물론 당시 일본이 가장 주력한 것은 물론 증산이었다. 당시 조선농촌에 부과된 가장 큰 과제는 식량(쌀)의 증산이었고, 생산된 쌀 가운데 7,8만 톤이 일본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는 농민도장과 농민연성소 등 농민훈련기관을 활용하였다. 그러나 히구치의 견해는 ‘선진영농법 도입’이라는 당국의 주장을 수용한 견해이다. 그보다는 노동력의 보충이 근본적인 배경이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당국이 밝힌 파견취지 세 가지는 농민도장과 농민연성소에서 양성한 농촌의 ‘중견인물’들에게 일본의 출정병사의 농가에 가서 일을 함으로써 내선일체를 이룬다는 선전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결국 조선총독부를 비롯한 파견 주최측에게 ‘증산을 위한 영농기술’이라는 점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청년대원 자신들이 밝히는 성과는 무엇인가. 먼저 일본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도록 하자.
도치키현 서수야촌에 파견되었던 청년대원들은 귀국 직전에 현지에서 가졌던 간담회에서 ‘가족애’와 ‘따뜻한 가족제도’에 “감격을 토로”하였지만, 신영농 기술의 체득에 대한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지면 가득한 일본인의 근면성에 대한 극찬으로 보아 청년대원들의 활동경험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성과는 ‘일본인의 근면성’인 듯 했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조선농민의 게으름이 ‘피폐한 조선농촌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되기도 한다.
당시 파견되었던 청년들이 남긴 감상문은 총독부와 관변단체가 간행한 발행물에도 게재되어 있다. 1940년 제2차 농업보국농업청년대원이었던 함남 출신의 윤대원은 “내지 농가는 일을 잘 한다고 전해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일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새벽 4시경부터 야채 출하 등을 하기 시작하여 어느 때에는 저녁 11시경까지 일을 하였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1942년 7월에 ‘개선한 농업보국청년대원들의 감상’이라는 제목으로 ‘매일신보’에 연재된 특집기사에서도, 참가자들이 ‘육친과 같이 접촉하야 이론을 초월한 내선일체의 감격을 빚어내고 …숭고한 일본정신을 체득한’ 청년대원들이 파견을 통해 얻은 성과는 신영농 기술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들이 그토록 감동한 것은 ‘고등농림학교 출신자도 논에 들어가는 … 우수한 지도자가 있는 내지 농촌’, ‘내 일 남의 일 구별 없이 적나라한 심정’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 ‘남녀 구분 없는’ 노동의 참 모습 등이었다.
1943년 5월에 석천현을 비롯한 4개현에 다녀온 농업청년대원(총 403명, 대원 390명, 반장 13명)의 성과를 홍보하고 있는 ‘황농으로의 길’(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편, 1943년 발간)에서도, 대원들이 밝힌 종합감상에는 ‘1. 경신숭조의 신념이 강한 것, 2. 총후 농촌에서 전 가족 근로가 철저하고 보국정신이 왕성한 것, 3. 인정이 돈후하고 친절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것, 4. 일가 단결의 기풍이 강한 것, 5. 여성의 근로가 특히 현저한 것, 6. 교육이 철저한 것, 7. 작업과 휴양이 구별되어 이루어지는 것, 8. 계량적인 작업을 하는 것, 9. 농구를 소중히 여기는 것, 10. 개량농구의 보급, 특히 동력농구의 이용이 활발한 것, 11. 합리적인 시비의 관념과 기술의 보급, 12, 공동작업이 활발한 점, 13. 가축의 이용이 철저하고 농경이 신속한 것,(14. 해독 불능) 15. 농가의 수지가 크다는 점, 16. 임상이 양호하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내용도 역시 신영농기술의 습득과 관련성을 찾기 어렵다. 가장 관련성이 밀접해 보이는 11번의 경우에도 제목과 달리 실제 내용은 ‘적은 면적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기 위해 늘 새로운 지식의 흡수에 태만하지 않는다.’는 원론에 그치고 있다. 이는 농업청년대원들이 일본 파견을 통해 구체적인 영농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여성의 경우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당국은 농촌에서 여성노동력의 동원을 목적으로 여성들을 파견하였으므로 신문지면을 통한 홍보활동은 매우 활발했다. 이를 통한 경험담에서도, 이들이 체득하였다는 ‘농업의 진수’는 ‘규율’과 ‘정신의 훈련’을 비롯해 ‘감사하는 마음’의 배양, ‘부인의 사명과 활동에 대한’ 감복이었다. 그 외 ‘정연하고 침묵의 작업’ ‘흙과 사람이 혼연일체된’ 작업의 모습에서 선진농업의 모습을 보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총독부 당국이 파견대의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제공한 글이다. 그럼에도 이상에서 확인한 것은 영농기술습득이 아니었다. 하루 19시간의 가혹한 노동력 제공에 대한 대가로 이들이 얻은 것은 일본인의 근면성 정도였다. 감상문을 남긴 이들은 하나 같이 여성노동력의 강도를 지적하고 있다. 이외에 비료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거나 일본농촌의 영농 습관 등을 배웠다는 감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영농방법이 굳이 일본에까지 가서 배워야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참고문헌
* 김종무, 1국제농업정책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9
* 김태곤·이규천, 조건불리지역 및 환경보전에 대한 직접지불제도 조사연구 : 일본과 미국의 직접지불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8
* 강정일,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의 추진방향, 농촌경제 16권2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3
* 박성호, 한국 농촌지역의 인구분포에 관한 회귀분석적 연구 : 경지율과의 상관관계를 중심으로, 지리학, 1976
* 이정환 외, 농업부문의 투융자 동향과 효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보고, 1987
* 우종현, 대도시내 영농조건 불리지역의 농업경영 특성 : 대구광역시 본리 마을을 사례로, 한국지역지리학회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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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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