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 형제 -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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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카라마조프가
표도르 파블로비치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스메르쟈코프

- 줄거리 -

카라마조프가 형제의 저자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뛰어난 심리 분석가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또 다른 해석
신이란 존재하는가.

본문내용

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설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카라마조프가 형제의 중심 주제를 이루는 부친 살해는 옴스크 감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옥살이를 하던 퇴역 소위 일리인스키의 이야기에서 얻어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20년의 징역을 선고받은 귀족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도스토예프스키의 부친살해 심리
1928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작자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내면
심리를 그대로 투영한 것이라는 충격적인 노문이 발표되었다. 논문의 제목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 살해범>이었고 발표자는 인간의 정신 활동은 의식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하며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저 유명한 프로이트였다.
프로이트는 모든 예술 작품은 꿈과 비슷하다 고 생각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지름길 이다. 꿈이 의식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무의식적인 사고나 욕망을 가장 선명하고 다양하게 비추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는 꿈의 분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무의식 속에
있는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소망은 대부분 성적인 것이고 의식의 눈으로 보면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꿈은 그러한 무의식적
충동을 의식이 받아들일 만한 정도로 적당하게 위장 하고 왜곡 시켜 드러낸다.
프로이트는 예술 작품도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무의식적 소망이 위장된 채 드러난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중심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면서 작가 자신에게 부친 살해 심리가 있었다고 추정하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이라든지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어머니 나이뻘인 전당포 노파를 죽인 것
등이 모두 그런 심리의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버지는 자기 영지에 속한 한 농노에 의해 도끼로 살해되었다. 그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열여덟 살이었다. 일생 동안 도스토예프스키를 괴롭힌 간질
발작이 시작된 것도 바로 열여덟 살 때부터였다. 프로이트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 발작이 진짜 간질이 아니라 히스테리성 발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일찍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에서 비롯된 부친 살해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욕구를 자각했기
때문에 진작부터 아버지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실제로 아버지가 살해되자 원래의 죄책감에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새로운 죄책감이 덧쌓였고 그 결과 히스테리성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다. 즉 도스토예프스키의 간질 발작은 도둑이 제 발 저려서 생긴 신경성
질병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작품 속에서 드미트리가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작가 자신의 도덕적인 자기 학대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다. 스스로를 벌줌으로써 죄책감을 덜려는 행위라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말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 는 끔찍한 소망을 품었던 걸까?
그런데 정신분석학에서 보자면 그런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는 결코 끔찍한 것도 비정상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거치게 되어 있는 일종의 통과 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신이란 존재하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반의 대심문관 사상은 그 논쟁을 통해 그의 상처 입은 마음을 되돌아보는 장치였다. 신을 부정하며 예수와 그리스도의 가치관에 냉소를 날리던 이반은 다른 형제와 마찬가지로 햇빛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신앙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킨 알렉세이와는 다르게 이반은 철저히 지식과 이성으로 자시 자신 테두리에 벽을 쌓았다. 누구든지 함부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고립되어가는 이반의 모습은 안쓰럽기조차 했다. 나 또한 무교로 신에 대해 무한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무신론을 통해 사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한순간에 파멸로 이끌어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몸서리쳐질 정도로 카라마조프가 사람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아낌을 받던 알렉세이, 즉 알료샤는 이반의 대심문관 논쟁에서 그 속의 진짜 본질을 알 수 있었을까? 형의 구원 없는 어두컴컴한 내면세계를 사랑을 먹고 자라온 알료샤가 꿰뚫어 볼 수나 있었을까?
대심판관 이야기
어느 날 스페인 한 도시에 예수 그리스도 가 재림하신다.
그러나 재림예수는 교회관청의 정보망에 탐지되어 바로 체포된다.
곧바로 추기경 앞에 인도 된다.
컴컴하고 음습한 지하실에서 심문을 당한다.
심문 후 교회관청이 내린 판결은
예수 당신이 이미 우리 교회에 모든 권리를 위임한 이상 그가 불필요하다는 것이고,
쓸모가 없으니 다시 올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다.
예수 없이 잘 해 나가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와서 간섭하려 드느냐
고 추기경은 다그쳤다.
재림 예수 에 대한 교회의 처리 결정은 즉시 떠나라는 것이었다.
떠나기를 거부하면
전에는 십자가에 못박은 처형이었지만
이제는 그보다 훨씬 가혹하고 견디기 힘든,
산 체로 불에 던지는 화형에 처하겠다고 교회는 협박했다.
재림예수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어둠 속으로 추방되어 사라져갔다.
이반이 생각해 낸 우화, 그리스도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16세기의 스페인에 등장한다는 대심판관 전설에 표현되어있다.
이 우화에 따르면 대심판관은
즉시 그리스도를 체포하여 죄를 물었는데 그 죄는 자유를 구하기 위해
유혹자 사탄의 선물인 빵과 기적,
권위주의적 명령을 그리스도가 거부한 죄다.
이 거부로 인해서 모든 인류의 고통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심판관은 적그리스도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탄의 도움을 받았다면 그리스도는 인간들을 이미 여기 지상에서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묵묵히 대심판관에게 입을 맞추고는 떠난다.
이 신화에서는 다가오는 한 세기의 이데올로기 발전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니체가 신의 죽음을 공언하고 20세기의 독재자들이 대심판관의 계획을 받아들인 이후에 분명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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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06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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