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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음악][미국음악][독일음악][러시아음악][로마음악][선사시대음악][삼국시대음악]한국의 음악, 미국의 음악, 독일의 음악, 러시아의 음악, 로마의 음악, 선사시대의 음악, 삼국시대의 음악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한국의 음악
1. 창부타령조(경기민요) - 경복궁타령, 한강수타령, 방아타령, 도라지 타령 등
2. 육자배기조(남도민요) - 진도아리랑, 새타령, 강강술래, 농부가, 시나위, 판소리
3. 메나리조(동부민요) - 정선아리랑, 어랑타령, 옹헤야, 쾌지나 칭칭나네 등
4. 수심가조(서도민요) - 수심가, 산염불

Ⅱ. 미국의 음악
1. 17세기
2. 19세기
3. 20세기 초

Ⅲ. 독일의 음악

Ⅳ. 러시아의 음악
1. 발라키레프(1837-1910)
2. 무소르그스키(1839-1881)
3.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
4. 큐이(1835-1918)
5. 보로딘(1833-1887)
6. 차이코프스키(1840-1893)

Ⅴ. 로마의 음악

Ⅵ. 선사시대의 음악

Ⅶ. 삼국시대의 음악
1. 신라의 음악
2. 고구려의 음악
3. 백제의 음악

참고문헌

본문내용

였고, 군사적인 목적으로도 쓰였다. 음악의 소비량은 사실 굉장히 많았던 셈이다.
온갖 민속들이 다 로마로 모여들면서 갖가지 음악들이 로마로 들어왔다. 특히 가장 발달되었던 그리스의 음악이 가장 널리 퍼졌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다.
이렇게 해서 로마는 군대로 그리스를 정복했지만, 음악으로는 그리스에게 압도당한 셈이 되었다. 그리하여, 로마는 음악에 관한 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Ⅵ. 선사시대의 음악
음악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음악 이름의 글자로 보아 춤은 창을 들고 추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으며, 농경 사회 이전 수렵 사회에서 추었던 춤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또 구이(九夷)의 음악과 춤을 하(夏)나라 왕 앞에서 연주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B.C. 2000년경의 우리 음악이 우수했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민속을 소개한 문헌의 글은 매우 상세하게 쓰여 있다. 부여에는 매년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고,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행사를 열었으며, 동예는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가 있었다.
영고 동맹 무천은 모두 추수가 끝난 후 하늘에 감사하는 국가적인 하늘제사로써,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제사한 후 며칠 계속하여 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고 즐겼다. 또 남쪽의 마한에서도 5월 씨뿌리기를 끝내는 때와 10월 추수하고 난 후 자연에 제사하고 연일 음식과 술을 먹고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부여 고구려 동예가 언어 풍속이 같고 마한 진한 변한도 북쪽지방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영고 동맹 무천과 마한의 행사는 그것의 제천 의식과 온 국민이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보아 같은 풍속이며, 이러한 풍속이 선사 시대 우리 민족의 공통된 습속이었을 것이다. 특히 진한에는 \'슬\'이라는 현악기가 쓰였다고 하는데, 이 악기는 우리말로 \'고\' 라는 악기일 것이며 가야고의 원형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어느 민족이나 언어와 함께 고유한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은 종교와 더불어 생성 발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음악이 독립하여 연주하지 못하고 문학 음악 춤이 혼연일체 되어 연주된 선사 시대에는 음악이 종교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제사도 음악으로서 의식을 집행했으며 제사가 끝난 후 즐거운 놀이에도 음악과 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제사는 일종의 굿이므로 이러한 굿과 놀이는 현재 5월의 강릉 별신굿과 10월의 각 지방의 도당굿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풍속으로 보더라도 5월 단오를 수릿날이라 하여 수릿떡을 만들어 먹고 노래와 춤으로 즐기며, 10월(음력)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초생달 아래에서 집집마다 신에게 고사를 드리고 선조 무덤에 제사하는 옛 풍속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음악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더불어 생성되었으며, 종교와 음악이 오랜 기간을 지나면서 풍속화되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Ⅶ. 삼국시대의 음악
1. 신라의 음악
신라의 음악은 3竹, 3絃, 拍板, 大鼓, 가무가 있다. 춤에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귀가 난 복두를 쓰며 자줏빛 큰소매가 달린 공복 난삼을 입고 붉은 가죽에 도금한 띳돈을 단 허리띠를 매었고, 검은 신을 신었다. 3현은 첫째 거문고, 둘째 가야금, 셋째 비파이고, 3竹은 첫째 대금, 둘째 중금 셋째 소금이다. 거문고는 중국 악부의 琴을 본떠서 만든 것이다.
<琴操>를 살펴보면 “복희가 금을 만들어 몸을 닦았고 성품을 바로잡음으로써 자연 그대로의 참됨을 돌이켰다”고 했고, 또 “금의 길이가 3자 6치 6푼임은 3백 66일을 본뜬 것이요, 넓이가 6치임은 六合을 본뜬 것이며, 판대기 위를 池라 하고 -지란 물이니 그 평평함을 말한 것이요, 아래를 濱이라 한다. - 빈은 복종함이다. 앞은 넓고 뒤가 좁음은 높음과 낮음을 본뜬 것이요, 위는 둥글고 밑이 모가 난 것은 천지를 본뜬 것이며, 다섯 개의 줄은 오행을 본뜬 것이다. 큰 줄은 임금이 되고, 작은 줄은 신하가 되는데,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 두 개의 줄을 더했었다.”고 했다. 또 <風俗通>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거문고의 길이가 4자 5치인 것은 사시와 오행을 본뜬 것이며 일곱 개의 줄은 북두칠성을 본뜬 것이다.”
2. 고구려의 음악
<通典>에서는 “악공은 자줏빛 비단 모자를 썼는데, 새깃으로 장식했으며 노란빛 큰소매에 자줏빛 비단 띠를 매었고, 가랑이 넓은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었으며, 오색 검은 노끈으로 매었다. 춤추는 이 네 명은 상투를 뒤에 쪼았고, 빨간빛을 이마에 칠했으며, 금귀고리로 장식했으나, 두 사람은 노랑 치마저고리와 적황색 바지를 입었고, 두 사람은 적황색 치마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는데, 매우 긴소매에 검은 가죽신을 신고서 쌍쌍이 나란히 악기에는 탄쟁 하나, 국쟁 하나, 와공후 하나, 수공후 하나, 비파 하나, 오현 하나, 의취적 하나, 笙 하나, 簫 하나, 소필률 하나, 대필률 하나, 桃皮하나, 장구 하나, 齋鼓하나, 담고 하나, 唄 하나를 썼다. 당나라 칙천무후 때까지는 아직 스물다섯 곡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오직 한 곡만을 익힐 수 있을 따름이고, 의복도 역시 차차 쇠패하여 그 본래의 풍류를 잃었다”고 했다.
<책부원귀>에서는 “음악에는 오현금, 쟁, 필률, 횡취, 소, 북 등속이 있는데 갈대를 불어 음곡을 조화시킨다.”고 했다.
3. 백제의 음악
<통전>에서는 백제의 음악은 당나라 중종 시대에 공인들이 죽고 흩어져, 개원 연간에 기왕범이 태상경이 되자, 다시 아뢰어 이를 설치했으니, 이로써 음악의 기공이 많이 비어 있었다. 춤추는 이는 두 사람인데 자줏빛 큰소매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장보관을 쓰고, 가죽신을 신었다. 악기로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쟁, 저, 도피필률, 공후인데, 악기 등속은 중국과 많이 같다고, <北史>에서는 “鼓, 角, 공후, 쟁, 지, 적의 악기가 있다”고 했다.
참고문헌
김종철, 세계속의 한국 교육, 서울 : 배영사, 1976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5~12권, 한길사, 1996
신동헌, 재미있는 음악사이야기, 음악세계, 2001
송방송, 한국 고대음악사 연구, 일지사, 1985
이성천, 음악 역사와 통론, 음악예술사, 2002
이성삼, 세계음악사, 정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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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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