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경제사 정리
본 자료는 2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해당 자료는 2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2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장시(=장문)>
<구체적>
<객주, 여각>
<포구상업>
<사상의 성장>
<사상과 도고>
<화폐유통>
<대외무역>
<가족제의 변화>
<재산상속>
<신분>

본문내용

하였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최초의 족보인 ‘안동권씨 성화보’에 보면 ‘前夫後夫’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부녀자가 재가가 가능했었음을 의미한다.
-성종 16년에 법제적으로 재가한 부녀자들의 아들은 문과응시자격에 2번까지는 가능하나 3번까지는 불가능하다고 법제적으로 제한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잘 되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연산군 때는 어머니는 같은데 아버지는 다른 경우가 매우 많았으며 양난을 거치면서 이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전래동화인「콩쥐팥쥐」에서도 재가에 대한 내용이 나옴
4)가족구성
-처갓집 근처에 사는 경우가 보편적이었는데 서류부가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이는 후에 양변적 방계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 장인과 사위가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았으며 전체 가족구성 중 40%는 방계가족의 형태였다.
-처음에는 남자가 처가에서 살다가 몇 년 후 그 근처에 빠져나와 사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세종때 여자가 시집가는 형태인 친영의 사례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점점 유교윤리에 의해 남자 중심으로 바뀌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산상속>
-고려시대부터 조선초까지 재산상속은 평균분급이었다.
-허나 재산상속이 점점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처가보다는 친가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류부가형태는 점차 기간이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지게 됨
①재산에 대한 인식
-재산에 대한 인식은 분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산은 부변전래, 모변전래를 엄격히 구분하였으며 물려받을 자녀가 없다면 여자재산은 여자집으로 남자재산은 남자집으로 돌아갔다. 혹 친척이 없다면 재산은 관에 소속되었다.
-분재기에서 자녀의 호칭 또한 알수 있는데 16C에는 첫째아들을 장자, 둘째딸을 차녀, 셋째아들을 삼남, 막내딸을 말녀 라고 일컬어는데 17C에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구분하여 장자, 장녀, 차남, 차녀 라 일컬었다.
②양자입양
-고려시대때에는 아들이 없어도 양자를 입양하지 않고 딸이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 양자입양은 대체로 첫째자식의 아들이 없을 때는 둘째집이나 셋째집 아들을 장자로 입양하여 적장자를 계승하였다.
③가족의 범위
-17C 중후반을 기점으로 하여 가족범위는 부·모계에서 부계로 바뀌었다.
또 방계가족의 형태에서 남성위주의 가족으로 바뀌었으며 상속 또한 봉사조를 제외한 균분상속에서 장자상속으로 바뀌어갔다. 가계계승도 원래는 아들·딸 구분없이 계승하였으나 장자 계승으로 바뀌었으며 주거지 또한 이성친족마을에서 동성마을형태로 변하였다.
<신분>
-조선시대 신분에 대해서는 이성무선생이 주장하는 4분설과 한영우선생이 주장하는 양천제로 나뉜다.
-한영우선생이 주장하는 양천제설은 다음과 같다
·①과거시험은 양인이상 응시가능
②양인에서 학생이배출되고 학생에서 관료가 배출됨
-하지만 제도적인 면에서 중인이라는 사람이 문제가 됨
-중인: !5C후반 등장. 17C 스스로 중인이라 일컬음
-중인은 기술관,녹사 등으로 구성되는 상급중인과 향리, 서리 등으로 구성되는 하급중인이 있다. 특히 상급중인은 수령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1.11.02
  • 저작시기201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11652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