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국왕, 민족주의 - 태국을 이해하는 세 가지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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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불교, 국왕, 민족주의 - 태국을 이해하는 세 가지 관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태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Ⅱ. 불교, 왕권, 민족
 2. 1. 태국에 대한 개략적 정보
 2. 2. 타이 민족의 기원과 역사
 2. 3. 정치와 종교의 결합
 2. 4. 타이 사회에서의 불교의 의미와 역할
 2. 5. 불교와 민간 신앙
 2. 6. 불교와 축제
 2. 7. 태국의 여성
 2. 8. 태국의 화인
 2. 9. 태국의 종족 갈등

Ⅲ. 맺음말

본문내용

역은 지리적 구분에 의한 것이지만 민족적, 문화적 구분도 포함되어 있다. 태국 사회는 지역적, 종족적 갈등에 겪고 있다. 화인도 타이 족이 아니지만 종족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
(1) 남부 태국
먼저 남부 태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남부 태국은 원래 말레이 세계의 일부였지만 태국에 의해 무력으로 병합된 지역이다. 태국이 말레이 반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말부터였다. 당시 아유타야 왕국은 주로 경제적 목적 아래에 말레이 북부 지방을 지배하고 있었다. 16세기 초까지 유지되던 관계는 16세기 중엽 이후 악화되기 시작하여, 피의 보복이 이어졌다. 이들의 관계는 정치적 세력에 따라 호전되기도 했지만 악화되기도 하다가 1785년 태국 군대에 점령되면서 태국 영토에 완전히 편입되었다. 그 후에도 반란이 계속되다가 1817년 빠따니 지역을 7개 지방으로 분할해 버린다. 방콕과 빠따니는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종교적, 민족적, 언어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그러나 1909년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영국과 태국의 국경 조약으로 인해 태국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이후 피분송크람 정부에 의해 무슬림에 대한 강압적인 동화 정책이 실시되었다. 2차 세계 대전 후, 이들 지역은 분리 독립을 주장하지만 태국 정부는 거절한다. 이들은 분리주의 운동 단체를 설립하게 되는데, 학생 운동을 통해 정치화된 젊은 말레이계 타이 무슬림들은 태국 남부에 독립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빠따니 연합해방기구(PULO)를 설립한다. PULO는 초기에는 타이의 정치, 문화 기관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다 1990년대부터는 과격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2) 동북부
태국 영토의 1/3에 해당하는 동북부 지역은 이산(Isan)이라고 불린다. 동북부 지역은 복잡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장 많은 민족은 ‘라오 족’이다. 라오 족은 언어적으로 타이 어와 차이가 있다. 또한 고원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콩강을 통해 라오스와 민족적,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은 13말 말 이전까지는 크메르의 지배에 있었지만 14세기 중엽에는 ‘란상’ 왕국이 건립되었다. 이후 아유타야 왕국과 이 지역을 둘러싼 경쟁을 벌이다가 17세기 후반부터 아유타야 왕국이 우위를 점했다. 이후 란상 왕국은 세 왕국으로 분열된다. 1827년 위앙짠의 반란이 일어나고 이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태국으로 편입되었다.
동북부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고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이산 지역의 사람들은 이들이 방콕 정부에 의해 차별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이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산 정체성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실시된 중앙집권적 교육 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중부 태국 중심의 중심지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국왕과 불교에 대한 존중을 강요받았다. 한편 이 지역에 대한 차별화 정책은 피분 정부의 타이 족 중심의 국가주의 정책 추진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시기 이산 지역 정치인들은 공산주의로 몰려 탄압받는다. 1980년대 이후에는 산업을 육성하는 등의 표면적인 포용적인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차별의 심화였다. 이산 지역은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였는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노동력을 팔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했다. 그들은 거기서 방콕에 비해 낙후된 고향을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 더 강한 이산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3) 북부 고산족
태국 북부에 거주하는 민족 구성은 복잡하다. 그들은 고유의 언어와 종교, 역사를 가지며, 종족 내부는 다시 몇 개의 하위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이들 종족 중 ‘카렌 족’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중국과 연관이 있다. 종교적으로도 카렌 족만 일찍이 불교로 개종했지만 나머지 종족들은 애니미즘, 샤머니즘에 속하고, 기독교를 믿는 종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지역의 갈등은 민족적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민족은 언어가 서로 달라 차별에 대한 저항을 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태국의 지역 및 종족 갈등은 민족적,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가진다. 또한 여기에는 근대 이후의 타이 족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도 그 원인이 된다. 이는 내부 식민주의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제국주의를 한 국가 내부에 적용한 것으로 중앙은 주변부에 대한 경제적 착취로 유지된다는 것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한다. 경제적 착취 외에도 교육을 통해 중앙의 정치, 문화를 정당화시켜, 주변부 스스로 그들의 열등함을 인식하게 하여 중앙으로 동화시키려고 한다. 중앙 집권적 체제는 피분송크람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피분 정부는 시암 문화가 ‘범 타이’ 세계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1970년대 타이 민족주의는 ‘타이적인 것’을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국가저체성부’라는 기관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 결과 중앙과 주변의 경제적 격차는 심화되었고, 주변부는 중앙에 대한 분노만 커가고 있는 상황이다.
Ⅲ. 맺음말
『태국-불교와 국왕의 나라』는 관광지로서 태국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서 태국을 다루고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와 왕권 그리고 이것이 바탕이 된 타이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태국의 역사와 태국 내부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관광 산업의 발달이 또 다른 계층의 소외를 가져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민족적 갈등이 있다.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한 위로부터의 민족주의가 중앙인 방콕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갈등도 잠재되어 있다. 태국의 교육 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과연 태국의 현실이 우리와 별개의 문제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 역시 개발 독재의 여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노동력까지 국경의 의미가 없는 상태에서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생기고 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그들을 영원한 타자로 간주한다. 갈등은 내재되어 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성숙한 의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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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1.11.18
  • 저작시기201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1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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