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보는 고대문화 - 내가 생각하는 10가지 중요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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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Ⅰ-1. 최초의 도구(도구), 그리고 그 원료(元料)
Ⅰ-2. 옛사람들은 어떻게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였는가?

Ⅱ. 본론 - 유물선정

Ⅱ-1. 슴베 찌르개
Ⅱ-2. 돌칼
Ⅱ-3. 돌보습(농경굴지구)
Ⅱ-4. 반달돌칼
Ⅱ-5. 돌화살촉
Ⅱ-6. 흑요석
Ⅱ-7. 주먹도끼
Ⅱ-8. 돌도끼
Ⅱ-9. 홈자귀
Ⅱ-10. 가락바퀴

Ⅲ. 결론 - 돌과 인간

본문내용

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외날돌도끼도 형태·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된다. 5∼10㎝의 대팻날처럼 편평납작한 석착류(石鑿類)와 길쭉한 도끼모양의 단인주상석부(單刃柱狀石斧), 몸통 한쪽 면에 끈을 묶기 위한 홈을 파낸 홈자귀(有溝石斧), 몸통 한쪽 면에 역시 끈을 묶기 위한 단(段)을 만든 턱자귀(有段石斧)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외날돌도끼들은 신석기시대에는 뗀 면을 지닌 반마제(半磨製)의 대형 석착류가 사용되다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크게 발전, 성행하게 된다. 한반도 전역에서 양날돌도끼와 함께 세트로 사용되면서 지역에 따른 특징적인 종류도 출현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턱자귀와 홈자귀이다. 턱자귀는 한반도 서북지방인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많이 보이며, 홈자귀는 중서부지방의 대표적 석기로서 충청도지방에서 주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외날돌도끼들은 중국 신석기문화의 같은 종류의 석기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기능면에서 볼 때 양날돌도끼는 도끼로, 외날돌도끼는 자귀로 각각 사용되었다.
이 밖에 도끼나 자귀와는 다른 특수한 용도로 쓰인 돌도끼로는 바퀴날도끼(環狀石斧)와 톱니날도끼(多頭石斧)가 있다. 바퀴날도끼는 북한학자에 의해 ‘달도끼’로도 불린다. 전체의 모습은 원반형이며 한가운데에 나뭇자루를 끼우기 위한 구멍이 있고 양날 혹은 외날을 가지고 있어, 절단용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투용 또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휘용으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10∼15㎝ 내외이다. 톱니날도끼는 역시 북한학자에 의해 ‘별도끼’로도 불린다. 전체의 모습이 성게나 별모양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구멍이 있고, 용도는 바퀴날도끼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두 종류의 특수한 용도의 석기는 청동기시대에 출현하여 철기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소멸되었다.
Ⅱ-9. 홈자귀(특이한 돌도끼의 일부분)
자루가 날부분과 직각이 되게 이루어졌으며, 부신(斧身) 한 쪽에 끈을 묶기 위한 홈을 파놓은 자귀. 유구석부(有溝石斧)’라고도 한다. 목재를 가공하는데 주로 쓰였다. 청동기시대 중기인 서기전 7세기경에 나타나 철기시대인 서기전후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중국의 농경문화와 함께 전래되었으며, 그 원형은 중국 화남지방의 유단석부(有段石斧)에서 찾을 수 있다. 유단석부는 부신 한 쪽에 단을 만들어서 끈을 묶어 사용한 반면, 홈자귀는 단대신 홈에다 끈을 묶어 사용하였다. 이 홈은 우리나라에서 고안해 낸 것으로 서기전 3세기경 벼농사와 함께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서기전 7세기경 우리나라 중서부지방에서 나타난 홈자귀는 서기전 5세기를 전후해 형식의 변화를 일으킨다. 서남해안지방에서는 배를 만드는데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장대형(長大形)의 홈자귀도 나타나고 있다. 홈자귀의 용도에 대해서는 땅을 파는데 쓰는 굴지구(掘地具) 등의 다목적 도구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중국의 유단석부처럼 목공구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특징의 하나는 마제석기의 활용이다.
Ⅱ-10. 가락바퀴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원시적인 방적구(紡績具). ‘방추차(紡錘車)’라고도 한다. 짧은 섬유의 경우는 섬유를 길게 이으며 뒤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고, 긴 섬유의 경우는 꼬임만을 주어 실을 만드는 방적구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다. 골제·토제·석제·도자제 등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형태 또한 원판형·구형·반구형·원통형·절두원추형(截頭圓錘形)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 궁산리(弓山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鰲山里), 한강 중류의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欣巖里)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유적에서 바늘에 실이 감긴 채 출토된 예가 있어 실을 잣는 데 가락바퀴가 사용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전국 각지에서 가락바퀴가 출토되고 있다. 가락바퀴는 그 중앙에 둥근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을 통하여 가락바퀴의 축(軸)이 될 막대(軸棒)를 넣어 고정시킨 상태로 만들어서 완성시킨다. 막대의 위쪽 끝에는 갈퀴를 만들어 둔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갈퀴의 형태가 다르며 경우에 따라서는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나무막대의 길이도 그 사용 목적에 따라서 다르며 그 굵기도 다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나무막대는 부식되어 그 형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가락바퀴는 섬유를 이어 꼬임을 주면서 실을 만들거나, 긴 섬유 자체에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들거나 간에 가락바퀴에 막대를 움직이지 않게 끼고 한 손에 섬유 또는 꼬임을 주려는 실을 잡은 뒤, 다른 한손으로는 실끝을 잡아 늘여 막대에 잡아매고 가락바퀴를 늘어뜨려 일정한 길이로 실이 뽑히도록 자세를 잡은 다음 가락바퀴를 회전시키면 실이 늘어뜨려지는 순간 꼬인다. 일정한 길이로 된 실은 막대에 감기면서 계속해서 실이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가락바퀴는 중세에 이르러 방차(紡車)로 발전하였다.
Ⅲ. 돌과 인간
인간은 돌을 최초의 도구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수천년이 지난 지금, 청동의 시대를 지나서 철의 시대인 현대 인간들도 돌을 도구로 사용한다. 과연 돌과 인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나는 그 둘의 관계가 단순하게 도구와 도구 사용자의 관계라고 생각하기 보다,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상호작용관계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이 돌을 도구라고 생각해서 건들여서 돌으로 만들었기도 만들었지만 이 돌이 여기에 있었고 도구가 되어서 인간의 삶을 도왔기 때문에 인류를 발전시키고 윤택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인간은 기술이 발달하고, 돌은 돌대로 모양을 바꿔가며 많은 일을 한다. 즉, 유물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라기보다는 현재의 우리를 존재하도록 도와준 것들이다.
-참고문헌&자료-
콜린 렌프류폴 반, 이희준, 『현대 고고학의 이해』, (주)사회평론, 2006
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3
한창균 외 14명, 『한국 매장문화재 조사연구방법론 2』,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고고학학회, 『한국고고학강의』, (주)사회평론,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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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유물,   고대,   문화,   고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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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2.14
  • 저작시기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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