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시민참여 - 영화 '이장과군수'와 비교한 조선시대 부패와 감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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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영화 '이장과 군수'
1) 영화의 줄거리
2) 영화에서 나타나는 부패


2. 현대사회의 부패
1) 부패의 정의
2) 선거에서 나타나는 부패와 해결방안


3. 조선시대의 부패 방지 제도
1) 조선의 고유 지방감찰제도
2) 암행어사의 역할
3) 조선의 대표적 감사기관 - 사헌부




Ⅲ. 결론



Ⅳ. 참고자료

본문내용

여금 왕의 성덕을 칭송하도록 하고 국가기틀을 튼튼히 하는데 기여했다.
3) 조선의 대표적 감사기관 - 사헌부
조선왕조는 처음에는 법제를 대체로 고려 말의 제도를 그래도 준용했지만, 점차 시의에 맞도록 바꾸어 갔다. 1932년(태조 1년) 7월에 관제개혁이 있었다. 이때 사헌부에 대사헌(종2품) 1인, 중승(종3품) 2인, 겸중승(종3품) 1인, 시사(종4품) 1인, 잡단(정5품) 2인, 감찰(정6품) 20인을 두었다. 1369년(공민왕 18년) 고려의 사헌부와 비교할 때, 지사(종3품)가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 약간의 출입이 있기는 하나 거의 비슷한 제도였다.
지사가 없어진 것은 재상들의 관계를 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사와 판사는 재상들의 겸임직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대사헌의 직위를 판서급인 종2품으로 올려 감사기관으로서의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이는 고려의 귀족제를 청산하고 관료체제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담긴 개혁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감찰어사의 수를 늘린 것은 관계의 기강을 확립하고 관리들의 비행, 비리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사헌부의 관제는 다시 바뀌었다. 대사헌(종2품) 1인, 집의(종3품) 1인, 장령(정4품) 2인, 지평(정5품) 2인, 감찰(정6품) 24인으로 『경국대전』에 명문화 되었다. 대관은 6명으로 고려에 비하여 반으로 줄었고, 대신 감찰은 대폭 늘었다. 귀족적인 성격을 혁파하고 실무 감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 - 이성무, 청아출판사 2009
사헌부는 조선시대 중앙정부에 설치된 감사기관으로서 오늘날 감사원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주요임무로는 "당시 정치의 당 부당을 논집하는 것, 백관을 규찰하는 것, 풍속을 교정하고 원통함과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권력남용과 허위를 금하는 것"등이었다. 이 기관은 신라 때의 사정부, 고려 때의 어사대(사헌대)와 같이 백관을 규찰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 그 기능은 곧잘 왕의 눈과 귀에 비유되곤 하였다. 왕이 구중궁궐에 있으면서 전국 백성들의 어려움과 자신이 임명한 신하들의 현명함과 잘잘못을 알기 어려우므로 사헌부로 하여금 모든 일을 살펴보고 왕에게 진언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헌부도 중앙의 도성 안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지방에 있는 관리들에 관한 감찰기능은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웠으며, 특히 먼 지방에 사는 백성들의 고통을 살피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사헌부의 지방 규찰은 풍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사헌부에게 지방의 범법 사실을 인지하면 이를 관찰사에게 이첩해 조사하게 하였는데, 관찰사는 도리어 잘못을 은폐하려 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감찰기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헌부는 조선 초기에 감찰을 각 지방에 파견해 규찰케 하거나, 지방에 사헌부의 분사무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사헌부에서 단독으로 행대를 파견했고 그 효과가 컸다. 그러나 행대가 왕의 측근을 지나치게 감찰하는 등 왕권과 충돌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몇 차례 발생했으므로 세종 원년(1419)에는 왕의 교지를 받아야 지방에 출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분대는 문종이 각 지방에 설치하고자 원했으나 미처 설치하지 못했는데, 세조가 이를 처음 설치했다. 분대는 분어사대의 분말로서 지방에 설치한 사헌부 분사를 의미하며, 일정 지역을 순행하며 규찰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성종 20년(1489)네는 사헌부의 관원이 아닌 조신(조정의 관리) 가운데 왕이 선택해 어사로 파견하면서 '분대어사'가 아닌 단순히 '어사'라고 호칭했다. 그 후 어사는 사헌부와 별개의 기관으로 발전해 왕이 직접 임명하고 직접 지휘하게 되었으며 결국은 비밀리에 임명하고 비밀리에 활동하는 암행어사로 변했다. 즉, 중종 이후에는 사헌부는 중앙에서만 활동했고 행대나 분대를 지방에 파견한 기록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으며, 각 지방의 감시 감찰은 왕이 직접 임명한 어사 또는 암행어사가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Ⅲ. 결론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보이는 '노대규'의 모습은 젊은 일꾼으로서 '군'단위의 작은 자치단체이지만, 군민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청렴한 군수로 비춰졌다. 영화의 결말 자체는 해피엔딩 같이 보였으나, 실상은 다시 한 번 부패로 얼룩진 기득권층에 무릎을 꿇는 씁쓸한 결말이 되었다.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단체에서도 부패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신문지상에 그러한 기사들이 가득하고 내가 믿고 투표한 사람이, 그 전에 선거 과정에서도 비리와 부패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뉴스를 본다.
보고서 조사를 위해 조사를 하다가 조선시대의 지방 감시 제도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암행어사의 '비밀성'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이 특징이 지방 관료의 부정한 행위를 잡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암행어사에게 다양한 권한을 부여해 주어 책임감을 가지고 백성들을 위해 근무했을 것이다. 많은 권한을 이양하면 그 권력을 가지고 부당하게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때의 처벌을 강력하게 정하고, 꼼꼼하고 세밀한 선발과정으로 감시인을 임명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나아가 '정부와 시민 참여'라는 과목에 연과해서도 시민의 감시기능은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제도란 상호 감시, 견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권력이 양분되고 상호감시, 견제체제가 살아있는 곳에 부패, 비리는 자리 잡기 힘들다. 청렴한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시민의 자랑이기도 하다. 청렴한 지방정부는 선진정부의 필수전제조건이다. 주민의 세금으로 월급까지 챙기는 시, 도의원들이 지금 이 시각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주민들도, 지방언론도 감시의 눈길을 펼쳐야 한다. 뽑아주는 것으로 유권자의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공익적 고발정신과 주민참여는 민주시민의 기본의무다.
Ⅳ. 참고문헌
한국의 부패와 반부패정책 - 정성진 외, 한울 아카데미 2000
조선의 암행어사 - 임병준, 가람기획 2003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 - 이성무, 청아출판사 2009
부패와 정부 - 수잔 로즈 액커먼, 동명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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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27
  • 저작시기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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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3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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