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세기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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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적 배경
1.1 청화백자의 유입과 조선 전기 상황
1.2 17세기 조선의 상황과 철화백자의 발전
2. 청화백자
2.1 출토지
2.2 유입과 발전
2.3 기형
2.4 문양
3. 철화백자
3.1 출토지
3.2 유입과 발전
3.3 기형
3.4 문양
4. 청화백자와 철화백자 문양 비교
4.1 청화백자와 철화백자의 차이점
4.2 대표 문양 비교
4.3 각 시대의 문양과 회화의 상관관계
5. 결론

참고자료
참고문헌

본문내용

모방
-관습적으로 표현된 양식을 가짐
-용머리, 비늘 등 격식에 맞춘 사실적 표현
철화백자
<용문항아리,16세기/철화백자/국립박물관소장>
-친근성을 주며 자유로운 스타일을 보임
-회화나 목제품등 다양한 미술 작품에서도 애용
-형체조차 생략되고 약화
-권위적인 상징성 약화
-도공의 자유분방한 개성을 보여줌
-17세기 용문은 왕만 사용 가능
②15c-16c 청화백자의 대표적인 문양 : 매죽문(梅竹文), 수하인물도(樹下人物圖 )
기종
특징
수하
인물도
(樹下人物圖 )
청화백자송죽인물문호/국보 644호/이화여자대학교 소장>
-나무 아래에 인물을 배치한 그림
-중국 당대에 성행
-16세기 후반의 절파화풍의 영향 받음
③17c 철화백자의 대표적인 문양 : 용문, 초문, 포도문, 사군자
기종
특징
포도문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제93호/국립중앙박물관소장>
-통일신라: 포도당초문 성행(사실적 포도넝쿨묘사)
-다남과 다산의 상징물로 그려져옴
-조선시대에는 17세기 전반경에만 보임
-회화적인 포도문이 성행
-간혹 추상화된 포도문 표현
초문
<백자철화승문병/보물제1060호/국립중앙박물관소장>
-상림리, 신대리의 관용에서 출토, 양반들의 사용
-매죽문의 대용으로 서민들 사용
-자유분방한 활발한 필치가 도자기에 시문
-사기장의 개성을 담은 창조적인 문양
-높은 예술성보임
4.3 각 시대의 문양과 회화의 상관관계
조선백자의 문양은 각 시기 회화의 일반적인 경향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조선 전기 백자의 문양으로 눈여겨 볼 것은 청화로 그린 매죽문이나 수하인물도이다. 이러한 소재들은 당시 양반들의 의식세계를 적절하게 반영한 것으로 일반 회화에서도 주요한 소재들이었다. 철화백자의 전성기의 17세기에는 문양의 내용이 바뀌어 용문이나 초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용문은 백자뿐만 아니라 회화나 목제품등 다양한 미술 작품에서도 애용되었다. 백자의 문양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회화에서 즐겨 그려진 산수도가 조선백자에 등장한 것이다. 입체적인 백자의 기면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당시 유행하던 '소상팔경도'등을 즐겨 그렸다. 한편 수하초옥도는 양반들이 지향했던 안빈낙도적인 의식세계를 잘 담고 있으며 간략하고 청초하게 묘사된 사군자에는 당시 일반 회화의 흐름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19세기에 들어 백자의 사용층이 확대되고 양반층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백자의 문양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부귀영화나 무병장수, 다남자, 입신출세를 뜻하는 길상문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은 민화를 비롯한 다양한 미술품에서도 어김없이 보인다.
아래는 15-16세기 회화와 도자의 문양이다.
①사군자
<청화백자매죽문호(靑華白磁梅竹文壺) >
<홍매대련/우봉/조희룡/종이,담채각 145.0x42.2>
매·난·국·죽 네가지 식물의 총칭인 사군자는 네가지 식물 각각의 특유한 장점을 군자, 덕행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이들을 사군자라고 불렀으며 도화서의 화원들 사이에도 필수 화목이 되었다.
<청화백자송죽인물문호/국보644호/이화여자대학교 소장>
<고사탁족도/이경윤/27.8 x19.1cm/국립중앙박물관>
-나무 밑에는 책상에 팔을 괴고 있는 인물,대나무 밑에는 거문고를 든 동자를 거느린 한 선비가 거닐고 있는 모습이 묘사
-구도나, 인물의 배치 및 묘사가 16세기 후반의 화풍과 매우 유사
-나무아래의 물가에 앉은 선비가 술주전자를 받쳐 든 시동을 바라보며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장면
-먼 여행에서 돌아와 개울에 발을 담그고 술을 대접 받았다는 선화유사의 내용
②수하인물도(樹下人物圖) : 나무 아래에 사람을 배치
③포도문
<백자철화포도문호/국보 제93호/국립중앙박물관소장>
<묵포도/황집중/모시바탕에수묵, 27cm×21cm>
-직각으로 올라선 아가리둘레에도무늬를 두르고 몸통에는 포도 덩굴을 그려 넣음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포도 덩굴의 잎과 줄기의 생생한 표현
-전문 화가들이 그린 회화성이 짙은 그림임을 알 수 있음
-포도를 묵죽이나 묵매에 뒤지지 않는 문인화의 어엿한 소재로 부각시킴
-다양한 여러 형태의 변화있는 잎의 표현
-과장이 없는 사실적인 포도송이
-농담이 강조된 색조의 대비
-동그란 포도알에 있어 선염 효과에 의한 입체감의 표현
5. 결론
본문에서는 이러한 15~17세기의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를 대상으로 연구하여 이 시기 백자들이 가지는 역사성과 회화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를 비교한 결과 우선 조선 백자의 변화는 조선의 사회 경제적 변화와 즉각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청화백자와 철화백자 각각에서 나타나는 문양들은 당시의 회화 풍조와도 유사하게 발달하였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실제 자기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기보다 기존 연구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여 살펴보는 정도에 그쳤다는 점과, 청화백자와 철화백자를 회화와 비교함에 있어 좀 더 면밀한 비교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고 1 : 시대별 청화백자 정리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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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이外(1981), <고고미술 149.151>, 한국미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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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 장기훈, (2005), <조선관요박물관 도자문화실>, 재단법인세계도자기엑스포
강경숙(2005), <한국 도자기 가마터 연구>
<광주 조선백자 요지 수집 백자파편 분석보고서>, 해강박물관, 광주시, 2003
장기훈(1996) <조선시대 17세기 백자의 연구; 광주분원 요지 출토품을 중심으로>, 홍익대
윤효정(2006) <朝鮮 15ㆍ16세기 靑畵白磁의 製作과 使用>,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pp.315-360.
박선경(1992), <조선시대 철화백자의 변천에 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김향희(1986), <조선시대 청화백자 문양과 회화의 비교 연구 : 15, 16세기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윤효정(2002), <조선 15,16세기 청화백자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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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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