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요약정리 및 감상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책 소개 -

- 저자 소개 -

- 목 차 -

- 요약정리 -

본문내용

합쳐지려 할 때 거센 바람이 불면, 줄기에 비해 가늘과 가벼운 가지는 속절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야속한 바람을 넘어서서 끝내 합일을 이루어낸 것이 바로 연리지의 사랑입니다. 깊은 사랑입니다.
이들의 사랑은 서로 자신의 살을 내어주지 않고는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한다는 것은 이렇게 살을 에는 아픔을 딛고 이룩하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연리목처럼 옆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나의 몸과 마음을 열고 세포의 칸막이까지도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연리목의 사랑이 너무 귀하여 흔하지 않다면 혼인목의 사랑법은 조금 더 대중적입니다. 숲에 들어가 자주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에 존재하는 수많은 혼인목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혼인목이란 서로 같거나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그루가 한 공간에서 자라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 모양을 만들어갈 때 그 한 쌍의 나무에게 붙여주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 서로에게 뻗는 가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빈 공간을 찾아 뻗어나가기도 하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조화를 이룹니다. 연리목이 제 살을 내어주며 하나로 합일하는 사랑이라면, 혼인목은 서로의 가지를 떨어뜨려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는 사랑입니다. 혼인목의 사랑은 옆의 나무로 향하는 날선 가지를 떨어뜨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가 허용한 공간으로만 나의 가지를 뻗으며 마치 둘이 하나인 것처럼 나무의 모양을 완성하는 사랑입니다.
혼인목의 사랑은 서로를 위해 각자의 욕망을 덜어내어 완성되는 사랑입니다. 나도 있고 그도 있는 사랑입니다. 서로 다른 둘의 내가 만나 하나를 이루는 사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 인연을 수용하는 사랑입니다. 따로이면서 함께 자라는 꿈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오랜 시간 서로를 바라보는 과정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입니다. 순간순간 불편함을 겪으며 긴 시간을 함께 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경지입니다.
이 숲에 살고 있는 혼인목과 옆 마을의 자랑거리인 연리목은 이 시대의 사랑을 닮지 않았습니다. 모두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고비가 없지 않았으나 그때마다 서로를 더 깊이 아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분들에게 갈등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의 영역을 존중해가는 과정의 하나였습니다. 부부의 본질이 각자이면서 또한 하나인 것에 있음을 평생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몸과 마음으로 익혀오셨습니다.
이 숲에는 옛날에도 지금도 혼인목과 연리목의 사랑이 크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숲에도 그들의 사랑을 닮은 시류가 조금씩 복원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다 - 다시 태어나는 삶
놓음 - 썩어져라! 한 순간도 살지 않은 것처럼!
죽음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나무들은 겉으로 보아도 그 증상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수세를 잃기 시작합니다. 여름날, 항상성을 지키며 힘차게 살아가는 나무 아래에 서면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달고 있는 견실한 가지와 싱그러운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세가 약해진 나무들 아래에 서면 가지와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숭숭 보입니다. 스스로 영양을 생산하여 호흡을 감당하고 그 영양을 남겨 다른 곳의 성장에 쓰던 비율이 역전되면, 즉 호흡이 생산의 규모를 넘어서면 나무는 삶의 균형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세가 계속 약해지면 나무는 항상성을 잃게 되고 머지않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나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섰을 때 나타나는 것이 버섯입니다. 줄기에까지 버섯이 피어난다면 나무는 이미 그 전체의 생명을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는 죽으면서 다른 생물들에게 수많은 혜택을 베푸는 것으로 자신의 죽음을 풍성하게 합니다. 죽어 소멸해가는 나무들의 몸은 다른 생명들을 위해 베푸는 마지막 잔치와도 같습니다.
나무들은 항상성을 잃고 주어진 삶을 정리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푸석푸석 썩어가는 그들의 몸은 누군가의 은신처요 사냥터요 놀이터였다가 비와 바람을 만나면서 아주 천천히 흙으로 되돌아갑니다. 흙으로 되돌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은 모든 것을 내어주어 다른 생명을 부양합니다. 썩어가도 나무가 물을 머금어 축축해지면 이끼들이 그 물기로 배를 채우며 자라게 됩니다. 이렇게 자란 이끼는 나무의 죽음에 생기를 더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크고 작은 생명들을 부양하고 숲을 지키는 나무들은 자신의 일생과 주검 모두를 흙에게 바칩니다. 모든 나무의 죽음이 풍성하고 숭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책에서 삶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스님은 사람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깊고 깊은 통찰입니다.
더하여, 나는 사람이 죽음을 맞는 자세 또한 나무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묘지 안에 갇혀 영원을 꿈꿀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죽음도 누군가를 위한 ‘만찬장’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대지요, 다른 생명들일 것입니다. 나무의 삶이 그러했듯이 결국 우리의 삶도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은 모든 생명들에게 죽음을 통해 그 빚을 갚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무들이 그 빚을 갚으며 한 줌 흙으로 소멸하듯이 우리의 주검도 그러해야 합니다. 나는 이 숲에 들어오기 전부터 제법 많은 나무를 심었습니다. 언제고 신이 나를 부르시는 날, 그중 한 그루 아래에 묻힘으로써 자연에 진 나의 빚을 되갚고 싶습니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죽음이 내게 당도했을 때, 나는 그렇게 아낌없이 갚고자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 순간만이라도 나는 모든 것을 편안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처럼 썩어짐으로써 온전한 흙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것으로 이 별과 다른 생명들에게 빚내어 산 삶을 되돌려놓고 싶습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09.12.04
  • 저작시기2009.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3167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