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초 개토귀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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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초 개토귀류 정책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 언.


II. 개토귀류의 배경.


III. 개토귀류의 성격.


IV. 개토귀류의 결과 및 영향.


V. 결 어.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이고, 이에 따르면 고구려를 건국한 예맥 족은 중국의 한 변강민족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중국의 판도는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던 청조를 계승한 것이므로, 청조에 대해 어떤 근거를 대어서라도 정통적인 중화의 계승자로 보고자하는 것은 다분히 현재적인 필요에 따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청조 스스로가 중화가 되기 위한 열망에 사로잡혀 과도한 무력 정벌을 일삼았다거나 변강에 대해 강제적 직접지배를 실시하였다는 시각은 너무나 중화스럽고 낭만적인 상상이다.
마대정 등의 <<중국의 국경, 영토인식>>에서 옮긴이 조세현
의 서문을 보면, 이 책의 본문 곳곳에서 영토나 국가문제에 대해 “민족과 국가의 최고 이익에 복무”하고자 하는 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정치적 목적과 역사과학이라는 학술적 목표 사이에서 위험스런 줄타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서술하며 고구려사 논쟁이나 동북공정 문제는 동아시아적, 혹은 세계사적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명히, 고구려사 논쟁과 동북공정 문제는 동아시아적, 혹은 세계사적인 폭넓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문구 하나로 논의를 피해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현실만 보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논리를 무시하는 유용태, <“동북공정”의 논리근거>
이러한 중국의 태도는 그들의 변강정책의 역사 속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져있는 부분을 통해 반박의 근거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사가들은 화이문제를 문화의 문제라고 말하며, 중국과 주변 변강지역 간의 문화적 동질성의 형성이 마치 정치적인 침투보다 먼저거나, 혹은 동시에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적 동질성의 확산 논리도 결국 주류민족의 현실적인 힘의 정도에 종속되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주류민족의 억압이 약화되면 곧바로 자신의 독자적 정치 단위로 분리 독립하려는 역동성을 그 안에 내장하고 있음 유용태, <탈냉전기 민족문제의 이해와 역사교육>
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가, 혹은 그 국가를 장악한 정부가, 그 영역을 확대하고, 확대된 영역을 가능하면 통일된 국가 원칙에 따라 직접, 효율적으로 통치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이해하기 어려운 원리가 아니다. 또한 그러한 중앙에 의한 강제적, 통일적인 지배가 피지배층에게 미치는 장점이란 것도 분명히 있는 것이고, 동시에 억압이란 측면도 갖게 마련인 것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그 국가체제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중앙정부에 의한 직접 지배를 강화하고자 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문화의 논리나 화이의 논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들이 소유하지 못한 소수민족의 과거를 ‘현재의 영역 내’라는 비역사적 상태만을 근거로 획득하고자 하는 데서 나온 비약인 듯싶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밝혀야할 것은 과연 중국이 역사적으로 어떤 영역을 어느 정도의 통치력을 가지고 얼마 동안 어떤 모습으로 지배하였는가 하는 ‘역사적인’ 사실이고, 이때 중국이 지향했던 변강 통치의 최종적 지향점은, 그들이 이른 바 ‘이상적인 변강 통치 정책’을 폈다고 말하는 청조의 개토귀류, 즉 ‘중앙에 의한 직접 지배’에 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고찰이야말로 중국의 비역사적 ‘중화민족론’ 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참 고 문 헌>
(1) 史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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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擁正殊撚諭旨>>,
(2) 單行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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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論文
<國文>
朴章培, <趙爾豊의 改土歸流와 大土司 왕국들의 해체>, <<근대 중국 연구>> Vol.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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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鏞泰, <“東北工程”의 논리근거>
<脫冷戰期 民族問題의 理解와 歷史敎育>
<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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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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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9.27
  • 저작시기2013.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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