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상앙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사회과학] 상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상앙 ; 위대한 개혁가 혹은 가혹한 형벌의 주창자

Ⅱ. 상앙 : 법으로 천하를 다스리다.

1) 위나라의 공손앙
2) 혜왕과의 만남
3) 그리고 진의 효공
4) 공손앙, 상앙이 되다
5) 상앙 변법
6) 코를 베다
7) 작법자폐, 상앙의 최후
8) 의의

Ⅲ. 맺음말
1) 최고의 개혁가 상앙
2) 연혁

Ⅳ. 참고 문헌

본문내용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공숙좌가 병에 걸려자리에 눕게 되자 혜왕은 그를 문병하러 왔다.
“만일 공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어떤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면 좋겠는가?”
혜왕의 물음에 공숙좌는 상앙을 추천했다.
“저의 식객 중에 공손앙이 있습니다. 아직 젊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쓰시지 않으려면 차라리 그를 죽여 없애시옵소서.”
공숙좌는 곧장 상앙을 불렀다.
“왕께서 나에게 다음 재상에 누가 적합하냐고 물으시기에 자네를 추천했네. 왕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찬성하는 눈치가 아니었어. 나로서는 역시 신하보다는 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네. 만일 상앙ㅇ을 쓰시지 않으시려거든 죽여야 한다고 말이야. 왕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엇네. 그러니 자네는 잡히기 전에 빨리 도망치는 것이 좋겠네.”
그러나 공손앙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왕께서는 저를 쓰시라는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저를 죽이라는 말도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상앙은 이렇게 말하고 도망치지 않았다.
<전국시대>
3) 그리고 진의 효공
공숙좌가 죽자 공손앙은 자신의 앞날을 생각했다. 얼마 후 자신의 후원자였던 공숙좌가 죽자 공손앙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향했다. 당시 중국의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주고 등용해 줄 군주를 찾아 길을 떠나는 일이 유행처럼 되어 있었다. 이를 유세라고 한다. 공손앙의 경우도 그러했다. 진의 효공이 동쪽의 잃은 땅을 되찾고 목공의 위업을 이으려고, 나라 안에 포고문을 내고 인재를 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영토수복 전재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곧장 진나라로 가서 효공이 총애하는 신하 경감을 찾아가 효공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공손앙은 효공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효공은 상앙의 얘기가 길었기 때문에 가끔 졸면서 얘기를 들었다. 공손앙이 물러가자 효공은 그를 소개했던 경감을 불러 꾸짖었다.
“그대 집에 온 손님은 바보가 아닌가. 그를 등용하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군.”
그래서 경감이 공손앙을 꾸짖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제왕으로서의 바른 길을 말했는데, 효공이 잘 알아듣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닷새 뒤 이번엔 효공이 공손앙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하여 네 번째 만나게 되었을 때 효공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논에 열중하였다. 효공은 공손앙 만한 인물이 없다고 여기고 그를 중용했다. 효공은 강국책을 실행에 옮기는 첫 사업으로 우선 조정의 개혁을 단행하려 했으나, 세상의 여론과 비난이 두려워 체념하고 있었다. 이때 공손앙은 이렇게 건의했다.
“성공도 명예도 자신 없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행위든 사상이든 세상의 상례를 벗어나면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일이 끝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서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저알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에게는 계획 단계에서 일리지 않고 결과만을 누리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상의 덕을 논하는 자는 세속에 영합하지 않으며, 큰 공을 세우려는 자는 다수의 사람들과 상담하지 않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강국을 목표로 하신다면 선례를 따르지 마시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실행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옛날의 관습을 좇을 필요가 없습니다.”
효공은 그의 말에 찬성을 표시했다. 공손앙은 효공에게 개혁을 주장했다.
4) 공손앙, 상앙이 되다
진나라의 효공 원년(BC 361년), 주 왕실이 쇠퇴한 뒤로 제후들이 힘에 의한 대결을 기도한 결과 중국 대륙에는 강한 여섯 나라가 있었다. 제나라의 위왕, 초나라의 선왕, 위나라의 혜공, 연나라의 도공, 한나라의 애공, 조나라의 성후 이다.
진나라는 서쪽 변두리에 있는 옹주에 도읍을 두었기 때문에 중원의 제후들로부터 오랑캐로 취급받으며, 맹세의 모임에 초대되는 일도 없었다. 진의 효공은 어진 정치를 베풀려고 몹시 애썼다. 그는 고아나 과부를 돕고 병사들을 우대했으며, 공을 따져 상을 주는 일을 공평하게 실시하면서 한편으로 나라 안에 다음과 같이 포고했다.
“옛날 우리 선왕이신 목공은 기산과 옹주 일대에 나라를 정하고부터 덕을 쌓고 무력을 충실하게 다졌다. 그 결과 동쪽으로는 진나라의 난을 평정하여 국경을 용문강까지 넓히고 서쪽으로는 융과 적을 귀속시켰다. 이때 후세를 위한 나라의 기초가 구축되었지만, 이처럼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뒤 여러 대를 거듭하면서 내란이 그치지 않아 외국의 원정은 엄두도 못 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3진에 의해 우리 선군이 남기신 하서 땅을 빼앗기고 제후로서 수모를 받았다. 이와 같은 굴욕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그 뒤 헌공이 즉위하자 변경의 야만족을 다스리고 역양으로 도읍을 옮겨 다시 원정군을 보내고 빼앗긴 영토를 도로 찾고 목공의 다스림을 재현하려 하셨다. 이 헌공의 뜻을 생각만 해도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서 빈객이나 모든 신하들에게 말한다. 기묘한 계략으로 우리 진나라를 강대하게 만드는 자에게는 높은 관직과 영지를 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진나라의 외국 원정이 시작되고 동쪽으로는 섬성을 포위하고 서쪽으로는 융나라 원왕의 목을 베는 전과를 올렸다. 공손앙은 효공에게 이렇게 건의하였다.
“현재 진나라는 융성합니다. 목공의 전성 시대를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위나라가 마릉에서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제후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습니다. 위나라를 치려면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위나라를 쳐서 잃은 영토를 되찾도록 하소서.”
효공은 그의 말을 받아들여 공손앙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위나라를 공격케 하였다. 이에 위나라는 공자 앙을 장군으로 하여 반격해 왔다. 양쪽 군사가 서로 대치했을 때 공손앙은 공자 앙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제가 옛날 위나라에 있을 때 당신과 친히 교제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입장은 서로 다리기 때문에 공격하게 된 것입니다. 옛일을 생각하면 쓰라린 생각이 듭니다. 가능하다면 직접 뵙고 동맹을 맺어 서로가 기분 좋게 군사를 거두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귀

키워드

상앙,   ,   개혁가
  • 가격8,4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2.10.25
  • 저작시기2011.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328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