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집단탐구 지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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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도덕 집단탐구 지도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成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등의 문헌에 따르면 조선 전기부터 우산도(于山島) 또는 삼봉도(三峯島)로 불리면서 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어 있었다. 특히, 17세기에 한·일 간에 울릉도 영유권문제가 야기되었을 때는 민간외교가 안용복(安龍福)의 외교활동으로 1696년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인정하게 하였다.
《정조실록(正祖實錄)》의 기록을 보면 이 섬 주변에 가제(강치)가 서식하는 데서 1794년경부터 가지도(可支島)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그후 조선 조정이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펼치면서 울릉도 및 독도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1881년부터 조선 조정은 종래의 울릉도 공도정책(空島政策)을 지양하고 개척령(開拓令)을 발포하여 강원·경상·전라·충청 도민을 이주시켜 다시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따라서 독도도 울릉도 어민들의 여름철 어업기지로 이용되었다. 이 때부터 독도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 명칭은 1906년 울릉군 군수 심흥택(沈興澤)이 그 보고서 중에 기록함으로써 최초로 문헌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해주고 있고, 또 포츠담선언에 입각한 연합군의 지령(指令)도 독도를 일본의 속도(屬島)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한편,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초기 어민들이 울릉도와 독도 근해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종래 그들이 다케시마섬[竹島]이라 부르던 울릉도를 마쓰시마섬[松島]으로, 마쓰시마섬이라 부르던 독도를 다케시마섬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일부 일본인들은 1894년까지도 여전히 울릉도를 다케시마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1904년 8월 한·일협약을 체결하고 이른바 보호정치를 실시하게 되자,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島根縣] 고시(告示) 40호를 발하여 독도를 그들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그후 1910년에 일제가 강압으로 한국의 국권을 피탈한 뒤부터 독도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세계지도상에는 일본명 다케시마(Takeshima), 프랑스명 리앙쿠르암초, 영국명 호네스트암초(Hornest Rocks)로 기재되어 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05년 3월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는 조례를 가결시켰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반인에게도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는 등 실질적 지배를 강화하고, 대일(對日) 신 독트린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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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11.05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74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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