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기 선교의 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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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세기 선교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역사적 상황
고대세계에서 일어났던 가장 거대한 정치적 혁명은 무하마드가 632년에 죽은 후 두세대에 걸쳐 발생했다. 신앙심 깊은 무슬림이 이끄는 아랍군대는 동로마제국을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몰라내며 곧이어 사산조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했다. 카르타고는 698년에 함락되었고 서고트왕국은 711년에 붕괴되었다. 717년에야 비로서 이슬람 함대가 콘스탄티노플 외곡에서 저지되었고 733년 칼마르텔이 푸아티에 근처에서 벌어진 대전투에서 투르의 성 마르티누스의 성지를 약탈하러가던 무슬림 공격부대를 응징했다. 이 두곳에서 저지당한 일을 제외한다면 무슬림의 위업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피터브라운)

A. 게르만족 왕국
http://www.fordham.edu/halsall/sbook1f.html#Romanized%20Goths
1. 프랑크의 메로빙거가문의 주도권-클로비스왕(465-511)의 프랑크왕국 통일-파리에 수도(현프랑스, 이탈리아, 독일)/클로비스사후 혼란/
http://www.fordham.edu/halsall/maps/526eur.jpg
http://www.ucalgary.ca/applied_history/tutor/firsteuro/f.rank.html

2. 카롤링거왕조: 732년 카알 마르텔의 대이슬람 승리후 실권장악/서로마교황의 협력으로 아들 피핀의 카롤링거왕조 등장, 교황에게 교황령의 땅을 주었다-아들 샤를마뉴대제는 모든 게르만왕국을 정벌하여 800년 12월 24일 교황 레오 3세는 로마황제로 등극/서유럽에 법과 질서, 문명, 기독교가 뿌리내리게 했다.
http://www.fordham.edu/halsall/maps/800eur.jpg
http://www.fordham.edu/halsall/sbook1h.html

3. 신성로마제국-사늘마뉴대제 사후 후계자 분쟁으로 3부분으로 분할(서프랑크, 중프랑크, 동프랑크), 에스파니아에 이슬람침공, 바이킹의 일파인 노르만의 침공/ 동프랑크의 오토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 962년-300여개의 갈라져 싸우다가 오스트리아왕이 황제관을 차지 1806년 나폴레옹에게 점령될때까지 900년 가까이 명목상 황제로 있었다.
참고자료:http://www.fordham.edu/halsall/maps/900eur.jpg

4. 스페인의 서고트 왕국: 589년 아리우스파에서 정통 카톨릭으로 개종함으로서 가톨리 주교단과 굳건한 동맹을 맺게 되었다. 왕국의 수도인 톨레도는 새로운 예루살렘이었고 왕은 공의회를 주관하였다. 마이크로 기독교 세계를 형성하였다. 711년에 아랍군대와 베르베르족 동맹군에 의해 무너졌다.

B. 비잔틴제국(동로마) 콘스탄티노플에 수도, 황제 교황, 성상논쟁/그리스정교
비잔틴 http://www.fordham.edu/halsall/sbook1c.html
1. 서로마 멸망후 500년간 생존을 위한 투쟁-게르만족을 대항하여
유스티니아누스 (483-565)황제는 동고트족으로부터 이탈리아 탈환, 반달족으로부터 북아프리카 탈환하여 동로마제국의 영토 확장. 아테네의 철학 아카데미를 폐쇠하고 이독교적 도덕율을 반영하는 시민법을 제정, 콘스탄티노플에 소피아 성당을 건립하고(532-537), 로마의 수도승 Dionysius Exiquus (d. c. 550)는 서력기원을 정하는 새로운 날자를 정한다(Anno Domini). 그리고 선교사를 중국에 보내어 누에를 밀수한다(551). 카르타고는 698년까지, 라벤나는 751년까지 동로마제국의 도시로 남아있었다. 800년까지 동로마황제는 교황의 주인이었다. 542년 선페스트가 창궐하여 제국을 쇠약하게 하였고 8세기 후반에 제국이 정상을 찾았다.

2. 이후 500년간 페르시아인들을 대항하여 생존 투쟁
헤라클리우스 황제-627년 니네베 전투에서 페르시아인 전멸시키고 동로마를 지켰 다. 그러나 북쪽의 게르만족과 남쪽의 모슬렘에게 영토를 빼앗겨 갔다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됨.

C. 아바르 족의 침입: 552년 돌궐에 패배한 유연은 서쪽으로 가서 유럽에서 정착한다.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안은 이들에게 상납하고 발칸반도를 위협하는 훈족과 슬라브족을 점령하게 한다. 6세기 말에 전성기를 맞아 볼가강과 다뉴브강 사이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에 두었다. 이후 내분으로 약화되다가 796년 프랑크와 불가리아의 연합 공격을 멸망됨).
600년의 유럽 http://www.ucalgary.ca/applied_history/tutor/firsteuro/imgs/map24.html

D. 사산조 페르시아의 몰락
488-531 Kavadh I: 기독교 관용
◦ 531-579: Anshurwan the Just (Chosroes I) 기독교 박해(540-545) 이후 관용, 페르시아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페르시아의 전성기, 동로마와 전쟁 승리후 안디옥 쟁취(기독교인 포로들을 위해 새도시 군데샤푸르를 건립하였고 이곳은 페르시아내의 강력한 기독교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동쪽의 헤프탈 족을 중앙아시아로 쫓음, 아라비아 주변의 페르시아만에 함대보내어 예멘에 있던 이디오피아인들을 아프리카로 쫓음, 사산조에서 가장 공정하고 정비되고 효과적인 통치행함,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부인이 기독교인이었다. 왕의 주치의와 동역자들, 사무관들, 궁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다. 이들은 박학하였고 근면하였으며 국제적인 교류를 가졌다.
▫ 533: 로마와 평화조약
▫ 551: 두 명의 수도사가 비단 누에고치를 빈 대나무속에 넣어 중국에서 밀수하여 서방으로 가져온다.
▫ 540-562: 로마와 전쟁
◦ 579-590: Hormizd IV 기독교 관용, 조로아스터교와 기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명령함;“나의 왕관은 두개의 종개가 아닌 네 개의 종교, 즉 마기교와 조로아스터교뿐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 등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통치 후기는 동부에서는 투르크족의 침입과 서부에서 비잔틴 로마에 의해 심각한 패배로 시민전쟁일어나고 측근의 쿠데타로 폐위되어 잔인하게 처형됨
◦ 590-628: Khusru Parviz(Chosroes II) 608년전 까지는 기독교 관용, 페르시아 최후의 위대한 왕,
▫ 590-602: 시민전쟁에서 왕권을 잃어버려 콘스탄티노플로 피난가서 비잔틴 황제 마리우스의 도움과 기독교인의 도움을 받고 그 도움으로 왕권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동로마황제의 도움으로 신변을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마리우스가 죽을 때까지 로마와 전쟁을 하지 않고 기독교의 개종설까지 나올 정도로 기독교인에 대한 우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들과 3천명의 첩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기독교 여왕인 아람인 시린(Sirin)이었다.
▫ 603-610: 비잔틴 로마와 전쟁-602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황제 마리우스가 처형되자 코스로에스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고 콘스탄 티노플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페르시아는 에뎃사와 안디옥을 점령하였다.
▫ 610: 아랍이 페르시아군을 Dhu-Qar에서 패배시킴
▫ 610-620: 로마와 전쟁 -페르시아는 비록 비잔틴이 쿠데타의 주동을 몰아내고 새황제 헤라클리우스가 등극하고 평화를 제의했으나 계속전쟁을 행했다. 615년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교회와 기독교인 수천명을 살육했고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하여 콘스타티노플을 포위했다. 페르시아의 영토는 흑해에서 아프리카 사막까지, 로데스 섬요새에서 인디아까지의 광활한 제국 통치.
▫ 622-627: 제국을 재정비한 로마황제 Heraclius 가 4만명의 터키족인 카자르 군대와 연합하여 Assyria 와 Mesopotamia를 침공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유린하였다. 이 기간에 페르시아내의 기독교는 박해를 받았고 교회는 재산을 압수당했다. 코스로에스 왕은 왕위를 단성론자인 왕후 시린의 아들로 하려다 네스토리안 야당의 주동자 샴타의 쿠데타로 살해당하고 황태자 시로스는 카바드 II로 페르시아 왕으로 등극한다. 이 전쟁으로 사산조는 급격히 쇠약해져서 아랍의 침략에 쉽게 굴복한다. 그리고 카자르족은 transcaucacus 지역에 자신들이 영토를 확보한다.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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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2.03.13
  • 저작시기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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