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1930년][노동운동][농촌위기]1930년대의 노동운동, 1930년대의 정당통일운동, 1930년대의 농촌위기, 1930년대의 농민문학, 1930년대의 모더니즘, 1930년대의 아나키즘, 1930년대의 가내수공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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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30년대][1930년][노동운동][농촌위기]1930년대의 노동운동, 1930년대의 정당통일운동, 1930년대의 농촌위기, 1930년대의 농민문학, 1930년대의 모더니즘, 1930년대의 아나키즘, 1930년대의 가내수공업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1930년대의 노동운동
1. 세계대공황에서 탈출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력은 국가독점자본주의체제로의 세계적인 이행과 세계경제의 블록화로 귀결
2.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에 의해 조선은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설정됨
1)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식민지 공업화가 급속히 진전됨
2) 블록내의 최대한 자급화 정책에 따라 쌀 면화 고치 우피의 수탈이 극대화, 관제 증산정책과 수탈적 유통정책(공출제도, 공판제도)
3) 광공업 분야에서 일제에 의한 조선인 중소자본의 수탈
3. 전시동원체제하의 파쇼지배정책
1) 병참기지화를 위한 파쇼적 폭압통치의 강화
2) 농촌진흥운동
4.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 소비에트 건설을 혁명과제로 설정, 28년 코민테른 지시로 해체된 공산당을 상향식으로 재건하는 운동에 집중함

Ⅱ. 1930년대의 정당통일운동

Ⅲ. 1930년대의 농촌위기

Ⅳ. 1930년대의 농민문학

Ⅴ. 1930년대의 모더니즘

Ⅵ. 1930년대의 아나키즘

Ⅶ. 1930년대의 가내수공업

참고문헌

본문내용

1934년의 하락이 관찰되며, 이는 1930년대 전반기의 다른 연도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34년의 경우는 공산액의 성장률도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따라서 비중의 급격한 하락은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내공업의 성장률은 1936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러나 가내공업과 공산액의 성장률이 서로 다른 변화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전시통제가 시작된 1937년부터이다. 즉 1937년의 비중저하는 가내공업의 성장률 둔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1935년의 비중하락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산액 비중과 성장률의 변화를 근거로 할 때, 기존의 연구결과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상이하다.
첫째, 가내공업은 적어도 생산액을 기준으로 할 경우, 1933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해체를 관찰할 수 없다. 공산액에서의 비중과 가내공업의 성장률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경우 가내공업은, 1920년대는 물론이고, 적어도 1935년에 이르기까지는 공산액의 증가에는 못 미치지만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결과 감소의 경향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가내공업의 급격한 해체가 진행되었다고 파악되어지고 있는 1933년과 1934년에는 전체 공산액에서 가내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전후로 상당히 높다.
둘째, 생산액의 비중을 기준으로 하면 가내공업의 상대적 약화는 1935년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증가율을 기준으로 하면 1937년까지는 이후에 공산액 증가율의 변화와 기본적으로 동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가내공업은 적어도 1937년까지는, 상대적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지만 공산액의 성장의 과정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1920년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1930년대 초반의 공산액의 증가에서도 가내공업의 성장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즉 공산액의 증가에 있어서 가내공업이 행한 역할을 기여도를 통해서 살펴보면, 1933년의 경우는 35.7%를 그리고 1934년에는 대폭 감소하여 14.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35년에 들어서는 19.7%로 다소 상승하고 있으며, 1936년의 21.6%를 정점으로 급속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1937년에는 11.5%, 1938년에는 負의 기여를 하고 있다. 따라서 1930년대의 전반기의 공장공업을 중심으로 급속한 공업성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액 증가의 상당 부분은 가내공업에 의해 담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930년대 초 구체적으로는 1933년을 기점으로 가내공업의 해체가 관찰된다는 기존의 견해는 가내공업의 비중과 성장률의 변화추이, 그리고 공산액의 증가에 있어서 가내공업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하면 다소 그 시기를 늦추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가내공업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1920년대 이후의 공업의 성장은 가내공업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것이었고, 1930년대에 들어서도 감소의 경향을 가진 것이었지만 전시통제가 실시되기 이전에는 공업성장의 20%정도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가내공업의 상대적 저성장과 비중저하가 가내공업의 전면적인 구축, 혹은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전시통제가 시작된 1937년 이후 감소한 가내공업이 1939년 이후 회복으로 반전되고, 1940년의 경우는 17.7%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공산액의 증가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시통제에 의한 원료노동자본의 통제가 실시, 그리고 물자의 통제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급부문을 중심으로 한 가내공업의 생산이 증대되고 있었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분석의 결과를 요하는 것이지만, 우선 여기서는 가내공업이 일방적으로 구축되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참고문헌
강경낙(1998), 1930년대 농촌위기와 남경국민정부의 농업정책,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고희숙(1990), 1930년대 전반기 한국노동운동에 대한 연구, 성균관대학교
김명섭(2001), 1930년대 재일 한인 아나키즘 운동의 제 양상, 한국근현대사학회
김예리(2012),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에 나타난 시각 체계의 다원성, 상허학회
박배식(1988), 1930년대 농민문학 연구 : 프로계열의 농민문학을 중심으로, 세종대학교세종어문학회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외 1명(2009), 1930년대 중국 관내지역 정당통일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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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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