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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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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산수와 산수문학
1. 연대 분류
2. 형식 분류

Ⅲ. 산수와 산수풍광

Ⅳ. 산수와 산수화

Ⅴ. 산수와 진경산수

참고문헌

본문내용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산수 속에 뛰어들어 자연 속에 묻혀서 그려나갔으니, 감상자도 또한 화면 속에 묻혀 천리 길을 보아 가는 視方式을 갖게 마련이며, 반드시 한 각도에서 감상해야 된다는 하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도자기 그림에서 일정한 연속무늬에 3백 60도 돌아가면서 산수화를 그린 작품이 많은 것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연폭산수 병풍이 외국인에게 수장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거의가 다 넓은 거실의 바닥공간을 비워두고도 병풍을 일직선으로 편 채 통째로 벽에 달아 올려 額面畵처럼 일정한 각도에서 감상하고자 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취향이거니 생각해 버릴 수도 있겠으나,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그림 속의 餘白을 진공상태의 無(空間)로 간주하려는 그네들과 한국인의 본질적인 우주관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고 믿어진다.
동일 문화권 내의 동양이라 할지라도 중국의 산수화는 그 지리적 풍토가 말해 주듯이 웅대장엄한 大觀山水畵風이 주종을 이루는데 반해서, 일본의 그것은 습윤한 기후적 조건에 걸맞음직한 南宋 馬遠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馬의 一角法 山水畵風이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면서 점차 토착화하여 도서민족이 지니고 있는 미관말초적 섬약성이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비해 한국의 산수화는 장엄하지도, 그렇다고 철저하게 세련되지도 못한, 어떻게 보면 무성격적 미완성 단계에 엉거주춤 끼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관찰해 보면, 한국의 산수화에는 \'恨\'의 고유 사상을 바탕으로 원시적 애니미즘이 보이며 한국적 낙원관은 풍류기질을 촉매하면서 隱逸思想을 표현케 했으며, 어느 면으로는 안일무사주의와 형식주의로 빠지게 까지 된 것 같다. 또한 韓民族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讖緯堪輿思想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리의 독특한 對物觀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부정적 측면에서의 사대주의 慕華思想이나 식민사관의 慕和根性은 韓民族의 의타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와 같이 엉글고 성긴 듯한 한국의 산수화에서 우리의 야무지지 못한 질박성을 느낄 수 있으며, 부뚜막에 맥질해간 듯한 쩐 필세에서 오랜 풍상 속에서도 민족혼을 지켜온 은근과 끈기를 발견할 수 있다. 색채가 모자라서 그리다 만 듯한 設色에서 한국인의 담백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Ⅴ. 산수와 진경산수
우리나라에는 바위산이 많고, 돌절벽, 바위묏부리가 흔하다. 이러한 돌산과 돌묏뿌리에 대한 돌뭉치의 인상과 돌벽의 혈관 같은 암맥(岩脈)을 겸재는 묵법과 골선(骨線)으로 표현하였는데, 골선이라는 필선에서 조차 묵법의 혼용이 잦아서 결국 겸재의 돌산과 돌벽은 묵법중심의 괴량감(塊量感)을 이룩하게 된다. 한국에 흔한 연봉의 토산, 송림은 주로 피마준과 미점, 그리고 원경의 송림으로 처리하는 것이 보통으로 한국 맛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나 괴량감이 담뿍 담긴 묵법의 돌산, 돌벽과 겸용되지 않으면 겸재다운 회화미(繪畵美)에 찬 진경효과를 내지 못하기도 한다. 즉 겸재는 묵법을 활용하여 한국의 돌산을 회화미의 괴량감으로 전환시켜는 데, 이러한 묵법의 괴량감은 화면의 해당부분을 긴장시키고 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괴량감을 방만하게 처리할 수 없고 그 결과 화면에 있어서도 새구상을 아니할 수 없다.
이리하여 겸재는 바위를 표현하기 위해 대, 소부벽준을 즐겨 썼는데, 서울 근교를 위시한 바위산의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들 수 있고, 그 외 《연강임술첩》내의 작품들과 몇 점의 「청풍계도)」를 들 수 있다.
연기가 있는 겸재의 작품 중 부벽준과 관계하여 가장 앞선 것은 1739년 작의 간송미술관 소장의 「청풍계도(淸風溪圖)」와 1747년 작의 「삼부연도(三釜淵圖)」 1751년 작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들 수 있다.
간송미술관 소장의 「청풍계도」는 겸재가 살던 동네를 주제로 노숙하고 무르익은 겸재의 필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경에는 방향을 달리하며 길게 부벽준이 구사되어 있어 전체적인 구도에도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소위 북종화에서 사용하는 부벽준은 지나치게 강하고 끊겨나가는 것이 특징이지만 겸재가 한 붓으로 북 내리긋는 필치와는 전혀 다른 회화효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겸재와 같은 17세기 화가로서 김명국(金明國·1600~1622이후)은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심산행려도(深山行旅圖)」 등에서 활달한 부벽준을 구사하였고, 겸재가 진경산수를 제작하고 있었던 때에도 진재해(秦再奚·1691~1769)는 「월하취적도(月下吹笛圖)」등에서 절파화풍의 부벽준을 구사하였으며, 겸재의 지기였던 조영우도 「강상조어도(江上釣漁圖)」에서 부벽준의 사용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부벽준법은 실경에 임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그림을 배우는 관념적인 표현일 경우가 많았으나 「겸재의 부벽준법은 겸재가 관조한 실경을 자신 있게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겸재의 부벽준은 전대에 비해 찰(擦)의 의미가 많다. 이러한 점은 「삼부연도」나 「인왕재색도」에서 두드러진다.
특별히 「인왕재색도」에서 겸재는 묵직하고 깎여진 돌바위산의 가파른 표면을 강하면서도 넓은 대부벽준으로 짙게 처리하여 특징 있는 암벽의 질감과 양감을 매우 다이나믹하게 표현하였다. 즉 전통적인 부벽준법이 아니라 바위 절벽을 묵찰(擦)로 음영을 붙이며, 쓸어내리는 방법으로 바위의 독특하나 질감을 표현하였다.
이는 겸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북악산(北岳山)밑으로 그가 어려서부터 여러 번 보고 일찍부터 터득한 암벽표현법에서 연유되어진 기법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김창원, 산수화와 산수시조에서 자아와 세계의 갈등구도와 그 형상화 방식, 한국시조학회, 2010
김대원, 고려시대 산수화의 동향과 유가적 심미관,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1
손오규, 산수문학에서의 산수와 산수미, 경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98
손오규, 산수문학에서의 인물기흥, 반교어문학회, 2000
최동국, 시조에 나타난 산수자연의 원망과 그 미적 성격, 한국시조학회, 2009
한경혜, 조선후기 진경산수의 재현의 문제 : 겸재 진경산수의 수묵적 특성 분석, 홍익대학교,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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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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