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문화사, 지방사, 선사시대, 강진군, 여수시, 해남군]역사유적과 문화사, 역사유적과 지방사, 역사유적과 선사시대, 역사유적과 강진군, 역사유적과 여수시, 역사유적과 해남군 분석(문화사, 지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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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유적, 문화사, 지방사, 선사시대, 강진군, 여수시, 해남군]역사유적과 문화사, 역사유적과 지방사, 역사유적과 선사시대, 역사유적과 강진군, 역사유적과 여수시, 역사유적과 해남군 분석(문화사, 지방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역사유적과 문화사

Ⅱ. 역사유적과 지방사

Ⅲ. 역사유적과 선사시대
1. 유물출토지역의 지층분류
1) 동굴 유적
2) 단구퇴적
3) 사면붕적층
4) 충적층과 문화유적
5) 신석기 이후 유적지층
2. 유적지층의 과학분석
1) 토양쐐기 구조
2) 적색토양
3) 토양분석연구

Ⅳ. 역사유적과 강진군
1. 무위사(無爲寺)
1) 이명
2) 위치
3) 소속
4) 역사
5) 유물·유적
6) 설화
2. 백련사(白蓮寺)
1) 이명
2) 위치
3) 소속
4) 역사
5) 유물·유적

Ⅴ. 역사유적과 여수시
1. 선사유적
2. 관방유적
3. 유교유적
4. 불교유적
5. 기타 유적

Ⅵ. 역사유적과 해남군
1. 대둔사(大屯寺)
1) 이명
2) 위치
3) 소속
4) 역사
5) 유물·유적
2. 서산대사와 대둔사

참고문헌

본문내용

寺格)을 말해 주는 대표적 건물로서 그 안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공훈을 세웠던 휴정과 그의 제자인 사명 유정(四溟 惟政; 松雲도 호), 뇌묵 처영(雷 處英)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 건물은 1669년 건립되었고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다. 대광명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94호)은 의순이 건립했는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했고, 천장에는 연화문과 운학(雲鶴)을 그렸다. 이 연화문과 운학은 색채뿐 아니라 문양 자체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뛰어난 작품이며, 의순이 직접 단청했다고 전한다. 비전(碑殿)에는 서산대사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를 비롯하여 13대 종사와 13대 강사 등의 부도 및 비가 있다.
대흥사 응진전 삼층석탑 (보물 320호)
통일신라시대에 건축된 화강석제 3층석탑, 높이 430cm
응진전 앞에 있으며, 탑 주위에 흙담이 돌려져 있다. 지대석 위에 하대와 중석을 붙여서 4장의 긴 돌로 아래층 기단을 구성했는데 중석의 각 면에는 4개의 우주(隅柱)와 2개의 탱주가 모각(模刻)되었다.
탑신부는 옥시뇨석과 옥개석 각각 1석씩으로 되어 잇는데 옥신석에는 우주형이 있다.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으로 밑에는 각층 4단의 받침이 있고, 위에는 각형 2단의 옥신굄이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路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등이 남아 있다.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비록 규모는 작으나 결구가 정연하고 조각수법이 명쾌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1967년 보수 때 위층 기단 안 자연판석 위에서 높이 12cm, 무릎너비 7.5cm의 동조여래좌상(銅造如來坐像)이 안치된 것을 발견했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연곡사 3층석탑과 같다.
2. 서산대사와 대둔사
한반도의 우두머리 산인 백두산이 마지막으로 흘러가 멈춘 곳이 저 멀리 해남땅이고, 그 곳 두륜산에 대홍사가 있다. 백두산은 중국 곤륜산맥의 줄기이고 다시 흘러내린 백두산의 기운이 서린 곳이니 산의 이름도 곤륜산의 륜자와 백두산의 머리글자를 따 두륜산(頭崙山)이라 하였다.
연꽃처럼 피어올라 가람을 감싸 안은 산세는 첫눈에도 신령스러움이 가득하고 `너부내\'라 불리는 긴 골짜기는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으로 이름이 났다.
옛 기록에 의하면 대흥사는 신라 법흥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그 당시 이곳은 백제의 영토였고, 또 입증할 만한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믿기 어려운 구전으로 여겨진다. 다만 웅진전 앞의 3층 석탑과 북암의 마애불이 통일신라말기와 고려 초의 유물이므로 사찰의 역사는 이때부터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명산에 명찰이 깃든다는 말처럼 대흥사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는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수많은 구도자들의 귀의처로 빼어난 승려들을 배출하였던 것이 첫 번째로 앞세울 만한 자랑거리이다.
부처님의 법이 쇠진해 가고 삼엄했던 종통 규율마저 무너져 가던 조선 후기, 이 골짜기에서는 무려 13대를 이어가는 대종사(大宗師)와 대강사(大講師)가 배출되어 쓰러져 가던 조선 불교를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그 웅장했던 역사가 대흥사 입구 부도밭에 가면 80여 개의 돌덩이들로 우뚝우뚝 세워져 있다. 이 땅에서 살았던 구도자들의 치열했던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돌덩이의 완강함으로 기념되고 있는 곳이다.
대흥사에 이토록 씩씩하게 피어 오른 법화의 불씨를 남겨 준 사람은 청허당 서산대사였다. 그는 잘 알다시피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국시로 하던 조선시대의 정치적 상황에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불교를 중흥시킨 장본인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지리산에 들어가 스스로 돈오법을 얻고 스님이 되었는데 30세 되던 해에는 승과에 장원하여 선교 양종 판사직에 올랐다. 그 후 벼슬길에 오른 자신의 모습이 선승의 본분이 아님을 통감하고 운수 행각에 나섰는데 금강산,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 등을 두루 순례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스님은 또 선조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는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길에 올랐던 선조는 묘향산에 사신을 보내어 서산대사을 모셔오게 하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전국 사찰에 격문을 돌리고 제자들에게 궐기할 것을 전하였다.
처영은 지리산에서 일어나 권율 장군과 연합하였고, 사명은 금강산에서 일어나 1천 여 명의 승군을 이끌고 평양으로 달려왔다. 서산대사도 달려온 문도(門徒) 1천 5백여 명을 이끌고 평양성 전투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승군들의 애국 충절에 감동한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팔도 선교도 총섭이라는 최고의 승직을 내렸으나 그 직책을 제자인 사명에게 물려주고 왜병이 물러나자 묘향산에 돌아와 수도승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후 스님은 남북 강산을 두루 만행하시다 85세 때 묘향산 원적 앞에서 입적하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유언으로 자신의 의발을 대흥사에 전하라고 하였다.
“두륜산은 기화 요초가 아름답고 먹을 것이 항상 끊이지 않는다. 내가 보건대 모든 것이 잘될 만한 곳이다. 바다와 산이 둘러싸 지키고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니 이곳은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요 만세불패지지(萬歲不敗之地)의 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님께선 제자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마지막 열반의 노래를 자신의 영정에 남겨놓았는데 그 또한 스님다운 일갈이었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제자들은 스승의 뜻에 따라 금란가사와 여러 유품들을 대흥사에 봉안하고 사리탑을 세워 유골을 받들었다. 그 후 대흥사는 서산대사의 예언처럼 전란의 화가 미치지 않는 땅이 되었고 13대 강사와 13대 총사를 배출하여 명실 공히 선교의 총본산으로 조선후기 불교의 중흥기지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 김남석, 생생 역사 유적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 목포대학교박물관, 강진군 군동지구 배수개선사업 예정구간 내 문화유적지표조사보고, 2005
◇ 박명희, 역사유적의 관광매력성 개발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관광·레저학회, 1994
◇ 이혜정, 역사유적을 통해 본 중학교 지방사 교육의 실제, 순천대학교, 2010
◇ 우리누리, 꼭 가보고 싶은 역사 유적지, 중앙M&B, 2001
◇ 편집부, 역사유적의 복원과 정비. 도서출판 에이엔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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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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