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원시불교, 초기불교(원시불교) 공사상, 중도사상, 연기론, 무아설]초기불교(원시불교)의 공사상,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중도사상,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연기론, 초기불교(원시불교)의 무아설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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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기불교, 원시불교, 초기불교(원시불교) 공사상, 중도사상, 연기론, 무아설]초기불교(원시불교)의 공사상,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중도사상,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연기론, 초기불교(원시불교)의 무아설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초기불교(원시불교)의 공사상
1. 공옥, 공촌, 공한수하 등과 같이 공간적인 의미에서 비어 있음을 지칭하는 경우
2. 공삼매와 공처정, 공주과 같이 선정의 단계로서 사용된 경우
3. [제일의공경]에서와 같이 궁극적인 진리(승의체, 제일의체)를 가리키는 경우
4.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보는 공관의 의미로서 사용되는 경우

Ⅲ.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중도사상

Ⅳ. 초기불교(원시불교)의 연기론

Ⅴ. 초기불교(원시불교)의 무아설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때 제법무아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中村元은 숫타니피아타 757게를 예로 들어 원시불교의 空觀이 無常說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虛妄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虛妄한 것이므로(757).
위 시구에서 \"모든 것이 虛妄(無常)하다는 것은 모든 것은 항구적인 중심으로 되는 항구적 고정적인 실체를 갖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즉 無常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변천, 소멸하는 것으로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불변한 본질 내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물의 존재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不變, 不滅의 항상적인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無常은 空의 본질과 상응하는 것이다. 공이라는 것은 사실 사물이 텅 비어 있다든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不變不滅의 실체 내지 本質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空과 無常은 그 본래적 의미에 있어 서로 상통하는 것으로, 실체를 부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상응부 22122-123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戒를 구족한 비구들은 五取蘊을 無常으로서, 苦로서, 病으로서, 癰으로서, 刺箭으로서, 苦痛으로서, 疾病으로서, 敵으로서, 破滅로서, 空으로서, 無我로서 如實히 생각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五蘊은 부정되어야 할 존재로서, 가장 비판적인 용어로서 서술되고 있다. 즉 오온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비판적이고 공격적인 11가지의 용어로서 교시한 것이다. 이에 상당하는 한역 {雜阿含經}에는 \"마땅히 五受陰을 病이라고, 이라고, 刺라고, 殺이라고, 그리고 無常, 苦, 無常, 非我라고 힘써 생각하라\"고 되어 있다. 그 배열된 용어의 수와 순서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점은 있지만 南北兩傳 어느 것이나 \'空\'을 無常, 苦, 無我 등과 병행하여 五蘊이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는, 즉 五蘊을 부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법구경 277-9게(=테라가타 676-8게)에서는 일체의 行이 공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일체의 行을 空이다\'라고 지혜를 갖고서 볼때, 괴로움을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이다. 법구경 277-9게(=테라가타 676-8게).
즉 \'諸行無常\'은 \'諸行空\'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표현으로 \'일체의 行\'이 無常, 苦, 無我라는 것을 병렬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불교에서 공의 의미는 무아 또는 무상과 동의어로서 사용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는 이들 세 용어가 일 대 일로 대응될 수는 없겠지만, 그 용법의 기본 취의에 있어서는 상호 공통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니까야 경전과 아함 경전이 공을 무아, 무상과 같은 취지로 사용할지라도, 그 배열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 즉 \"\'무상, 고, 공, 무아\'가 하나의 교설로서 언급되는 예는 잡아함에서 13군데인데 반해(아함 전체로는 14군데), 팔리 경전 니까야에선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아함에서는 \'無常, 苦, 空, 無我\'와 같이 되어 있는데 반해, 팔리 경전에서는 공이 제외된 \'無常, 苦, 無我\'로 되어 있다. 이는 팔리 경전보다 아함 경전에서 공이 보다 중시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앞에서 무아의 근거가 고이며, 고의 근거가 무상임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무상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경전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다만 일체 존재는 \"\'어떠한 존재나 모든 무상한 것을 원인으로 하고 근거로 하여 생하고 있다. 무상한 것을 원인과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상주불변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의 표현이 있을 뿐이다.\" 이는 무상의 근거를 인과관계에서 찾아내려는 것으로 어떠한 것도 그 자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일체 존재의 기초에서 결정성, 所與性을 보려는 것도 불확정성, 우연성을 보려는 것도 아니며, 인과성과 논리성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緣起라는 술어로 말한다.\" 그렇다면 결국 무아의 근거가 다름 아닌 연기임을 알 수 있다. 즉 제행무상에 의해 세상은 무상하여 모든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 생멸함이 교시되며, 제법무아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다른 것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 시간적으로 전부 상호 관련을 맺고 있다는 소위 연기설이 설해진다. 말하자면 일체 존재가 항상적인 자립적 실체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기의 상호 의존성은 \"相依相待라는 의미에서 무아와 같은 실체 관념의 부정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초기불교에서 공과 무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항구불변의 실체적 존재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이며, 둘째, 집착을 끊는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므로 공과 무아는 \"우리들의 주관적인 고집과 집착이 객관적인 원인에 의존하고 객관적인 원인을 떠나서 독립자존하지 않는다\"는 소위 연기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붓다는 연기 → 무아의 교설에 의해 우리들의 모든 자아적인 고집의 관념을 공한 것으로 부정하였다.\" 즉 \"일체는 독립성이 없는 상대적인 가상이며 공인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뒤에 나가르쥬나에 의해 체계적으로 종합되어, \"연기인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이라고 한다. 공성은 의존된 假名이며 실로 中道이다(24, 18)\"라는 공사상으로 완성된다.
참고문헌
고배정(2009), 불교 중도사상의 도덕교육적 의의 : 초기불교와 용수를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김미숙(1994), 초기불교 무아설의 교의 연구, 동국대학교
김재영(2010), 초기불교의 사회적 실천에 관한 연구, 동방대학원대학교
윤종갑(1998), 실재(유)와 공에 대하여 : 초기불교의 공사상에서 반약경의 아공법공으로, 새한철학회
전재성(1996), 초기불교의 연기성(paticcasamuppada)연구, 동국대학교
최영효(2010), 불교의 심리치료적 활용에 대한 이론적 접근 :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불교학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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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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