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선법(무시선), 원불교]무시선법(무시선)의 특징적 개념, 무시선법(무시선)의 사상선적 성격, 무시선법(무시선)의 본질구조, 무시선법(무시선)의 원리, 무시선법(무시선)의 실천강령 분석(무시선법, 무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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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무시선법(무시선), 원불교]무시선법(무시선)의 특징적 개념, 무시선법(무시선)의 사상선적 성격, 무시선법(무시선)의 본질구조, 무시선법(무시선)의 원리, 무시선법(무시선)의 실천강령 분석(무시선법, 무시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무시선법(무시선)의 특징적 개념
1. 삼학병진하는 선
2. 마음의 자유를 얻는 선
3. 대중화 · 생활화의 선

Ⅲ. 무시선법(무시선)의 사상선적 성격
1. 진공의 체와 묘유의 용을 겸행하는 선
2. 동시의 선이 강조되는 무시선

Ⅳ. 무시선법(무시선)의 본질구조

Ⅴ. 무시선법(무시선)의 원리

Ⅵ. 무시선법(무시선)의 실천강령

Ⅶ.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무시선)의 실천강령
무시선의 실천 강령을 한 말로 밝힌 법문은 곧 다음과 같다.
육근이 무사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
먼저 이 말씀의 근원은 우리 인간이 육근의 동과 정 두 사이에 살아가고 있음을 찾아 동과 정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게 함이니, 이것은 곧 우리의 생활속에 한 가지 정진하고 사는 이른바 간단(間斷)없는 마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근원적으로 간단 없는 한 생각을 동정간에 하나로 연결하도록 하는 길을 밝혀 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동과 정, 또는 유사시나 무사시, 에 한결같이 살아 갈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쉬는 시간을 없앤다는 생각이 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무시선은 대단히 부담되는 말이 되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쉬는 시간에도 항상 공부심으로 쉬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공부심을 놓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유념과 무념을 아울러 조절해나가는 공부가 중요한 과제는 아닐까 생각 된다.
물론 휴식시간에는 당연히 무념(無念)으로 쉬어야 한다. 그러나 무념 그 자체도 또한 공부심으로 무념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방심을 무념으로 밝힌 것도 있다 여기에서의 무념은 방심이 아니다.) 공부심 없이 쉬게 되면 바로 도심(道心)이 상(傷)하게 되기 때문에 공부가 묵어지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유념으로 살아갈 때에는 당연히 챙기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무념일 때에는 한 생각을 놓아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생각 자체가 없이 일념으로 쉬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산종사(鼎山宗師)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염염무념(念念無念)은 시정시공부(是靜時工夫)요
사사명사(事事明事)는 시동시공부(是動時工夫)로다.
유념무념(有念無念)이 각수의(各隨意)하니
대도탕탕(大道蕩蕩)에 무소애(無所碍)니라
생각 생각이 생각 없음은 정할 때 공부요, 일일이 일에 밝음은 동할 때 공부라, 유념 무념이 뜻대로 되면 대도 탕탕하여 걸림 없으리라.
이상에서 밝힌 것이 곧 무시선을 실천하기 위한 또 하나의 법문임에 틀림없다. 이 강령을 찾아 근원적인 길을 떠나지 않고 동정간에 국한없이 수행해 나가도록 밝힌 것이다.
정할 때 한 생각 온전한 마음이 동할 때에는 정의로 바꿔지는 공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곧 육근의 동정과 정신의 동정이 서로 일치하게 사는 점, 그리고 무념이 곧 일념이요 일념은 곧 온전한 마음이며, 온전한 마음은 곧 정의(正義)에 이르도록 하는 길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보면 무시선의 공부는 원불교 수행의 근본인 동시에 수행의 완성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은 자성을 떠나지 않는 심경으로 살아있는 마음을 작용하고 살아 가게 하자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한생각 내고 들이는 데 공부심을 떠나지 않고 행할 것이며, 한 몸 작용하고 작용을 놓는 때 추호도 법을 떠나지 안도록 하는 것이 마치 일하는 때나 일을 놓는 때나, 모두 살았을 때에는 숨쉬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속에 영원히 쉬고 있는 숨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추호도 성가시게 생각 하여서는 안 된다.
Ⅶ. 결론
원불교의 모든 교리해석이나 이해는 일원상의 진리로 시작해서 일원상의 진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교리도에서 보면 일원상의 진리를 근본으로 해서 그 아래 진공묘유의 수행문과 인과보응의 신앙문의 양문이 밝혀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주의 원리이자 근본인 일원상 진리를 근본하므로써 편협한 신앙과 수행을 경계하고 원만한 신앙과 수행이 조화를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또한 신앙과 수행을 명확히 해주므로써 공부인이 헤메지 않도록 하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원불교 신앙은 일원상 진리를 믿는 것이다. 일원상 진리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블생불멸하고 인과보응되는 이치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리를 믿는데는 크게 두 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력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타력신앙인 것이다. 전자는 불생불멸하고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 구유해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 진리의 주체자가 바로 나임을 믿는 것이다. 이는 일원상 진리의 속성인 공적영지 광명, 진공묘유조화, 공원정 등의 내용이 이미 나의 존재에 갊·아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자력신앙을 자성불 신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믿음이 전제되므로해서 수행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후자인 타력신앙은 일원상 진리의 권능과 위력이 나를 제외한 우주만유에 있음을 믿는 것이다. 이 타력신앙은 크게 사은신앙과 처처불상 신앙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 우주만유를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규정하고 이 사은이 바로 진리의 주체자이자 죄와 복, 은과 해의 권능자임을 철저히 신앙하라고 하였던 것이다. 처처불상 신상은 사은신앙을 더욱 구체화한 것이라 보아진다. 우주만유 그 자체가 바로 진리의 당체이므로 그 당처 당처에서 복락을 구하고 은혜와 감사함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문답에 잘 나타나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신앙을 어떻게 해야되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라 하여 일원즉 사은이요 사은즉 삼라만상이라는 구조를 제시하므로서 일원상 신앙을 처처불상신앙으로 연결지우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강선영(2002), 무시선 중의 경험내용에 관한 질적 분석 : 마음일기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김순임(1996), 원불교 선의 특성 : 무시선 연구 중심으로, 한국종교사학회
송천은(1974), 무시선 무처선, 원불교 원광사
원영상(2009), 선사상사에서 본 무시선법의 구조 고찰,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조원향(2000), 무시선경험을 통한 심리적 요인의 변화 : 마음일기를 중심으로, 가톨릭대학교
정지연(2004), 무시선이 여고생의 상위인지와 자아개념에 미치는 효과, 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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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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