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외교정책에 있어 WTO(바르샤바 조약기구)와 코메콘(COMECON)의 의의와 블록화에 끼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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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구소련 외교정책에 있어 WTO(바르샤바 조약기구)와 코메콘(COMECON)의 의의와 블록화에 끼친 영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I. 서 론

II. 본 론
1. 바르샤바 조약기구(WTO)
 1) 기원
 2) 조약 내용
 3)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조직
 4) 전 개
 5) NATO와의 비교
 6) 태생적 한계 및 붕괴의 과정
 7) 소 결
2. 코메콘 (COMECON) 
 1) 코메콘의 형성 배경
 2) 코메콘의 조직
 3) 코메콘의 목적 
 4) 코메콘의 활동내용
 5) 코메콘과 EEC 등 자본주의제국간의 지역경제동맹과의 차이
 6)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코메콘
 7) 소결

III. 결 론

본문내용

스톡 연설에서 대외정책 기조를 단계적 가치에서 전인류적 가치로 전환, ‘무기없는 세계’건설을 위한 정책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1988년 고르바초프는 유고와의 공동성명을 통해 모든 공산당이 독자노선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하겠으며, 자기들이 체제를 어느 누구에도 강요할 뜻이 없다는 ‘신베오그라드 선언’을 하였다. 이러한 선언은 사회주의 국가의 발전의 길이 그 국가의 인민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문제이며, 그 과정에는 지역적, 민족적 특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소련이 과거 주권제한론의 입장에서 동구의 독자적인 개혁을 정치군사적으로 통제했던 방침을 철회했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정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자주적 발전을 인정하는 대신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회주의적 경제협력관계도 철회하겠다는 의지이다. 즉, 페레스트로이카의 대외정책은 소련자신이 세계시장체제의 일원으로 참여하겠으며 과거 사회주의 국가간의 경제협력체계(원조와 의존의 관계)의 와해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소련 내부의 경제난(국민생산 증가율이 60년대 후반 이후로 지속적인 감소추세)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저질의 동구상품을 수입하고, 동구에 천연자원을 공급해 주는 형태의 경제적 불이익을 감수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80년대 중반 이후로 소련은 동구에 제공하는 원유의 공급량을 줄이고 가격을 인상했으며 동구 공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게 됐다.
동구는 이에 더불어 생산성 저하와 경제침체의 국내경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소련식 고도집중 계획경제는 생산성과 분배에 있어서 최하위 수준을 초래했으며 사적소유제의 박탈과 경제의 집단화로 인해 국민생활은 더욱 악화됐다. 더욱이 80년대 이후 소련이 원조능력을 상실하자 동구 국가들은 경제발전이나 생활수준 개선은 자본주의의 기술을 도입하여야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코메콘 회원국들의 대소 의존도를 약화시켜 탈소정책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려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의 경제원조 및 협력제의는 동구제국에게는 탈소정책 추진에 따른 위험 부담을 그만큼 덜어주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동구의 대변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WTO와 코메콘 양 기구의 개혁을 요구하는 회원국들의 주장이 제기되었고, 소련의 입장에서도 동구개혁을 촉진시키기 위해 더 이상 양 기구의 존재가치가 없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989년 개최된 미소몰타정상회담에서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현재의 군사동맹체제에서 정치, 군사기구로 전환시킨 뒤 종국적으로는 정치동맹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고르바초프 연설을 통해 이러한 인식 변화를 알 수 있다. 코메콘 문제에 있어서는 1990년 1월 4일 헝가리와 체코가 이 기구의 해체를 공식 제의하면서 해체문제가 표면에 대두하였다. 뒤이어 1월 9일에 개최된 코메콘 제 45차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종래의 엄격한 중앙계획경제를 시장중심의 무역제도로 전환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지금까지의 물물 교환 방식 대신 점차적으로 경화결제와 세계시장가결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무역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의했다.
1991년에는 이러한 해체조짐이 더욱 구체화됐다. 회원국들간에는 새로운 기구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지속됐지만, 서방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와 흡사한 형태를 가지며 EC와 공동으로 협상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지역적 모임인 동구자유무역지대’로 새로운 기구가 발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결국 코메콘 체제의 붕괴는 지금까지 소련이 동구국가들에 에너지와 원자재를 싼값에 제공하고 대신 이들의 공산품을 수입했던 물물교환방식이 세계시장가결을 기초로 한 달러화 교환체제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련 중심의 경제운용에서 벗어나 유럽공동시장으로서의 편입을 위한 자결적 경제정책 추진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코메콘과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해체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WTO와 COMECON이 서방과의 대결구도에서 졌기 때문에 붕괴된 것이 아니라 두 기구의 자체 내 모순으로 인해 붕괘됐다는 것이다. 즉, 기존에 알고 있던 냉전체제하에서의 대결이라는 대외적 해석보다는 WTO와 COMECON 자체 내부의 모순점이라는 대내적 해석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대서방 안보벨트와 동맹국간 결속 강화라는 두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지만 후자 쪽이 더욱 중시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외형상으로는 상당히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동맹체제를 형성유지함으로써 상당기간 집단 안보체제의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NATO로 대변되는 서방 안보동맹에 대해 우위를 점했고 그를 통해 동서 긴장의 실질적인 원인이자 상징물이 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소련의 일방적 주도, 각 국가들 간의 역사적 상이성, 소련의 강경진압책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처럼 오랫동안 내재됐던 모순점들이 곪아 터져 나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80년대 고르바쵸프의 개혁을 계기로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코메콘 역시 동유럽의 경제통합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으나, 일방적인 경제 원조로 인한 소련의 경제적 부담과 동유럽의 자주적 개혁노선 추구라는 한계점으로 인해 붕괴를 맞았다.
이처럼, WTO와 COMECON은 블록형성을 위해 창설됐으나 역설적이게도 블록붕괴의 원인이자 붕괴의 가장 직접적이고 완성된 결과물이었다.
또, WTO와 COMECON을 중심으로 한 구소련 지역의 블록통합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계기였다. 지금까지 구소련 블록은 소련의 일방적인 주도 아래에서의 획일적인 통합으로만 인식됐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유럽은 자국의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에 있어서는 소련에 순응하지만은 않았다. WTO와 COMECON을 중심으로 한 구소련 블록 통합은 동유럽의 다양화 추구 경향으로 인해 초기부터 많은 갈등이 내재해 있었고, 오랜 세월동안 각각의 국가가 추구하는 주체적인 노선으로 인해 조용할 날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국내적 개혁요구와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을 앞두게 된 소련은 세계적 대세에 따라 정치경제군사적 부담을 주는 동부권을 스스로 포기하기에 이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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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8.25
  • 저작시기2013.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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