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감상문] 경복궁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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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기행 감상문] 경복궁을 다녀와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 때문이다. 집옥재의 현판을 송나라 명필인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중국풍을 따라 세로로 길게 세운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건청궁에 기거하며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외국사신들을 맞이하며 지냈는데, 고종 30년 한 해에만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의 외국 공사들을 다섯 차례 맞이하기도 했던 격동기의 역사가 서린 건물이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는데 중국풍의 건물이었다. 화려함을 가지고 있지만 왠지 슬픈 생각이 들었다. 격동기의 고종이 외국사신을 수없이 맞이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격동기, 다시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대의 발전을 가지고 왔지만 그 때 당시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경복궁을 나서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을 걷는 내내 수많은 나무들이 있었고, 그 나무들에는 이름과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고궁을 걸으며 나무들에 대해서 아는 것도 적지 않은 재미인 것 같았다. 답사를 통해서 경복궁은 조선의 유학자들의 깊은 뜻과 성리학의 이상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한 우리는 고궁에 대해서 이러한 답사를 한다. 하지만 그 답사는 언제나 형식적인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왜 우리에게 고궁을 찾아야하는 과제가 주어지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궁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연계는 없지만 경복궁 옆에 서있는 청와대 역시 미래의 사람들에게 고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월 속에서 남는 것은 사람들이 아닌 그 사람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 장소에서 그 건물에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알 수 있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경복궁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슬픔이 있다. 경복궁이 언제나 화려함과 기쁨으로 기품으로만 가득 찬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씻을 수 없는 아픔이 조선 태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곳이다. 우리는 단지 건물만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건물 안에는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고궁을 단지 남아 있는 옛날 건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곳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자이며 증거이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간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며 현재의 우리를 좀 더 발전시키고, 과거 사람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기쁨을 기억하며 삶의 지혜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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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3.09.02
  • 저작시기2013.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6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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