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 대한 아도르노의 입장 [문화산업비판 -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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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 대한 아도르노의 입장 [문화산업비판 -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는가?
2. 아도르노는 가상현실이 구현된 사이버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을 할 것인가?
3. 대중은 과연 아도르노의 생각처럼 “멍청한가?”, 대중은 과연 기만될 수 밖에 없는 계층으로 존재할 뿐인가?
*『사이버 문화』- 뉴 테크놀로지와 문화 협력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피에르 레비, 김동윤조준형 옮김)
cf. 획일적 전체성 없는 보편, 사이버 문화의 본질 (pp. 157-158)
매분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인터넷에 가입하고, 새로운 컴퓨터들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정보들이 전자 통신망에 쏟아져 들어온다. 사이버 공간이 확장될수록, 그것은 점점 더 ‘보편적’인 것이 되고, 그래서 정보 세계는 점점 더 획일적전체주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된다. 보편적인 성격의 문화의 장인 사이버 공간은 기준도 중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특별한 내용 없이 비어 있어서 오히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중략…) 일반적인 상호 연결 과정의 주요한 사실은 이미 경제정치문화 생활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고, 장차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실제로 사회에서 삶의 조건들을 변형시킨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결정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편성이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팽창하는 통신망들이 형성하는 넷(Net)의 새로운 노드는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정보들의 산출자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의 몫을 위해 전지구적 접속을 부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은 여러 시스템들이 구성하는 또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동일한 이유로, 그것은 또한 카오스의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투명성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사이버 공간은 걷잡을 수 없는 팽창에 의해 의미의 모든 불투명성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움직이고 팽창하는 미로의 모습을 그리고 다시 그린다. 미궁의 화신인 다이달로스가 꿈꿀 수 없었을 법한 그러한 미로이다. 중심의 의미가 부재하는 보편성, 무질서의 시스템, 미로와 같은 투명성, 이를 획일적 전체성 없는 보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이버 문화의 역설적인 본질을 이룬다.
cf. 사이버 문화, 획일적 전체성 없는 보편 (pp. 167-168)
실제로 사이버 공간의 출현으로 나타난 주요한 문화적 사건은, 보편성과 전체성이라는 이 두 사회적 조작자 혹은 추상적 기계 사이의 단절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이버 공간은 문자의 발명 이후로 보편성과 전체성을 결합시켰던 커뮤니케이션의 환경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로 온라인 기억 장치의 상호 연결과 실시간 역동성으로 인해 통신 참여자들이 동일한 맥락이나 생생하고 거대한 공동의 하이퍼텍스트를 공유할 수 있기 되었다는 점에서(그러나 다른 규모나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문자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접근한 메시지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다른 메시지와 해설 그리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설명,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지금 현재 토론 중에 있는 회의에 연결된다. 어떤 불특정한 텍스트는 아마도 이를 둘러싸고 있는 하이퍼텍스트에서 중요치 않은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다른 텍스트에 연결되거나, 상호적이고 대형화인 하이퍼텍스트, 중단 없는 통신의 매개자 혹은 환경으로 작동한다. 고전적인 문자 체제하에서, 독자는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맥락을 재현실화하거나, 의미를 되살리고 파악하는 데만 열중하는 교회나 학교 제도의 작업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기술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기계들이 즉각적으로 통신망에 연결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이상 능동적인 공동체에서 분리된, 즉 ‘맥락에서 벗어난’ 메시지는 거의 없다. 가상적으로, 모든 메시지는 인간 자체를 포함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커뮤니케이션의 바다에 빠져들고, 사이버 공간은 점진적으로 생활의 중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중략…) 작은 유토피아이자, 인터넷 성장의 주된 원동력인 상호 연결은 보편의 새로운 형태로 떠오른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전지구적 상호 연결의 진행 과정은 정말로 보편의 형태를 실현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태적 문자와 반대로 여기서 말하는 보편은 탈맥락화에 따른 의미의 폐쇄성 안에 갇혀 연동하지 않는다. 이 보편은 더 이상 의미에 의해 전체화되지 않으며, 접속에 의해 그리고 일반적인 상호 작용에 의해 다시 연결된다.
cf. 보편적일수록 덜 획일적으로 덜 전체적이다(pp. 170-172)
컴퓨터와 전산망을 매개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고, 세계를 중심으로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새로운 보편은 의미의 동일성 위에서 구축되는 것보다 오히려 사이버 세계로의 몰입을 통해 체험된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커뮤니케이션의 바다와 대홍수의 와중에 있으며, 더 이상 의미의 폐쇄성이나 전체화가 문제시되지 않는다. 새로운 미디어 생태학은 사이버 공간의 외연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더 보편적(확대상호연결대화형)일수록, 그것은 덜 획일적이고 덜 전체적이란 점이다. 보충적인 접속이 이질성과 새로운 정보 그리고 새로운 소실점을 더해나간다. 전체적인 의미를 해독하거나 한계를 설정하거나 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보편으로 인해 우리는 인류의 총체적인 쾌락과 공동의 지적 자산에 접근할 수 있으며, 보다 강렬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류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특이성의 폭증이나 번성하는 무질서 현상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보편은 더 구체화되고 명백해지면서, 덜 전체화(획일화)된다. 그것은 더 이상 지역성의 확대도, 특정 문화 산물이 강요된 전파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보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정부적이고 무질서한 것인가? 아니다. 어떤 지배 형태의 상실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과 마주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대양의 항해 도구와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각자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흐르고 변하는 풍경을 굳이 고정시키고, 미리 구조화하고, 굳건히 할 필요는 없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과도한 지배 의지는 지속성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폐쇄의 시도들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분명히 남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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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3.09.18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79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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